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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30일 (목) 09:19 기준 최신판

화합과 평화의 서울 국제 음악제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서울에서 ‘화합’의 축제를 꾸민다. 다음달 22~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예술의전당·금호아트홀 등에서 펼쳐지는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가 그 무대다. 국가와 인종, 종교와 이념, 시대를 초월해 화합과 평화를 노래하는 이 음악 축제의 중심에 예술감독인 젊은 작곡가 류재준(39)씨가 있다. 그는 현대 작곡계의 살아 있는 전설인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후계자로 세계 음악계가 주목하는 작곡가다.


“연주자 쇼케이스가 아니라 진짜로 주제가 있고 전체를 통틀어 하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페스티벌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어요. 애스펀 페스티벌 같은 중요 음악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라도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그만큼 페스티벌을 믿기 때문이죠.”

류 감독은 “서울국제음악제가 ‘그들만의 리그’란 소리를 듣는 음악이 아니라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잔치로 꾸미고 싶다”고 밝혔다. ‘음악을 통한 화합’을 주제로 내건 이번 축제에는 펜데레츠키를 비롯해 아르토 노라스(첼로, 핀란드), 랄프 고토니(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폴란드 국립 방송교향악단, 김정원(피아노), 김소옥(바이올린) 등 동서양, 거장·신예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들이 대거 참가한다.


그는 음악제 주제와 관련해 “올해 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음악을 통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 공연이 초청한 연주자들이 준비한 레퍼토리를 듣는 것이었다면, 이번 음악제는 화합이란 큰 주제 아래 각각의 공연마다 화합을 담은 작은 주제를 짜고 작품과 연주자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2일 개막 연주는 ‘이념을 넘어서 평화와 화합의 멜로디’라는 작은 주제 아래 팔레스타인 출신 무슬림 바이올리니스트 아이만 무사하자예바(카자흐스탄)와 이스라엘 출신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로이 실로아가 펼치는 협연 무대로 꾸며진다. 두 사람은 류 감독의 요청에 따라 바흐의 <두 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으로 종교와 이념을 넘어 평화와 화합을 연주하게 된다. 특히 무사하자예바는 무슬림으로는 보기 드물게 국제 클래식 음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평화홍보 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실로아도 15살 때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세계 투어를 했던 실력파다. 류 감독은 “무사하자예바는 음악을 무기와 생명수라고 믿으며 평화를 위해 전세계 분쟁 지역을 누비는 존경을 받는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실로아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을 선뜻 해주었다”며 “자기에게 어떠한 불명예가 오더라도 감수할 수 있다고 믿는 음악가”라고 칭찬했다.



이번 음악제는 스승 펜데레츠키와 제자인 류 감독이 함께 만드는 무대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쏠린다. 펜데레츠키의 <라르고>(2003)와 <현악3중주>(1990~1991), <교향곡 8번>(2007)이 한국에서 초연되며, 제자인 류 감독의 <진혼교향곡>(2008)도 아시아에서 처음 연주되기 때문이다. <진혼교향곡>은 30일 유명 음반사인 낙소스의 음반에 <바이올린협주곡 1번>과 함께 담겨 전세계에 동시 발매될 예정이기도 하다. 지난해 3월 폴란드 베토벤 페스티벌에서 폴란드 방송교향악단과 크라쿠프 국립라디오합창단, 카메라타 실레지아 합창단, 소프라노 김인혜 서울대 교수가 초연했던 곡이다.

“본래 이름은 <심포닉 레퀴엠>(교향 진혼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펜데레츠키 선생님이 음악을 듣고 난 뒤 레퀴엠에서 어떤 요소를 가지고 온 교향곡이니 <신포니아 다 레퀴엠>으로 이름을 짓자고 하셨어요. 베토벤 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선정돼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으로 펜데레츠키 선생님의 <바이올린 콘체르토>에 이어 메인 곡으로 연주되어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번 음악제는 그동안 많은 분에게 받은 것을 나눠주기 위해 저 나름의 노력이 만들어낸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며 “작곡가는 작품으로 말하듯 앞으로도 작곡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갈릴레이의 딸

25년 전 내가 처음 왔을 때 피사의 사탑은 앞에 노점이 몇 군데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이제 사탑 옆에는 두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2차대전 때 폭격에 탄 성원(캄포산토, 묘지)이 복원되어 ‘기적의 광장’은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1173년 착공한 8층 탑은 3층이 올라갈 때부터 기울기 시작했다. 땅속에 돌을 박아 탑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으나 1350년 준공했을 때는 반대로 기운 상태였고 20세기 말에는 기울기가 4.5m에 이르렀다. 1990년부터 출입을 막고 10년 넘게 보강공사를 했다. 탑을 1838년 위치로 돌려놓는 데 성공해 2001년부터 다시 일반에 공개했다. 보수는 내년에 끝날 예정이다. 공사를 지휘한 런던대 벌런드 교수는 탑이 300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갈릴레오는 피사에서 태어나 피사대학을 다녔고 모교의 교수가 된 뒤 3년 만에 파도바대학으로 옮겨갔다. 주제페 주스티 길 24·26에 있는, 그가 태어난 ‘암만나티 (갈릴레오의 어머니)의 집’에는 지금은 부동산회사가 자리하고 있다. 탑 가까운 곳의 ‘갈릴레오의 집’은 도서관 겸 연구소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을 받은 뒤 1634년부터 8년 동안 피렌체 남쪽 교외 아르체트리의, 미리 사 둔 별장 ‘보석’에서 말년을 보냈다.

갈릴레오는 결혼한 일이 없지만 가정부 마리나 감바와의 사이에 두 딸과 한 아들을 두었다. 사생아라 결혼할 수 없는 딸들을 그는 아르체트리의 산 마테오 수도원에 보냈다. 작은딸은 평생 병치레를 했으나 큰딸 비르지니아는 16살에 베일을 쓰고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되었다. 마리아는 34살에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아버지와 서신으로 접촉했다. 갈릴레오의 편지는 찾을 수 없어도 마리아가 보낸 124통의 편지가 남아 있다. 이 편지들은 피렌체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고 갈릴레오 전집에 수록되었으나 사가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뉴욕 타임스> 과학기자를 지낸 소벨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갈릴레오의 딸>(1999)이 나오면서 거장의 인간적인 면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딸의 편지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물씬 배어 있다. 애틋한 사연도 많다. 수도원의 추운 방과 거친 음식을 호소하면서 남는 이불을 빌려 달라고 한다. 딸은 케이크, 냅킨, 약을 만들어 보내고 아버지는 손수 요리한 시금치를 보내 준다. 수녀가 될 때 택한 이름 첼레스테(하늘)에서 이미 아버지를 배려했거니와 마리아는 새로 나온 책도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아버지는 수도원의 창틀을 손봐 주고 시계를 고쳐 준다. 아르체트리의 별장은 산 마테오 수도원과 붙어 있다. 서재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수도원을 바라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별장으로 돌아오기 넉 달 전 마리아는 이질에 걸려 죽는다. 아버지의 엄청난 슬픔과 좌절은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 보인다.

8년 뒤 죽은 갈릴레오는 성당 종탑 밑에 묻혔다가 95년이 지난 1737년에야 산타 크로체 성당에 이장되었다. 딸과 합장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나 그런 기록은 없다. 무덤을 열어 이를 확인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지난해 봄 논쟁이 일어났다. 피렌체 과학사박물관장 갈루치는 디엔에이 검사로 합장 여부를 가려내고 갈릴레오의 실명 원인도 찾자는 학자들의 선봉장이다. 반면 산타 크로체 성당 주임신부 디 마르칸토니오는 그건 ‘사육제’(카니발)라고 단호히 반대한다.

갈릴레오의 망원경 관측 400돌 기념행사가 이탈리아 전역에서 풍성하다. 5월 말 피렌체에서 열리는 국제학회 ‘갈릴레오 사건: 역사·철학·신학적 다시 읽기’가 기대된다. 피날레는 아르체트리의 별장에서 있다는데 못 보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