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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ath
211.249.225.103 (토론)님의 2006년 3월 13일 (월) 13: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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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회고 하기엔 이른 나이다. 날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쓸 말도 없다.

하지만 쓰기로 한다. 여기를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괜한 궁금증을 만들고 싶은 생각 없다.

'비밀'은 '신비'를 조장한다. 여기에 뭘 쓴다고 그것이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않는다. 그것은 소박한 소망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라는 말, 얼마나 치열한 단어 조합인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난 못한다.


다만 쓸만큼 써서 나타냄으로써 여기서 우리 이야기거리로 삼고 싶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차를 나눌 수도, 술잔을 나눌 수도 있다. 함께 걸으면서 그만한 호흡의 리듬을 나누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모든 이야기는, 그것이 침묵이라 해도, 주거니 받거니 하게 마련인 것 같다. 내가 나를 먼저 던진다. 그대도 그대를 여기에 스스럼없이 던지기 바랄 뿐이다. 다른 뜻은 없다. 나는 그대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립기 때문이다.


회고랄 건 없고 그냥 '나에 대한 나의 기억을', 한 때 살았다 가는 어떤 사람을 돌아다 보는 마음으로. 쓰기 전에 동주 형의 시.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