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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ha (토론 | 기여)님의 2008년 6월 17일 (화) 21:29 판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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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에게.

안녕? 며칠 살포시 비가 내리더니 봄이 한 발짝 더 다가온 것 같지 않니, 명훈아? 날씨가 들쑥날쑥해서 혹시 감기라도 걸리지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요새 감기는 한 번 걸리면 좀처럼 낫질 않는다고 하던데. 동생 원일이나, 엄마, 아빠, 그리고 반 친구들도 모두 건강하니? 삼촌? 나야, 예나 지금이나 건강하지, 물론. 널뛰기하는 날씨에도 꿋꿋해. 많이 먹고 많이 자지는 않지만 잘 먹고 잘 잔단다.

요새 날씨가 변하는 걸 그림으로 그려보면 어떻게될까?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구나. '날씨' 라는 걸 무엇으로 할지, 시간을 어떻게 정할지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이 나올 수 있겠어. 시간은 아마 '끊김없이' 흐르고 날씨도 '연속'해서 변하고 있을텐데 우리가 조사할 때는 필요한 만큼 끊어서 해야겠지? 그리고, 감기 걸린 환자의 수를 조사해서 그 시간에 따라 얼마나 변하는지 그것도 그림으로 만들어보고 말야. 환자의 수는 자연수로 나타나겠지? 어쨌든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어떻게 될까? 또는 다른 계절의 비슷한 시간동안의 그림과는 많이 다를까?

어디보자. 이런 엉뚱한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삼촌이 지난 편지를 쓰고 벌써 날로 하면 일곱 날, 주로 하면 한 주가 갔구나. 까마득히 오래 전 사람들이 어떻게 수를 나타냈는지 보았지? 수천 년 동안 일어났던 일을 종이 몇 장에 쓰는 건 말도 안되지. 하지만, 거기에 삼촌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씨앗처럼 들어있거든. 고대 이집트나 로마의 숫자들과 고대 바빌론 문명의 숫자 체계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 그 차이의 핵심은 '자리수'가 의미가 있느냐 였어. 자리수가 없으면 큰 수를 생각해야 할 때마다 새로운 숫자들이 계속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니 불편했을거야. 다시 그 이야기를 이어 하면서 오늘 드디어 우리는 열 개의 숫자만 있으면 모든 자연수를 표현할 수 있는 10진법에 이르게 돼. 여기엔 '불의 발견'에 견줄 수 있는 위대한 '0의 발견'이 뒤따라야만 했었어. 그럼 함께 가볼까?

아주 먼 옛날에는 양이 한마리 늘 때마다 빗금을 하나씩 늘려갔다고 했잖아? 말했다시피 이건 매우 불편했겠지. 그래서 어느 정도 빗금이 늘어나면 그때 마다 조금 다르게 표시하기 시작했었어. 그게 변하고 발전해가지. 아래 그림을 보면 더 쉽게 이해되겠구나. 고대 로마자가 이렇게 변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건데, 이것을 보면 5 를 보조로 하고, 10단위를 기본 단위로 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의 숫자를 작게 해서 밑에 썼고, 첫줄이 아주 오래전, 그 다음 줄들은 그로부터 수백년 흘러 간단히 쓴 것들이야.

위에서 든 예만 그런게 아냐. 다른 민족들에게서도 그렇게 특별하게 보는 단위가 다섯이나 열이 나타났지.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냐. 어떤 데서는 열둘이 매우 중요했고, 어떤 데서는 스물을 한 단위로 여기기도 했단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해지는 거 없니?

왜 어떤 민족은 다섯이나 열을, 어떤 민족들은 열둘이나 스물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고대 바빌론 문명에서는 예순이나 되는 큰 것을 한단위로 보았는데, 그건 왜 그랬을까?

명훈이 스스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겠니?

열을 한 단위로 했던 사람들을 한 번 만나서 물어 볼까?

- " 당신들은 열을 한 단위로 하는군요. 왜 그렇게 해요?"

그 분들이 어떤 답을 했을까? 삼촌 생각에는 아마 그 분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만 땡그랗게 뜨고 볼 것 같아. 당연하다는거지. 이제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고 말을 조금 배운 아이들을 만나서

- "아이구, 이뻐라. 몇 살이니?"

묻곤 하는데 그때 아이들이 어떻게 하니? 손가락을 몇 개 꼽아 보여주지 않던? 삼촌한테는 그렇게 하던데. 수천 년 전 그때 사람들도 아마 그랬을거야. 손가락이 열 개니까. 다섯을 한 단위로 여겼던 사람들은 한 손의 손가락만 굽히고, 다섯이 되면 그 손의 손가락을 다 펴고, 다른쪽 손가락 하나를 올렸을거야. 열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손가락 열을 수에 다 대응시키고 나면 그 다음 부터는 다 펴고 발가락 하나를 들었을지 모르지. 그게 불편했으면 돌을 하나 놓거나. 놀랍게도 우리 손가락은 다섯 개가 모두 모양과 길이가 조금씩 달라서 헷갈리지 않았던거야 ! 어떤 이들은 줄에 흰색과 까만색 조개를 들고 다녔을지 몰라. 아홉까지 같은 흰색의 조개로 세고, 열번째 되면 까만 조개를 하나 끼워 놓는 방식으로 했을거야. 어떤 데서는 왼손 새끼 손가락부터 세서 다섯을 넘으면 왼손 손등, 팔뚝 아래, 팔뚝 위, 어깨 왼쪽, 왼쪽 귀, 왼쪽 눈, 코, 다음은 오른쪽 눈, 오른쪽 귀, ... 이런 식으로 세기도 했을 거야. 어쨌든 숫자가 없던 시대에 그렇게 했던 방식이 숫자라는 기호를 만들 때도 영향을 주었을게 틀림없어.

하지만 열둘을 기본단위로 했던 사람들은? 아마 손마디로 세지 않았을까? 오른쪽 그림을 보겠니? 그렇게 수랑 손가락을 대응시키면 열둘이 중요한 단위가 되지? (아 참, 사진 속의 손은 누구의 손일까?) 그렇다면 60 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들은? 무려 오십 구까지 쐐기로 표시하고 육십이 되었을 때, 처음 하나를 쓸 때처럼 기호를 썼던 바빌론 사람들말야. 왜 그랬을까? 정확한게 무엇인지 알기는 힘들지. 하지만, 추정을 해볼 수는 있어. 어쩌면 열둘을 기본단위로 하는 민족과 다섯이나, 열을 기본으로 했던 민족들이 교류를 할 때 이렇게 하면 편했을거야. (도대체 왜 편할까?)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개념으로 하면 5 또는 10 과 12의 최소공배수가 되는거지.

지금도 그런 흔적은 남아있어. 동양에서도 오래 전부터 육십갑자라는 것을 하는데, 철학적이야. 하늘에 해당하는 간지 열 개와 땅에 해당하는 간지 열두 개를 교차하면서 부르잖아. 그러면 처음 갑자가 다시 갑자가 되려면 60번째가 되어야 해. 그래서 '환갑'이라는 말을 쓰잖아. 한바퀴 돌았다는 뜻이야. 60이 될 때 하나에 대응했던 거지. 또, 시계를 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도 부분적으로 60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잖아. 그때 사람들도 그랬을거야. 얼마나 중요하게 쓰고 있는지 모르면서 썼던 거지. 초침이 59까지 돌고 나서 1초가 더 지나면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그때 분침이 하나 돌잖아. 60 분이 지나면 1 시간이 되고. 1 년은 열 두 달이야. 영어에서는 10을 할 때, ten 이라 해놓고, 11은 eleven, 12는 twelve 잖아? 열두 개의 독립적인 글자를 가지고 있는거야. 그러다가 13을 할 때는 thirteen 으로, ten 과 three 가 결합해서 나타나지? 프랑스 어에는 20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아. 지금은 비록 대부분 없어졌지만, 80을 나타낼 때, quatre-vingt 이라고 한대. 스물이 넷 있다는 뜻이야. 예전에는 60을 말할 때도 스물이 셋 이런 식으로 했단다.

이런 식으로 숫자 체계가 몇 개를 기본 단위로 할지, 어떻게 나타낼지 하는 것은 문명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어. 신체구조, 사람들 사이의 교류,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해석, 그리고 셈단위가 점점 커져갔던 사실들이 모두 뒤섞여 있어. 그러다가 점점 열 개를 기본 단위로 하는 쪽으로 통합되어가. 우리가 사는 지금도 그런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왜 하필 열이었을까? 손가락 때문에? 그런 것 같긴 해. 그러면서도 꼭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나 싶어. 삼촌은 의심이 아직 안풀렸단다. 손가락 세던 시절에서 수천 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굳이 손가락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거든. 사람의 손이 둘이 아니라 넷이었다면 이십을 기본으로 했을까? 손가락이 여섯 개인 고등생물 외계인 별의 어떤 마을은 여섯을 기본으로 할까? 아니, 몸에 손가락이 없다면? 발만 여덟인 문어 같은 구조라면? 이 질문은 이야기를 좀 더 하고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자꾸나.

어쨌든 기본 단위는 열로 통일되어가. 그러면서 자릿수 를 이용하면 숫자 기호가 많이 없어도 된다는 장점 때문에 자릿수법이 자연스럽게 수 천년에 걸친 경쟁에서 이기게 돼. 그렇다면 그것을 나타내는 기호는? 그게 문제였어. 지난 시간에도 보았지만,

"양을 마리 구해오거라."

라고 하면 어떻게?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던거야.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빈칸이지. 하지만, 빈칸은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 주지는 않잖아. 칸을 정확히 나눠야지, 그렇지않고 어중간하게 떨어져 있으면 헷갈리긴 마찬가지야. 명훈이가 아래 숫자를 구분해 보겠니?

바빌론 문명만 이렇게 했던 건 아냐. 고대 중국 문명도 그랬다는구나.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까지 쓰던 방식이야. 수 계산을 빨리하기 위해서 그때 사람들은 '계산기'를 들고 다녔다고 해. 나무 막대기가 가득 든 통을 허리에 차고 다녔지. [1] 오래 전엔

| , || , ||| , |||| , ||||| , ...

이런 식으로 표시했어. 그래서 183 같은 경우는

| |||||||| |||

로 했어. 지난 편지에서 "1999를 로마 숫자로 표시한다면 어떻게 할까?" 했을 때 그런 답이 있었잖아.

I IX IX IX

로마는 자리수법을 안썼기 때문에 그 표현은 당시로서는 말도 안되는 것이었어. 중국은? 오래 전에 이미 자리숫법을 썼던 것 같아. 그래서 앞에서 했던 것처럼 해도 되었겠지. 하지만, 당연히 헷갈리겠지? 막대가 연달아 서 있으면 구별하기 쉽지 않잖아. 그래서 생각해낸 방식이 183을 옆의 그림처럼 했던거야.

로 했어. 아주 잘 되었지. 그럼 이제 다 된건가? 이제 덜 헷갈릴까? 명훈이가 한번 스스로 해볼래? 183, 1830, 1083, 10083, 183000

어때? 헷갈리지 않아? 왜 그럴까? 바로 0 을 나타내는 기호가 없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번번히 종이에 그릴 때 빈자리를 분명하게 나타내야 했어. 또는 숫자 다음에 말로 써주는거지. 지금 한자로 一 白 八 十 三 하듯 , 萬, 千, 白, 十 과 같은 문자를 써넣었어. 이건 중국만 이렇게 한게 아니야. 옛날 인도도 0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구나. 이미 이천 여년 전 인도는 열개 단위를 기본으로 하면서 이런 기호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10부터 90을 나타내는 기호들이 따로 있었고, 또 100부터 900까지 나타내는 기호들이 따로 있었고, ... 다시 말해 자리수법은 쓰고 있지 않았나봐. 게다가 지금처럼 방송이나 책이 없던 시절이라 지역마다 기호들이 같지 않았어. 같은 수를 뜻하는데도 기호들이 많았던거지. 옆의 그림에 그 중 몇 개를 옮겨놓았단다. 그 중에는 아랍에서 변형된 것도 있으니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단다. 중요한 것은 기호들이 경쟁했다는 것이지. 대신 예나 지금이나 인도 사람들은 계산을 잘해. 그런데 계산을 하다보니 그런 방식이 영 느린거야. 더 빠른 방법이 없을까? 누군가는 생각에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점점 퍼졌을지 몰라.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

세월이 흐르면서 인도 사람들은 0 이라는 것이 단지 '빈칸'으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없는 양(量,quantity)' 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 지금부터 천 오백여년 전쯤으로 보고 있어. 글리고 그게 계산을 무척 편리하게 한다는 것을 ! 힌두교를 믿던 인도 사람들에게 '없다'는 것을 '수'로 인정하고 기호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 별로 못받아들일 게 아니었어. 뭐 어때? 받아들일만한 근거가 있었던거지. 아즈텍 문명을 꽃피운 마야 문명에서도 0을 기호로 쓰고 있었단다. 놀랍지 않니? 완전히 다른 대륙, 다른 문화권에서도 0은 언젠가는 필요했던거야. 그런데 기독교 문화권이나 다른 문화들에서는 0 을 전래받고 수백년이 흘러가도록 도무지 0 을 수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거야.

이렇듯 수많은 기호들이 서로 경쟁해. 그리고 기본 묶음 단위를 무엇으로 할까? 하는 것도 경쟁해. 자리수법이냐 그냥 기호마다 고유의 숫자를 나타내느냐도 경쟁해. 보이지 않은 경쟁이, 아, 수 천년을 걸쳐 일어났던거야! 그 뿐만 아니야. 어떤 데서는 숫자를 따로 안만들고 문자로 대신했다고 하는구나. 예를들어, 그리스에서는 (알파, 첫번째 철자) 는 1 을, (베타; 두번째 철자) 는 2 를, ... 이런 식으로 말야. 수를 나타내는 것이랑 글이랑 헷갈리면 수를 나타내는 글자위에 특별한 표시를 해주었고. 매우 복잡했지.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도 아르키메데스는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의 개수'를 계산하고 나타냈다고 하니 놀랍기만해. (어떻게 했던 것일까? 그리스 철자를 그리 많지 않았는데 말야.)

그것으로 다 된걸까? 아니었어. 0 이 발견되고 나서도 '없음'을 나타내는 0을 '수'로 받아들이냐 마느냐로도 오래 경쟁해. 이런 어쩌면 지루한 과정을 끝내는 데 아랍 사람사람들이 지대한 공헌을 한단다. 동과 서를 모두 교류하면서 아랍인들은 그때까지 인류가 꽃피웠던 문화를 부지런히 받아들였단다. 천문, 예술, 상업, 문학 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기술도. 인류의 놀라운 성과를 모두 아랍어로 번역하여 집대성하고, 그것을 연구하여 융합하고 발전시켰어. 그러면서 더 나은 문명을 실크로드를 통해, 심장이 피를 몸의 곳곳에 나누듯 다른 문명에 전달했던거야.

인도의 숫자 체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 0 도 포함시켜야 수를 나타내고 계산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 그리고 0 을 중심으로 놓고 그 반대편(음수)에 대해 생각을 뻗쳐. 그것의 성질까지 연구했지. 계산을 빨리 정확하게 하는 방법도 개발해서 정리해.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알 콰리즈미'인데, 그가 쓴 책은 폭발적인 인기였다는구나. 그 전에는 곱셈, 나눗셈을 깨우치기 위해 다른 나라로 유학을 떠나야 할 정도 였는데, 그의 방법을 알면 틀릴 가능성도 적고 빠르게 해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정확하게' '단계단계 절차에 따라' '빨리'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그냥 '알고리듬'이라고 불렀어. 그런데도 수백 년이 가도 기독교가 지배하던 유럽에서 이슬람교인 아랍의 수체계, 계산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어. 그게 얼마나 힘겨웠는지, 0 이나 음수를 악마가 깃들었다고 한 것들, 어떻게 그런 미신이 풀려가는지에 대해서 까지는 이야기 말자. 그러면 이대로 날이 샐 것 같아.

이제 본격적으로 수와 셈을 볼 때가 된 것 같아.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 열 개를 기본으로 하는 체계
  • 자리수 법
  • 이것이 융합되면서 하나부터 아홉까지, 그리고 0 을 나타내는 기호

그래서 결국 아름다운 기호가 탄생했어 !

빗금처럼 수와 숫자가 닮았던 시절과 결별했고, 수가 커질 때마다 새로운 수를 도입하고 외우고 전달해야 하는 시절과도 결별했고, 1, 2, 3, ... 의 반대쪽에 무엇이 있는지도 짐작하게 되었고, 다른 민족과 교류할 때, 서로 다른 체계를 써서 애먹을 필요도 없어졌고, 무엇보다 계산이 엄청나게 빨라졌고, '알고리듬'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현대의 '계산기'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을 깐거야. 거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모두 0 의 발견 덕분이야. 0은 간단해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0 처럼 신비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은 드물어. '무한'을 이해하는 것에 견줄만 하지. 앞으로 자꾸자꾸 나올거야. 오늘은 0 이 발견된 것을 경축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구나 !

이제, 하나, 둘, 셋, ..., 여덟, 아홉 까지 독립적인 기호를 쓰고 열번째가 되면 새 기호가 나오거나, 그냥 1 을 쓰고 빈칸을 내놓는 게 아니라, 1 이 나오고 뒤에 0 이 붙은 체계 10 이라 하게 되었어. 그 다음은 열 개 묶음 하나와 한 개 짜리 하나, 그래서 11로 썼어. 구십 구 다음엔 100으로 ! 새로운 기호도 필요 없고, 헷갈릴 염려도 확 줄어든거야. 상상도 못할 간편한 방법이었어. (물론 그것을 말로 전하기 위해서는 '백' 처럼 '말'이 필요했겠지만.)

이런 체계 덕분에 우리는 '수'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 이제 계속 나올거야.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져.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어쩌면 '숫자 나타내기'의 오랜 진화와 발전 덕분이었을지 몰라. 오늘은 그 중 하나만 보자. 무엇보다 계산이 편해졌어. 직접 비교해보겠니 ? 귀찮더라도 꼭 해봐. 어쩌면 명훈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런 셈을 해보는 것일 수도 있거든. 그리고 직접 느껴봐. 지금의 체계가 얼마나 간단한지. 물론 이때 지금 숫자 체계로 한다음 단순히 옮기기만 하면 안되고 그때 사람인 것처럼 시간을 되돌려, 되돌아가서 해봐.

  • 지난 시간에 배운 고대 로마 숫자, 고대 이집트 숫자, 고대 바빌론 숫자로 937+ 1999 를 쓰고 계산하면?
  • 로마 숫자로 CCXXXIII 더하기 CCCXI 더하기 MCCXXLI 을 하면?

자연수 덧셈만 해도 이렇게 차이가 많은데, 곱셈과 나눗셈, 그리고 분수 표현 같은 것은 또 어땠겠니? 맞아, 그런 체계로 곱하기 나누기는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넘어가기 전에 하나만 더 이야기할까? 지루했다면 미안한데, 무엇이냐면, 앞에서 여러 경쟁이 일어났다고 했잖아 ? 근데 그것만 있었던 게 아니야. 어떤 민족은 오른쪽부터 큰수를 쓰기도 했고 세로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쓰기도 했어. 이건 아마도 양피지를 둘둘 말아쓰던 시절의 영향이었는지 몰라. 그래서 큰 것을 오른쪽에서부터 쓸 것인지, 왼쪽에서 쓸 것인지, 위에서 아래로 할 것인지 아래에서 할 것인지도 경쟁했어. 물론 이것은 앞의 것들보다 치열하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계산 속도와 정확성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쯤 짐작할 수 있겠지?

이렇게 좋은 체계를 10 진법 이라고 불러. '진법' 이라니 좀 헷갈릴 수 있구나. 영어로는 decimal numeral system 또는 base-2 number system 이라고 불러. 12진법은 duodecimal numeral system 또는 dozenal numeral number system 또는 base-12 number system. 됐니? 됐다구? 아닌데... 하나만 더 해보자. 아주 중요한 2진법은 binary numeral system 또는 base-2 number system 이라고 해.

자 그럼. 덧셈과 곱셈을 해볼까? 우선 둘은 하나에 하나를 더한 것 으로 이해했잖니? 그래서, 나중에 다시 나오겠지만, 지금은 덧셈을 이렇게 이해하기로 하자. 둘 더하기 셋, 숫자로

으로 말야. 덧셈은 두 수가 있을 때만 할 수 있잖아. 아직은 1+1+1 할 수 없지. (1+1) + 1 을 하거나, 1+(1+1)만 할 수 있어. 괄호는 '그 안에 있는 것부터 계산한다.' 는 말이야. 또는 은 2 가 있을 때 하나가 세 번 더해진다는 말이니까, 또는 간단히

이 될거야. 밑에 있는 3 은 '세 번' 이라는 뜻이고. 이제 좀 더 '복잡한' 계산을 해보자꾸나. 이제 을 해볼까? 아휴~ 복잡해. 자 보자. 먼저 7에서 9까지는 둘이 있어야 하지. 다시 말해 이고 여기에 하나가 더해지면 드디어 으로 1이 다시 등장하면서 한 자리 가 올라가. 그리고 여덟 번 1을 더해야 했으니까 다섯 번만 해주면 되겠지? 그래서 답은 . 그럼, 자, 이제,

를 계산하고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을 적어보아라.

덧셈할 때마다 이런 절차를 하고 있으면 따분하지? 대신 아주 편리한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어. 아래 표를 하나 외우고 있으면 돼. 이 표가 왜 그렇게 되는지는 이해할 수 있지? 바로

0부터 9까지 10개 숫자를 자릿수법으로 나타냈기 때문이야 !

어때? 이렇게 하면 9 + 9 까지는 금방 나올 수 있어. 문제는 외우는게 문제인데. 벌써부터 명훈이는 이미 외우고 있을테니 지금은 하나도 문제가 안되지? 자 그렇다면 앞에서 봤던 를 해보자. 다음의 절차를 한단계 한단계 따를거야.

  • 뒤에 있는 두 수를 본다. 그에 해당하는 값을 표에서 찾는다. 음, 16 이군.
  • 여기서 1은 열은 뜻하므로 3에 더한다.
  • 새로 얻은 4와 9 에 해당하는 값을 표에서 찾는다. 13 이군.
  • 그런데 앞에서 4나 9는 자리수가 왼쪽에서 두번째 있으므로 40 과 90을 뜻했다. 따라서 앞의 1은 100을 뜻하고, 3은 30이었다.
  • 마지막으로 100 + 30 + 6 을 더해서 136.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 수를 나타내는 것을 최종적으로 자릿수-더하기법 이라고 하기도 해. 엄격하게 말하면, 100이 한 번, 10이 세 번, 1이 여섯 번 나온 것으로 본다면, 자릿수-곱하기-더하기 법이라고 해야 더 옳지 않을까? 아무튼, 꼭 앞에서 내가 말한대로만 해야하는 건 아니야. 처음 16을 찾았으면 그대로 두고, 나중에 3과 9를 더해서 12, 다시 말해 120을 얻고, 그 다음 120 + 16을 더해도 되겠지. 더 쉽게 할 수도 있단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덧셈의 성질을 알아야 해.

먼저, 앞에서 말했지만, 덧셈은 두 개의 수가 있어야지. 당연하지? '무엇'에 '얼마만큼' 더하니까. 무엇에 해당하는 것과 얼마만큼에 해당하는게 하나씩은 있어야지.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만큼'에 '무엇'을 더해도 결과는 같아 ! 예를들어 3 에 1을 아홉번 더하는 것이랑, 9에 3을 세번 더하는 것이랑 같아 !

실제로 앞의 덧셈표를 봐도 그렇지? 그런데 모든 자연수에 대해서 항상 이렇게 될까? 우연히 999조 9999억 9999만 9999 까지만 되고, 그 다음 수랑 그보다 999 큰 수랑 더한 것은 3+9 했듯 순서를 '교환'해서 더하면 다른 값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

어떤 자연수 하나와 어떤 자연수 하나를 더하면, 그 자연수들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더하는 순서를 바꾸어도 값은 갔다. 왜 그럴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꼭 공책에 적어봐. 그리고 이번엔 그렇게 적은 내용을 삼촌한테 답장으로 보내주겠니? 지금까지는 그냥 공책에 적어보는 것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공책에 적은 것을 사진으로 찍어 편지와 함께 보내주거나, 편지에 말로 그 이유를 써서 보내주라. 우리 명훈이가 얼마나 삼촌의 수학 편지를 열심히 보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말야.

덧셈은 아주 쉬운 것으로 알고 있지? 자, 그럼 10진법 덧셈을 잘 이해하고 있나 확인해보는 문제를 내볼까? 스스로 알아맞춰 봐.

ㄷ ㅓ ㅎ ㅏ ㄱ ㅣ ㄷ ㅓ ㅎ ㅏ ㄱ ㅣ 를 하면 ㄱ ㅗ ㅂ ㅎ ㅏ ㄱ ㅣ 가 되는 숫자가 있을까?

앞에서 ㄷ, ㅎ , ㄱ , ㅂ, ㅏ , ㅗ , ㅣ 는 모두 어떤 숫자를 대신해서 쓴 것이라 하자. 그리고 같은 문자면 같은 숫자를 뜻하고 다른 문자면 다른 숫자를 뜻한다고 해. 있을까?

없지. 왜 ? 마지막 두 문자는 기호가 같아서 더하기 잖아. 그런데 그것들을 더했더니 다시 가 나왔어. 그런 숫자가 있니? 물론, 있어, 뭐 ? 0 . 그것말고는 없지. 그런데 그 다음도 더하기 이래. 그러면 도 0 이잖아. 이것은 말이 안되지. 서로 다른 문자는 다른 숫자라고 했는데, 이 같은 수를 뜻해버리잖아. (아,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우린 아직 0과 어떤 수를 더하는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네, 어떻게 생각하니, 명훈이는?)

다른 것 하나 더 해볼까? 이번에도 명훈이가 푼 것을 반드시 이유를 적어서 삼촌한데 편지로 보내주라. 이번에도 문자는, 어떤 숫자를 대신해서 쓴 것이고 같은 문자면 같은 숫자를 뜻하고 다른 문자면 다른 숫자를 뜻한다고 해.

ㅈ ㅜ ㅁ ㅓ ㄱ + ㅈ ㅜ ㅁ ㅓ ㄱ = ㅅ ㅅ ㅏ ㅇ ㅜ ㅁ 이 되도록 문자 기호에 대응하는 숫자가 있을까?

뒤에 이 두 번 쓰였단다. 'ㅆ' 이 아니니 헷갈리지 말아라.


오늘은 이만할까?

사실, 기왕에 '10진법'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문제를 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우리 명훈이 벌써 지쳤을 것 같아. 삼촌도 이제 어깨며 팔목이며 눈이 아파서 더는 못쓰겠구나. 잘 못하긴 하지만, 컴퓨터로 필요한 그림을 그려 넣어야겠다. 그리고 혹시 틀린 글자가 있는지 다시 읽어보고 바로 보낼께. 남은 이야기는 또 다음 편지에서 찬찬히 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숙제를 몇 개 내볼께. 이미 본 문제들일거야. 다시한번 공책에 말끔하게 적어서 앞에서 했던 것들이랑 함께 답을 보내주라. 기쁜 마음으로 삼촌이 검토해볼께.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엄마께서 설겆이 하거나 청소하실 때 도와주길 바란다. 우리 명훈인 착하고 듬직하거니와 엄마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할거라 믿어. 사랑은 말로 그치는 법이 없거든. 그럼 다음 편지 곧 쓸께.

  • XXX + YYY = XXXZ 다. 그렇게 되는 X, Y, Z 은 있나? 가능한 모든 경우를 찾아보아라.
  • KIS + KSI = ISK 다. 그렇게 되는 I, K, S 는 있나? 가능한 모든 경우를 찾아보아라.
  • 숫자 8 과 덧셈만 써서 1000을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수는?

앞에서 했던 것고 같아. 같은 문자는 같은 숫자를, 서로 다르면 다른 숫자를 뜻한단다.

부산 청사포에서 삼촌이


보탬

이건 4월 4일 보탰다. 숨은 그림 찾기 해보라고. 이 그림은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에서 유명했던 화가 Domenico Ghirlandaio 가 그린 그림이야. 이 그림이 몇 년도 작품인지 알 수 있는 신호가 그림 안에 숨어 있어. 몇 년 쯤에 그렸을까?

기릴란다이오, 플로렌스, 양치기들의 경배


Note

  1. 산통이라고 해. 그래서 셈을 하는 학문을 '산학(算學) 이라고 했어. 삼촌이 보기엔 지금 쓰는 '수학'이라는 말보다 '산학'으로 하면 더 좋은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단다. 조선시대 산학에 대해 더 자세히 보고 싶으면
    (산학서로 보는)조선수학 (장혜원 지음. 경문사 ,2007)
    이라는 책을 보면 된단다. 복잡한 계산을 나뭇가지들로 해내는 것을 보면 놀랍지 !
수학 편지 대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