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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3일 (목) 09:32 기준 최신판

알-, 바람이 불어 창을 열 수 없다.
아침엔 저 아래 청사포 입구에서 도로를 파내는지 소음이 있더니 지금은 모든게 멎어버린 것만 같다.
하늘엔 구름이 두터워 멀리서라도 우뢰가 치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내리겠구나.
우리나라 들어온지 며칠이 지나도록 비와 바람만 보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오자 마자 비를 만났어.

Tashkent-bazar.jpg

타쉬켄트에서 마지막 저녁식사 하러 가기 우리 일행의 마지막 일정은 시장 구경이었다. 우리가 들린 어느 도시에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시장을 중심으로 먹고 마시고 입고 쓸 것들을 교환하더구나. 물건을 들고 사고 파는 사람들 사이엔 흥정이 있어 서로의 땀냄새를 주고 받는 것이 좋아보였다. 조금 걸어가면 꼬치구이를 굽는 냄새니 빵굽는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촌스런 옷들이 높다랗게 널려 있었다. 이곳 도시 마트에 들어가면 왠지 눈이 금방 시리고 조금 있으면 나고 싶어지는데, 시장에서는 좀체 떠나기가 싫었다. 장사하는 사람들 중 러시아 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말을 주고 받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고, 신기한 것이 눈에 띄면 만지거나 맛을 보기도 했다. 그런 뜻에서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지도 모르지만, 난 '시장주의자'가 아닌가 하여 내게 꼬리표를 하나 더 달아주었어.
말이 헛나갔구나.
알-, 지금 나는 드는 가방 작은 거 하나에, 메는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갔던 내가 어쩌다 비행기를 타고 택시를 타고 낑낑 거리며 청사포 집까지 들어오게 되었나 그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거야. 그것이 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어쩌면 양념이 될 수 있을 것도 같고, 지고 다니는 짐이, 길에 대한 어떤 사람의 태도와 양식을 말해주는, 너무나 잘 보여서 잘 생각들을 않는 그런 무엇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해.

그러니까, 그곳을 빠져나와 마지막으로 저녁밥을 먹으로 가기 전에 버스가 기다리는 곳에 왔더니 왠 여인이 비닐 포장을 뜯지 않은(또는 비닐 포장을 새로 입힌) 화집을 두권 들고
Book-bukhara.JPG
,
Book-khiva.jpg
'포티 돌러스, 포티 돌러스' 하고 있었다. 그 여인의 뒤를 보니 '헌책방'이라고 써진 간판 아래로 조그만 문이 나 있고 그 안에 책들이 쌓여 있는게 보였다.

떠날 시간은 되었지만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2분만 기다려달라고 가이드에게 손가락으로 표시하고 뛰어 들어갔단다. 시간이 없어 휘이 둘러 보았다. 눈에 금방 들어온 게 있었으니 '도스또에프스키 전집'이었다. 70년대 출간된 서른 권 짜리인데, 1권부터 17권은 작품이고 나머지는 편지니 기록물이지. 워낙 많이 찍어낸 (20만권) 터라 아주 구하기 힘든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그렇게 '가득' 담은 전집이 출간 안된데다 한번 가지면 잘 내놓질 않기 때문에 구하기가 마냥 쉬운 것도 아니란다. 전집인데도 앞 17권을 더 구하기가 힘들어. 그걸 익히 알고 있던 터라 그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걸 보고 냅다 산거지.

사실 돈은 이미 다 떨어졌는데 미산선생님이 히바에서 그늘로 조용히 부르시더니 살 것 있으면 사라고 200불을 기어이 주머니에 찔러 주신게 있었거든. 안쓰고 돌려드린다는게 오래 전부터 사고 싶었던 책을 보니 눈이 뒤집힌거야. 게다가 낮에 마신 보드카 몇 잔이 안에서 심하게 진동했을 수도 있지.

Book-push.JPG
Book-push2.JPG
Book-dostoev.JPG

그 책을 산 김에 히바(Khiva)와 부하라(Bukhara) 두 도시 화보집을 함께, 그리고 잔돈 바꾸기도 귀찮던 차에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뿌쉬킨 10권짜리가 있길래 한꺼번에 120불을 주고 샀어. 그러니까. 그 집에서 산 것만 서른권쯤 된 거지. 짐하나가 가득 생긴거야. 비닐 가방에 담아 양손에 낑낑 들고 차에 타니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들 난리였어. 어떻게 가져갈거냐고.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가져가야죠. 이거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는데 여기 있네요. 그래서 무조건 샀어요. 사놓으면 어떻게든 가져가 지더라구요.
하고는 앉을 자리에 놓기 마땅하지 않았지만, 담아온거야.

저녁 먹을 때 술이 과했어. 기분이 너무 좋았어. 무언지 모르게. 몇몇 사람들은 '박박'(여행동안 이게 나를 부르는 애칭이었어. 박박사 줄임말인 거 같아.)이 책을 사더니 업! 되었다고들 좋아라 했지. 술 잘 마시면 난 무척 행복해보이고 불그스레 헤죽헤죽 웃는 모습이 무척 좋아보이는다는 말을 저번에 미산 계곡서도 들었는데 여기서 또 듣게 되었어. 아무튼 이날 저녁 식사 분위기는 그야 말로 여행을 끝내는 마지막으로 정수일 선생님은 열한살짜리 해수에게 직접 가셔서 두 손으로 보드타를 살짝 따라주시면서 항상 그러시듯 아이같은 웃음을 가득 머금으셨지. 모두들 돌아가며 소감을 이야기하는 자리이기도 했어.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난 여기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
"먼저, 일이긴 하지만 가이드를 해준 강상훈 차장께 박수를!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아는데 별 일 아닌 것 처럼 보이는 일이지만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짝.짝.짝. 다음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막을 지나올 때 즈음인지 우리가 처음 본 폐허 유적지 그 따가운 태양아래서인지... 무든 이런 질문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이 이번 여행 내내 저를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헤헤.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얻은 답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꾸우벅) ~"
사실 이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는데 술에 취해서 못했어. 뭐냐면, " '나는 지금 바로 여기에' 있고, '바로 여기'란 지금 여기의 사람들과 우리들이 서로 가슴에 품은 우리들의 관계입니다. 여러분이 있어서 지금 여기 내가 있습니다. " 라고 말야. 넘치지? 말이 많았는데 더 말하지 못한 걸 아쉬어했다니 놀랍지 않니?!
그런데 아쉬움이건 뭐건 술이 꽤 되서 금새 다 잊어버렸고, 공항에서 어떻게 책을 쌓는지 거기서 사람들과 손을 맞잡기도 했고 선배시인을 마중나온 노랑머리들인 강모 여류시인과도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사람이 마음에 들어 전화와 주소를 받았어. 그러고 보니 마지막 식당에서 종업원에게도 받았구나. 젊은 재소 동포인듯한 여자는 작은 눈이 찢어져 살짝 올라갔고, 볼이 홀쪽 들어갔는데 입술이 매력적이었고 호리호리한 키에 무엇보다 긴 목을 하고 있었지. 그 여자를 보는 순간, 난 눈이 번쩍 띄였어. 어디선가 본듯한데, 그게 어딘지 금방 생각이 났지. 책 표지 그림이었는데, 아마 고대 이집트 여왕이었을거야. 커다른 모자를 쓰고 갸름한 턱에 긴 목을 하고 살짝 치켜 올라간 그림이었어. 돌아와 아무리 찾아봐도 비슷한 것만 보았을 뿐, 그때 머리 속에 퍼뜩 떠오른 그 사진은 어디에도 없네.
그러면 내가 그 여인에게 다가가 끈을 대어 보았느냐? 그렇게는 안했지. 난 그럴 위인도 아닌데다, 그날 그 자리는 술마시느라 흥에 겨웠어. 그리고 그 여인은 음식 나르기도 벅찰 만큼 허둥댔고. 모두 시간 맞추어 나올 때에야 내가 다가가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하자 여행 내내 '박박을 결혼시키려면 어떤 여자가 좋을까?' 궁리를 하던 몇 분이 오호라! 하셨나봐. 공항에서 '그 여자 마음에 들어요? 나 아는 사람 여기 있으니까 작업해놓을께' 그러는 거야, 글쎄. 하하하. 난 웃으면서 아녜요. 예뻐서... 내가 또 올지 모르니까... 우즈베키스탄 또 오고 싶은데 그때나 인연있으면 보겠죠. 그러니까, 그 있잖아오. 커다란 모자를 쓴 이집트 여인같은 그런 느낌이 있어서 그런건데. 무슨 말예요 지금 결혼이라니. 아무튼 그것도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는 소재가 되었던거지.
비행기서 내리니 짐이 많아진 걸 깨달았지. 갈 땐 달랑 들고 메고 갔던 짐이 타쉬켄트 공항에서 산 보드카 6병에, 싸마르깐드에서 산 이슬람 문양을 반년 쯤 파서 낸 쟁반들 여러개, 그리고 여기저기서 산 엽서들, 자그마한 책들 이런 것들 때문에 짐이 네개로 불은 거야. 게다가 멜 것은 하나 뿐이고 모두 들 것이었어. 제대로된 가방도 아니고 테잎으로 빙빙 감은 것도 있었고 비닐 주머니도 있었으니 얼마나 번거로왔겠어. 멘 가방엔 보드카만 해도 여섯 병이 들어 있었으니 또 오죽 무거웠겠냐고. 그래도 그걸 다 들고 부산 공항까지 왔고 공항서 공항버스타고 해운대 프레지던트 호텔에 내린거야.
그때 비가 온거지. 후두둑 떨어지는데 묵직하게 찰랑거리는 가방을 메고, 손잡이 있는 가죽 가방 하나에 끈도 없이 테잎으로 말린 책덩어리 하나에 비닐 주머니까지. 그걸 들고 택시를 잡고 집으로 들어온거야.
온세상이 연한 황토빛인 것만 같았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오자마자 비방울이 맞은거야. 그리고 태풍이 친다고 하였어.
알-, 지금은 여행길에서 돌아온지 여러 날이 지났어. 그런데도 취기가 다 빠지지 않아.
그 척박한 흙냄새, 당나귀를 타고 가던 아이들, 무너져내리는 흙 사원들과 사라진 궁궐과 사원터.
그것의 환영이 자꾸 따라다녀. 고개를 돌리면 뒤에 거기에 내가 있는게 보여.
태풍이 오고 보름달이 뜨고 영화를 보고 다녀도 좀처럼 벗어나지지 않아.
어떤 여행을 마치고 이렇게 깊이 취해 본 건 처음인 것 같아.
삶을 한꺼번에 확장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아직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처음 떠날 때는 여행기를 쓰려고 단단히 준비했다가 떠나기 직전 다 풀어 빼놓고 갔어.
가서 좋은 사람들에게 술이나 얻어먹고 오자. 하고 말야.

알-, 너에게 이 글을 쓰는 건 지나간 나의 시간, 내 인생에서 응축되어 지금 폭발할 것 같은 그 시간에 대하여, 너에게 만은 말하고 싶었어. 이미 읽었으니 짐작했겠지만, 글을 쓰자고 쓰는 게 아니고 뭘 담아내보자거나 배워보자고 하는 뜻도 없어. 그냥 네가 '바로 여기'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넋두리 처럼 하는 것일 테지.
오늘은 이만 할께. 네가 아주 재미없어 하지 않는다면 내일 또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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