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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ath
Parha (토론 | 기여)님의 2006년 10월 17일 (화) 08:2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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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은근히 유행하는 말이 있으니 그것이 다름아닌 생명이라는 말이다. 생명과 평화를 연결하여 사상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들도 있다. 좋은 일이다. 지난 100여년 유럽으로부터 시작되고 짧게는 70년대 척박한 한국의 노동현실과 정치현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특히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과 그에 맞선 투쟁이 후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답으로 여겨졌던 마르크스적 분석과 대응 방안에 대한 대안적인 흐름으로 잔잔하게 그 이름들이 회자되고 있다. 덕분에 나도 요사이 즐겨쓰게 되었다. 세상이란 끊임 없이 변해가는 것이고 변해가는 세상에 따라 흐름들도 제 갈 길을 바꾸어 가기 때문에 무엇을 고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꼭 고집하고 가야하는 것이 있긴 하지만 어떤 경우도 고집이 가질 수 있는 위험 : 우상을 숭배함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유행어가 그렇지만 생명과 평화가 화두가 된 것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사람들 중 글 좀 쓴다하는 사람들이 쓰고 글 좀 읽는다는 사람들이 그것을 이리저리 져나르면서 퍼져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흐름은 별스럽지 않은 것인데, 예수건 붓다건 선사들이건 그간 자연과 사람과 어울려 지내면서 우주의 맥박소리를 듣고 깨달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누누이 해왔던 말이고 이를 실천하면서 살아온 사람들도 민족마다, 계기마다 있어온 것이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 근본 뿌리는 많이 다를지 모르지만 말로만 보면 자유, 평등, 평화라는 근대의 가치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잘쓰는 말도 변해가느라 요사이 생명과 평화라는 말을 묶어 쓰는지도 모른다. 말이야 무얼 쓴들 뭐 어떠랴.

일을 그만 두기 전 나는 영재학교 뒷산인 백양산 자락을 자주 올랐다. 점심을 먹고 나면 그리 올라 물이 있을 때는 물소리를 듣고 새가 울면 새소리를 들으며 평안을 찾았다. 찾아 오르다 보면 어떤 날은 차가운 날이 부는 날이 있어 옷깃을 여미고 머리까지 잘 눌러 덮고 다녀야 하는 때도 있었고 더워서 땀을 식히느라 옷을 다 열어젖히고 내려오는 길에 산개울에서 훌러덩 몸을 씻는 때도 있었다. 그 중 살아 있는 것들이 내는 신비로움을 부쩍 가까이 하는 때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봄과 가을이었다.

봄에는 새 잎이 돋고 새 풀이난다. 새 잎에 대한 경이로움은 모스크바로 간 첫 해의 추억이 가장 크다. 동토라 여겼던 모스크바에 갔을 때는 3월 말이었는데 이상 기온이었는지 눈이 많이 왔다. 수북히 쌓인 눈속을 다니면서 기숙사에서 살만한 물건들을 사러가고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 며칠 지나자 그새 건방을 떨어 아침에 일어나면 집 주위를 산책하고 뛰고 마침 태극권을 이년째 배우다 오던 터라 뛰다가 오래된 정교회 사원 옆 공터 너른 풀밭에서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걷거나 뛰어 오는데 어느날 뛰다가 길가 나무에서 새싹이 빼꼬롬하게 터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깜짝 놀라다라는 말이 무엇인지도 바로 그때 깨달았을 것이다. 걸었는지 뛰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눈이 휘둥그레해져 멈추어 서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을 내가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에 대한 찬탄이었다고 집에 와서 썼는지 아니면 지금 그렇게 기억하는지 모를일이지만 아무튼 새싹을 보고 놀라 멈추어서서 보다 절로 미소가 활짝 피어났던 것은 분명하다. 그날 이후 새로 태어나는 것들만 보면 신기하고 깜찍하고 꽉 깨물어주고 싶은 적이 셀 수 없다.

가을은 조금 다르다. 가을을 심하게 타는 변이었는데 더 멀리는 기억이 잘 안나고 대학 때는 기억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학회를 나온 것도 가을이었다. 그 때 부터 나는 도서관에 책을 두고 오후엔 산책을 자주 했는데 그때는 고즈넉했던 청송대와 학교 뒷산을 오르곤 했다. 이 행로는 그 이후 사 오년간 계속 되었다. 밤에 가을비가 오면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다니던 곳도 동주 시비와 청송대 였다. 여름에 무성했던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파아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수북허니 쌓인 낙엽에 발을 담그고는 이유없이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 무슨 헤괴한 일인가 망측해 하면서도 그 낙엽사이로 흐르는 조그만 물길을 보고 작은 흙다리를 건너면서 떨어지고 쌓이는 나뭇잎들끼리 주고받는 색의 조화에 놀라 웃음이 필 적도 많았다.

만물이 지치도록 생명력을 발산하는 여름도 좋아하고 여름이면 비가 제법 내리니 볼 수 있지만, 봄과 가을에 비가 내리면서 백양산 산책로에서 유난히 나를 괴롭혔던 것은 지렝이들이었다. 이 놈들은 한마리 두마리도 아니고 공동묘지를 떠올릴 만큼 십수마리 수십마리가 길따라 나와 널부러져 버린다. 비가 오면 그나마 나은데 가장 처참할 때는 해가 떠서 개미며 날짐승들이 주린 배를 채우려고 왕성하게 손질 발짓 할 때다. 땅은 말랐으니 이 지렝이란 놈들이 괴로운 것인지 즐기는 것인지 몸을 비틀면 몸에는 흙조각들이 둘러싸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 곧바로 새부리에 낚이거나 그대로 말라 개미들이 까맣게 둘어싸 몸을 뜯어내고는 했다. 이것을 바라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전에도 서울에서 들렀을 때 인왕산 길을 따라 오르는데 후끈하고 흐릿한 날씨 때문인지 지렝이가 몇마리 보였고 마침내 말라비틀어져 가는 지렝이 한마리를 개미떼가 까맣게 달려들어 뜯어내고 부지런히 나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처참한 마음 같은 것은 들지 않고 참 아름답다라는, 새싹을 보았을 때의 경이를 그때 느끼면서 절로 고개를 숙였다 하늘을 보았다. 아주 미세하지만 환희같은 것도 느껴졌다. 어쩌면 후덥지근한 날에 그 전날 술이 많이 되서 산책을을 오르면서 땀을 내고 오르다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그리 된지도 모른다. 괴로운 환희라고 하면 언어 유희일까?

제 몸을 드러내어 남김없이 바쳐버리는 지렝이의 비튼 몸짓. 그 몸짓은 내 뺨을 후려친다. 속에 쌓이고 쌓인 것이 많을 땐 뺨이라도 한 대 맞으면 통쾌한 깨달음이 오기도 할 터인데 그런 건 아닌지 싶다.

나는 백석의 나와 지렝이 라는 시를 좋아하여 암송하곤 하는데 그 시를 읽을 때 아련하게 가슴속을 퍼져오르는 느낌 과는 달랐다.

생명과 평화의 사상의 뿌리에는 사실 그런 지렝이의 몸짓이 있어야지 싶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자꾸 나를 드러내다가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까지 할퀴고서야 나자빠질때가 있는데 그건 내가 드러내고 나를 비틀지 않아서 일 것이리라. 세상이 어울리도록 제 일이 있는 것이다. 지렝이가 새가 되거나 개미가 되고 싶다한들 무슨 소용있으리. 지렝이는 이 생에서 지렝이로서 지렝이답게 살다가고 개미는 이 생에서 개미로서 일생을 멋지게 살고 새는 새대로 살다가 죽으면 땅으로 스며들어 지렝이가 살도록 할터인데.

나도 그렇게 한 세상 살다 갔으면 싶은데, 말만 있고 어찌해야할지를 때가 많다. 참 어리석다. 사십년을 다 살아가는데도 이 모양이라 옛사람들 생각하면서 고개 숙여질 때가 많다. 허나 어쩌랴. 나는 나의 생을 살다 가도록 되어 있는 것을. 나는 어린 생명. 지렝이 한마리 보다 못한 아직 나어린 생명인 것을 마흔 고개를 탓하면 무엇하리. 풀 한포기 창을 열면 새소리, 가을 오면 달빛 아래 귀뚜라미 소리... 내 어린 생명도 그와 다르지 않은데 무엇에 이리 조바심을 가지는지... 몸으로 깨달을 때까지 살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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