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23-1

DoMath
Parha (토론 | 기여)님의 2006년 4월 23일 (일) 12: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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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구더기다. 내 정신의 구더기들이 나도 살아있다 외치는 함성이다. 그 작고 여린 것들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묻는 것은 자기 도취에 빠진 몰상식하고 거만한 침략적 행위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다. 아니 모든 전쟁도발과 같다.

이 우울을 데리고 놀거나 빠리에서 비롯된 우울보다 더 깊은 이 우울을 바라만 보며 물한잔 차한잔 술한잔 따라주고 달이야기며 별이야기며 스포츠카아 이야기며 자전거 여행 이야기며 입술과 가슴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지 않을 때, 우울은 스스로 멈추어 거기서 썩는다. 썩어 곰팡이가 슬고 진물이 낼 것이다. 우울의 복수인 셈이다.

나는 오늘 우울하다. 그제 아침에 시작되었다가 이 녀석들은 그러고는 금새 놀러갔다. 오늘 새벽 꿈으로 다시 물겅물겅 기어 돌아왔다. 아, 나는 이 녀석들을 바라본다. 이 녀석들은 나를 보고 웃는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울은 모두 아기구더기들이다. 그래서 웃음도 아기같다. 그러더니 대뜸 "넌 참 바보로구나" 한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는 귀를 후빈다. 이 녀석들이 마침내 사람의 말을 다 배웠군. 어쩌면 내가 구더기의 말을 그새 배우게 된 건지도 모르지. 모든 건 꿈에서 이미 일어난 일인 것만 같다. 그렇군. 드디어 나의 정체가 탄로났군.

나도 녀석들 따라 웃는다. 차를 한잔 마심서 나도 웃고 우울도 웃는다. 그랬더니 바다가 꾸울렁 일어났다 잠긴다. 바다는 고래다.


詩的 完結性은 당췌 못가질 걸
다른게 이유 아냐 손바닥을 한번 보라고 눈이 있으면 보라고
그 희미한 실핏줄 말라가는 핏기를
발바닥을 보라고
왠종일 방바닥을 쓸고 댕기며 굳어진 살을 보라고
안될 걸
풀린 눈을 보라고 먼지로 막힌 입을
물방울 뚝.뚝.뚝.
오늘 아침에도 코에서 떨어졌잖어
당췌 못가질 걸

쓰지 마라 쓰지 마라
되먹지 못한 놈 쓰지 마라

근데, 나 있잖아, 어쩌지?
근데 어쩌냐고
안 쓰기는 벌써 글렀고
쓰자니 이리 잘라 쓰면
종이를 아끼고 그러면 시베리아 어디쯤 살던 나무도 덜 자르고
제지공장도 덜 돌리고 덕분에 바다에 박은
심지로 새는 기름도 덜 쓰지 않으까?

근데, 나 있잖아, 어쩌지?
근데 어쩌냐고
안쓰기엔 숨막혀 못살겠고
쓰자니 이리 잘라 쓰면
연필 들기 전엔 꿈도 못꾼
종려나무의, 만년설의, 뙤약볕의
異国의 땅내음이
후끈
물씬
향긋
나서
술없이도 취하고 입맞출 목줄기 없이도 취하고
그렇지 않냐고

덜 먹고
덜 싸고 살 수 있으니
그것만 해도 되지 않았냐고


우리는 순간을 살면서도 화음속에 산다.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깨진 박처럼 쓸모없는 삶이 될 수 있다. 예를들어 내가 이영희 선생님의 대화라는 책을 갉아먹듯 조금씩 읽는 시간에는, 그때 나의 마음과 그 책에 있는 내용의 화음이 맞아야 하고, 그때 음악도 듣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면 음악을 듣되 그 음악은 책의 내용과 어울려야 하고, 창으로 쏟아지는 빛의 정도와 온도와도 맞아야 하고, 생선파는 트럭 아저씨의 아파트단지를 울리는 우렁찬 울림도 그와 어울리는 데가 있어야 한다. 아니 굳이 어울리지 않더라도 어울림을 깨뜨리지는 않아야 한다. 그 어울림 속에서 사는 순간은 살아있는 순간이다. 순간의 연속이 삶은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건 없건 그것은 살아있음의 희열을 준다.

겉 멋이 들면 이런 어울림이랑 말짱 황이다. 겉멋은 어울림의 중심을 흐뜨려 허상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화음을 깬다. 그 불협화음은 어울림의 정도를 넘어서고 마침내 읽어도 읽은 것이 아니고 들어도 들은 것이 아니며 느껴도 느낀 것이 아닌 파편적인 것들만 자꾸 만들어내어 더 그 안으로 빠져들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불협화음이 삶 전체의 화음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있고 그것이 불협화음의 순기능이지만 그렇다고 불협화음에 빠져들면 결국 거짓 자체가 되고 만다.

저하나 거짓이고 말면 되겠지만, 거짓자체는 진실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그렇게 못하게 만들고 말 터이니 참 안쓰러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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