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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9일 (토) 00:01 기준 최신판

기사본문 연합 뉴스

소주의 전래

문명교류사 연구가인 정수일 씨에 따르면, 원래 소주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빚어졌던 증류주였다.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꼽히는 기원전 3천년 전의 수메르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유역에서 처음 만들어져 이 곳을 중심으로 줄곧 전승돼왔다. 이런 소주가 어느 날부턴가 탁주, 청주와 더불어 한국의 3대 토속주로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이다.

소주의 어원은 '증류'란 뜻의 아랍어 '아라끄'다. 이 아라끄가 나라 이름 '이라크'(아랍어 발음은 '이라끄')와 어근이 같음은 그저 우연일까? 지금도 서아시아에서는 '아락'이라는 이름의 우윳빛 소주가 팔리고 있다. 이 소주가 몽골어로 '아라킬' 이 됐고, 만주어로는 '알키'로 불렸다. 중국에서는 '아랄길주(阿剌吉酒)' 라고 표기한다. 신통한 것은 개성을 비롯한 북한의 일부 지역에서는 근래까지도 소주를 '아락주'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아랍지역에서 즐겨 마시던 소주가 동쪽 끝 멀고 먼 한반도까지 전해진 것은 고려시대 때라고 정씨는 '한국 속의 세계' 등의 저서에서 말한다. 1231년부터 고려를 수 차례 공격한 몽골제국의 원나라는 고려를 복속하고 수십 년 간 사실상 통치한다. 문화는 권력을 따라 전파되는 법.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세운 몽골제국은 동서의 문화를 교류케 한 고속도로 역할도 해냈다.

몽골군은 1258년에 압바스조의 이슬람제국을 공략하면서 현지 농경민 무슬림에게서 소주의 양조법을 처음 배웠다. 그후 몽골군의 말과 수레에는 가죽 술통이 실려 있기 마련이었고, 이 소주는 몽골군이 가는 곳마다 애호가들을 만들어나갔다.

한반도에 소주가 들어온 것은 몽골군의 주둔과 직접 관련이 있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는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대규모 군대를 한반도에 보냈고, 이들의 주둔지에는 어김없이 소주 제조장이 생겨났다.

당시 원정군의 본영이었던 황해도 개성을 비롯해 병참기지인 경북 안동과 제주가 전통적 토속주인 소주로 유명한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개성이 아락주의 본고장이듯이 안동에는 안동소주(경북무형문화재 제12호)가 있고, 제주엔 고소리술(제주무형문화재 제11호)이 있다.

몽골군이 물러갔지만 고려사회에서는 소주가 권문세가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말발굽 소리는 사라졌으나 그들이 남긴 문화는 토속의 향취로 옷을 바꿔 입으며 생활 속에 정착한 것이다. 이를테면 귀화라고나 할까.

조선시대에는 더욱 사랑 받아 약용 고급주로 쓰였다. 독하면서도 정갈한 소주의 맛에 궁중과 양반들이 푹 빠져버린 것이다. '단종실록'에는 단종이 몸이 허해지자 소주로 기운을 차리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성종 때에 민가에서 소주 제조를 하지 못하게 하라는 상소가 있었던 걸로 미뤄 이미 보편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소주는 보통 25도를 넘는 독주여서 작은 잔에 마셨다. 이렇다할 소독약이 없던 시절에 소주는 피부 상처 부위에 발라 감염을 막고, 배앓이나 소화불량 등을 치료하는 약제 구실도 했다. 이런 방법은 근래까지도 농촌을 비롯한 서민들 사이에서 애용됐다.

국내 대표적 소주 제조업체인 진로에 따르면, 증류식 소주 시대에서 희석식 소주로 넘어온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35도가 넘는 증류소주에 물을 타서 알코올 돗수를 낮춘 게 바로 희석식 소주다. 이로써 도수가 지금처럼 낮아졌고, 왕실과 양반의 술에서 서민의 술로 바뀌었다. 물론 안동소주 등은 기존의 순수 증류방식을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대세는 희석식 소주. 소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희석식을 떠올리는 것도 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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