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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7일 (수) 15:49 기준 최신판
영재 교육,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나?
들어가는 말
오늘 제가 하는 발표 제목이 거창합니다. 제가 욕심을 지나치게 부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곧, 제가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놓고 답을 찾는 욕심을 부리거나, 혹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고 해도 영재를 가르친 경험이 저보다 많은 선생님들 앞에서 그것을 꺼내놓는 것도 욕심이 지나친 듯 싶습니다.
- 그런데도 제목을 그대로 두고자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도 감히 그대로 두었습니다. 첫째 이유는 수학공부를 하였던 제가 영재교육분야에서 그간 보고 배우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회를 만나면서 느꼈던 것을 정리하여 이 분야에서 일하는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없더라도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과학기술부에서 주로 이끌어왔던 영재교육분야를 마침내 교육인적자원부 단위에서 수월성 대책을 제시하고 영재교육진흥법을 국회에서 개정해 나가면서 영재교육에 관한 정책과 시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거나 나올 듯합니다. 수월성 대책에 어떤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이미 아실 것입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최소한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통상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리라 여겨집니다. 다시 말해 범국가적으로 영재교육을 고양하려는 움직임이고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일들을 기획하고 시행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가 틀을 짜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돌아봐야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둘째, 대문장가 고원 최치원은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하라(爲可爲於可爲之時)”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고 때가 적절하지 않은데 억지를 부리는 것은 나중에 될 수 있는 일을 돌이킬 수 없이 완전히 뿌리를 뽑아버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고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토론이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한다거나 하던 대로 하는 게으름을 피운다면 일을 그르칠 것이고 교육은 그 일이 아이들에게 직접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은 더 큽니다.
- 셋째, 주제 발표를 하는 저는 영재교육 전문연구자도 아니고 영재교육을 전담하는 정식 교원도 아닙니다. 대신 저는 부산영재교육진흥원에서 지난 이 년 여 동안 외국의 영재교육 사례를 눈으로 보고 직접 물어볼 기회를 가졌고 연수를 준비하고 운영했으며 영재교육세미나에 더러 참여하였고, 초등부터 과학영재학교 영재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특강과 정규강좌를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는 자기 자랑이 아니라 발표를 하는 저의 사회 존재적 근거가 이러저러하니 여러분들께서 걸러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영재교육 전문연구자도 아니고 전문 교육자도 아니어서 어정쩡하지만 대신 중간에서 양 쪽을 두루 바라볼 수 있는 처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위의 질문을 던지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아니고 교육자의 입장에서도 아닌 그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달리할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위의 세 이유를 들어 감히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따라서 이 발표는 제가 감히 여러분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께 문제를 던지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자는 의미에서 논쟁적 성격을 드러내었으면 합니다. 따라서 동의하지 않는 분이 많이 나오길 바라고 그 분들과 함께 토론을 해서 우리나라 영재교육,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영재교육은 현재 어디에 와 있나?
누가 우리나라 영재교육을 이끌고 있나?
영재교육은 최소한 영재성이 분명히 존재하거나 영재가 있다는 전제아래서 시작합니다. 이것을 의심하는 것은 소모적인 생각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영재교육의 중심에는 영재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존재하거나 영재라는 구체적인 사람이 존재합니다. 영재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개발할 것인가를 밝히는 것은 최근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유구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개념이 확립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사회문화적으로 그에 대한 연구를 필요로 하고 그에 따라 꽃을 피운 것은 넉넉잡아 지난 100여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재교육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이 나와서 연구결과를 내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한 것은 최근 10여년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훨씬 그 전부터 예술학교의 설립(1953년 서울예고 개교), 과학영재를 위한 실험연구학교운영(1978년)과 같이 교육기관이 탄생하고 대학과 연구소(70년대 말 행동과학연구소, 한국교육개발원 개원, 1986년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실 개설)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영재학회(1992년)가 생기고 아·태 영재학회를 서울에서 개최(1994년)하고 대학에 과학영재교육센터(1998년) 운영한 것이 ‘영재교육’이라는 용어를 대중적으로 보급하고 일부 교원들을 대상으로 영재교육연수가 생기고 우후죽순처럼 ‘영재’라는 단어가 들어간 학원들이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 영재교육을 이끄는 주체를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적인 영역에서 우리나라 영재교육을 이끄는 주체는 영재교육전문연구자(대학과 전문연구소), 영재교육담당정책행정가(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시도교육청), 영재교육담당교원입니다. 이 세 주체가 영재교육의 중심이 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끄는 구체적인 실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일단 현재 우리나라에는 영재교육과정을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정식으로 개설하여 연구 전문 인력과 전문 연구 성과를 내는 곳이 몇 곳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현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 불과 지난 해 개설되었고, 건국대학교, 광주대학교를 비롯하여 몇 곳으로 한정됩니다. 그리고 연구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만한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원(영재교육연구실에서 얼마 전 영재교육연구원으로 규모도 커지고 승격되었습니다.) 거기서는 새로운 연구자를 배출하기 보다는 영재교육을 도울 도구를 개발하고 정책연구를 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듯 보입니다. KAIST 안에 있는 과학영재교육연구소 같은 경우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고 부산영재교육진흥원도 본격적인 연구 활동 보다는 교육청의 영재교육시행을 지원하는 역할로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한 연구기관들에 있는 연구자들 중 영재교육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연구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수리논리를 전공한 저도 사정은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영재교육을 전공한 몇 분이 지적하듯 그런 현상이 영재교육연구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는 요소로 보느냐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고 봅니다. 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수학을 모르고 수학영재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19개 대학의 과학영재교육원들은 영재교육에 대한 연구 보다 교육 쪽에 무게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영재교육담당정책행정가들 중 영재교육전문가가 있느냐 하고 물으면 이것은 회의적입니다. 최소한 영재교육분야에서만큼은 가장 앞섰다고 평가 받는 부산에서도 영재교육전문 교육행정정책가는 몇 분 안계십니다. 다른 업무와 겹쳐서 하시거나 그나마 길어야 몇 년 주기로 주 업무가 바뀌게 됩니다.
영재교육교원은 다행히 사정이 다릅니다. 전국단위, 지역단위 영재교육 연수가 생기고 지금까지 본격적인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그 자리를 맡아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물론 이 선생님들 중 많은 분들이 다른 일에 밀려서 영재교육전문교원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계시는지, 고쳐야 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하는 것에 대해서 아직 연구 조사된 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영재교육전문교원들이 스스로 연구활동을 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현상은 영재교육분야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외국에서는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역에서 연구결과를 내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고 전문가로서 그 분야에서 오래 일하게 됩니다.
사적인 영역에는 일일이 이름을 열거할 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보고 느끼셨겠지만 길거리에는 ‘영재’라는 용어가 안 들어간 학원이 드물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외국기관과 협약을 맺어서 그 나라의 연구개발성과를 우리나라에 맞게 상품화하여 파는 경우도 있고 국내 영재교육전문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비록 사적인 영역에서라 하더라도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부끄럽지 않을 만한 노력을 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영재교육 연구, 교육 분야에서 전문 인력을 키우지 못하는 현상이 가장 개탄스러울 때는 영재교육전문가를 모시고 초청 강연을 할 때 저번에 들은 이야기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 없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들리거나 공허한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볼 때입니다. 게다가 국가 정책 과제를 주로 수행하는 분이나 영재교육관련 연구자의 이름을 들어보면 벌써 수년째 거의 변화가 없이 몇 분이 주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전문 인력이 계속 받쳐주어서 다양한 관점과 연구, 교육 방법을 적용하는 체제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은 흐르고 때가 되면 꽃은 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영재교육 누구를 대상으로 하나?
어떤 의미에서 국가의 영재교육에 대한 중단기 정책발표였다고 할 수 있는 수월성 종합대책을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 중 5% 정도를 영재교육을 우선적으로 받을 대상으로 하고 차츰 그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은 없어 보입니다. 영재교육 대상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문화에 따라 나라마다 제각각입니다. 30%정도까지 영재로 보고 폭넓게 영재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고 그 안에서 점차 옥석을 구별해가는 정책을 하는 나라도 있고 러시아 영재교육 전문가는 전체 인구에서 일반적인 영재성을 유지하는 수를 10%정도로 보고 그 중 아주 수준이 높은 영재는 0.1% 정도로 보았습니다. 소수 정예를 뽑아서 그 아이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실시하는 문화를 오래전부터 이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영재성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면 본질적으로 의미 있는 숫자들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몇몇 학문 분야와 몇몇 한정된 예술·체육 분야로 영재를 판별해 볼 수 도 있지만, 미래 사회의 변화양상을 고려해서 게임, 놀이, 남을 돕는 일, 교류 통상, 기획, 투자와 조직운영 등으로 확대해서 본다면 그 비율은 많이 달라져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 우리나라 영재교육을 부흥시키고자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나?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제도적 틀은 몇 년 전 제정되어 시행되고 현재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영재교육진흥법을 먼저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보면 영재학교 학생들의 입학금이나 수업료를 지원하고, 동일 계열 상급 기관에서 교육받을 가능성을 높이고, 초등학생도 실력이 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는 등 속진과 월반의 개념을 적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이미 수 십 년 전 우리나라에도 해보았던 방법들과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현재는 영재교육의 핵심 부서이고 수월성 종합대책을 곰곰이 따져 보았을 때 문화홍보부나 정보통신부도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투자를 할 것입니다.
현재 영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역시 자연과학분야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차세대 과학기술인력 확보 차원에서 심각한 위기에도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부에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무시무시한 개념과 용어로 각 대학과학영재교육원 증원 및 지원 확대, 과학영재학교와 과학고등학교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실이 ‘과학영재학교 확대발전 방안’이라는 주제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고교과정 영재교육대상자가 매년 550명 필요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과학영재학교를 늘리고 국립학교와 하는 방안을 추천하였다고 합니다. 또는 현재의 과학고를 과학영재학교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근거가 됩니다. 제 생각으로 이는 여러 가지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범국가적 차원은 아니라 해도 지역단위, 학교단위로 다양하게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을 걸고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각시도 교육청에서는 영재학급을 운영하거나 교육청 산하에 영재교육원을 두어 주로 격주로 주말이나 방학에 집중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수 목적 학교에 따라서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거나 운영할 계획을 수립 중입니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궁극적 목적이자 교육수혜자인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갖는 당혹감을 아직 해결할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아직도 영재교육일반에 대해 충분히 알만한 기회를 갖지 못했고 지금도 그것을 알 수 있는 기회나 여건이 풍요롭지 않은 채 제도라는 형식적 틀에 끼워 맞춰 나가야 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나?
영재에 대한 말들
- “재는 ‘영재’니까 좋겠다.”
영재교육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영재’라고 불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부심이 높고 그 이름이 공부하는데 아이를 자극할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연구의 결과 영재라는 또하나의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아이들은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부모에게도 이는 아이들에 대한 헛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어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이나 영재교육원 학생들 중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영재라고 불리는 것에 은근히 자부심이 있으면서도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면 자기를 비하시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이니까 이것은 놀라울 것이 없지만 그런 계기를 마련하는 데 ‘영재’라는 말을 자주 쓰는 우리는 책임감을 분명히 느껴야 합니다.
- 모든 영재는 창의적이다. 또는 창의적이 아니면 영재가 아니지.”
서구에서 50년대 이후 창의성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더 창의적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고 있지는 못합니다. 단지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창의성이 발현되도록 돕는다는 것에는 대체로 뜻을 같이 할 뿐입니다. 영재성의 개념을 정의할 때도 창의성이 중요한 항목의 하나이므로 마땅히 영재라면 창의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창의성 정도를 측정하고 연구조사해본 결과에 따르면 결과는 예상과 많이 다릅니다. 올림피아드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그 중 창의적 영재는 10%에 불과했고 그 중에서도 매우 창의적인 영재는 2%에 불과 했다고 합니다. 영재도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나누어 보았을 때 높은 지적 능력과 욕구를 가진 영재들과 창의성이 높은 아이들을 놓고 실험을 해보면 행동양식이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창의적 영재는 보통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적 능력이 높은 영재들에 비해 성취도가 낮고 자칫 문제아로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큽니다. 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이 부분에서 한걸음 쉬고 생각해봐야할 것이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영재 중에서 창의성 높은 영재가 문제아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라는 말을 뒤집어보면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아이들 중에서 미성취영재가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영재성은 어린 시절의 특수한 현상이야, 너무 늦었어.” “저 아이는 영재가 분명해 앞으로 뭐가 되도 될 거야.”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뇌와 신경계통이 발달하고 사회문화적인 경험도 풍요로워집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나이에 따라 다른 정서와 재능을 드러냅니다. 이는 아이들이 나이에 따라 어떤 영역에서는 더 민감하고 어떤 데서는 덜 민감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보통 어린 아이일수록 언어습득에 민감하고 대상에 감정이입을 잘하는 반면 새로운 것 보다는 모방하는 성질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이때는 배우는 것에 흥미를 크게 나타내고 엄청난 속도로 배웁니다. 대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상적인 아이라면 자립심이 커집니다. 스스로 문제를 풀어보려 하고 어딘가로 떠나서 스스로 무언가를 조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에 따라서는 반항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영재성을 드러내고 호기심도 그러한 일반적 성향에 따라 방향과 정도가 다르게 드러납니다. 반대로 성인이 될 때까지 영재성이 드러나지 않다가 적당한 환경을 만나서 영재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의 영재성도 나이가 다르면 다르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영재성을 보인 아이가 적당한 자극을 받지 못하고 환경이 올바르지 못할 경우 쉽게 영재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또 지적으로 영재인 아이라도 그의 심리적 정서적 수준은 일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영재라고 판명되었다고 해서 그 아이를 더 나이가 많은 집단을 속하게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영재에 대해 수십년동안 관찰 추적한 종단 연구들을 보면 제 나이에 맞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잘 받은 학생은 학교 시절부터 중년, 노년까지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영재성을 잘 보존하고 그 나이에 맞게 드러낸다고 합니다.
- "재는 영재라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상하게 행동하는군.”
영재는 이상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행동하는 아이를 영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까지도 종종 있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은 어떤 분야에서는 영재일 수 있기 때문에 이상하게 행동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영재가 아니라고 할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를 따르면 잘 짠 프로그램으로 영재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영재들은 인성 면에서도 조화롭고 책임감이 강하며 집단의 지도자로서의 역할까지 잘 해낸다고 합니다.
- "와, 지능검사 점수가 높네, 역시 다르다.” “어? ○○가 이번에 아이큐 검사에서 일등 했대요. 역시 그 아이는 특별하더니 영재는 진짜 영재였어.” “영재, 영재 뭐가 그리 복잡한가, 공부 잘하는 아이가 영재지.”
제 경험에 따르면 이 말은 재능이 있는 아이들 끼리 더 심각하게 자주 이야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지능지수가 참고자료로 쓰일 수는 있어도 큰 의미를 주는 것은 부질없다고 해도 듣지 않습니다. “이번에 영재학교 안에서도 누가 지능지수 검사에서 일등 했다더라.” 하곤 합니다. 지능지수에 성적을 연결시킨 셈이지요. 이런 말을 들으면 우습기도 하지만 우울해지곤 합니다. 지능검사도구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 문화적 편파성을 가지기 때문에 영재성을 판단하는 것으로서는 적당하지 않다고 하는 연구결과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특정한 분야에서 영재성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지능검사도구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성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재교육에 대한 말들
- “영재란 없어. 아니 있어도 알아서 잘 클 것이기 때문에 따로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마음 쓸 필요 없는 것이지.”
이런 말을 하는 경우 자주 만나셨나요? 우리나라 어떤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학교 경영자 중 반이 넘는 수가 자신의 학교에는 영재가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또 교육행정가와 주임교사 중 5% 정도는 영재란 없다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는 영재와 영재성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거나 영재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지어 영재를 뽑는 기준에 창의성에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주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재교육이 특혜 교육이고 그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돕는 것 보다는 보통아이들 보다 못한 아이들을 위해 지원을 더 해야 하다는 뜻을 가진 분들도 많습니다. 제가 스웨덴 왕립과학학술원에서 만난 물리학자는 아이들과 만나 수업도 하는데 그분의 의견은 단호했습니다. 물론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사회주의라서 그런 영향도 있었겠지만 영재교육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드물지 않게 이런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적용되고 있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불신일 수 있고 영재교육에 적절하지 않게 투자하거나 지원하는 데 대한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 “영재들을 보통 애들이랑 함께 두는 것은 피차 고달프고 선생님도 힘들어. 영재들은 따로 모아서 길러야 맞아.”
영재들은 결국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들이 특별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닫힌 환경에서 살도록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모스크바 교육청의 야심작인 영재학교 “인텔렉츄얼”를 세우는데 무려 일 년 동안 논쟁을 거듭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해 학교 설립을 위해 모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두 합의할만한 필요하고도 충분한 항목을 뽑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항목은 평범해 보이기만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흘려 넘기지 않아야 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영재학교 “인텔렉츄얼”의 ‘개방성’ 이었습니다. 이 학교에서는 지금도 학교 영재학생들의 본 수업이 끝나면 보통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누구나 원하면 이 학교에 와서 영재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여러 가지 보충수업을 선택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영재학교 아이들은 일반학교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곤 합니다. 또 영재학교 아이들이 현실에 참여해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스라엘 영재학교인 예술과학고등학교에서도 사회봉사활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영재아이들이 노인들을 위해 책읽어주기 봉사활동을 하거나 국가 유공자를 찾아가 병간호를 하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어차피 몇 년이 지나면 사회에 나가 국가의 운명을 지고 가야할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과학, 예술 영재학교와 같은 학교들을 만든 것이 40년이 넘었다고 할 만큼 영재교육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온 모스크바에서 초등학교 5학년 부터의 아이들을 따로 모아서 함께 살게 하는 영재학교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따로 학교를 세웠으면서도 왜 ‘개방성’을 필수적인 요소로 뽑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반대로 영재교육의 방법을 일반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잘 짜진 영재교육 프로그램일수록 일반 아이들에게 적용하기 힘들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영재교육 프로그램 중 많은 것은 서로 다른 영재들의 영재성에 맞게 짜진 경우가 많고 고도로 심화되어 많은 시간을 들여서 아이들이 감내해야하는 문제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반아이들에게 맞지 않는 것을 떠나 불필요한 억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특수한 경우이고 참고교재가 많아지고 교육방법이 다양해진다는 점에서 영재교육이 일반 학교의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내가 영재가 아닌데 어떻게 영재를 가르치나?”
자주 들리는 말입니다. 실제로 대학에 영재교육과정 자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우리들 중 영재교육이라는 것을 따로 받은 경험이 있는 분은 드물거나 전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재교육을 하는 교사의 소양이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 하는 수많은 연구 중 어떤 연구에서도 교사가 영재여야 한다는 결론을 낸 결과는 없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호기심이 많고, 유머감각이 있고 잘 안되더라도 도전하려는 성향이 있고 자기 스스로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영재교육을 하는데 적당한 소양으로 꼽히는 덕목들입니다.
- “영재교육의 성패 여부는 교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말도 자주 들으셨을 것입니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위험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선생님이 영재라 불리는 아이와 영재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전공분야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 영재들에게 도움 안 된다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영재교육 관련 책들을 보아도 영재교육의 성패는 교사에게 있다고 써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먼저 학부모가 교사를 믿고 따라야 하고 영재교육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영재교육연구가들이 충분한 연구 성과를 내서 선생님들이 어렵지 않게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각 과목별 전공자들이 교사들이 영재교육을 하는데 참고할 교재를 충분히 만들어놓아야 하고 영재교육행정정책가들은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먼저 또는 함께 풀어야 할 문제를 뒤로한다면 이런 말은 자칫 교사들에게 모든 문제를 떠넘기는 셈이 되고 맙니다.
- "영재교육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답을 가르쳐달라.”
여기에 정답이 있을까요? 저는 정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재교육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른 방법과 내용을 담았습니다. 영재교육을 하고 있는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른 방법을 적용하고 있고 심지어 각 영재성에 따라 다른 방법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아이마다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영재교육인 만큼 상황에 따라 다소 절망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영재교육을 할 수 있는 보편타당하고 절대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적 영재교육은 가능한가?
영재교육도 사회문화적이고 역사적 산물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이 처한 환경이 21세기 한국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영재들을 만나는데 보편타당하고 정답을 내놓으라고 때를 써서는 안됩니다. 우수한 아이들은 따로 뽑아서 가르쳐야 한다는 내용은 이미 플라톤 시대부터 있어왔습니다. 그 이후 긴 역사 동안 서양은 서양대로 동양은 동양대로 나라마다 그 시기와 문화에 맞는 영재교육을 적용해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미국 영재교육의 역사만 돌아봐도 약 100여 년 전 사람에게 지능차이가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연구하는 것에서부터 영재성의 본질을 이해하고 영재를 정의하고 판별하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데 수 십 년이 걸렸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다른 서양 국가와 함께 창의성 연구가 꽃을 피웠고 영재교육프로그램과 교육과정 평가 연구가 활발했습니다. 아울러 탁월한 특정 지적 능력의 개념에 대한 연구와 그에 따른 프로그램 개발, 미성취 영재에 대한 연구도 활발했습니다. 그 이전부터 그 이후에도 아동의 발달 단계에 따른 영재성 연구가 진행중입니다.
수학영재를 위한 프로그램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 프로그램들이 있고 영재심리개발(예 : 창의성, 자기조절 능력, 사회성 개발)과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도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아직 대중화하기도 전에 영재교육을 정착시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21세기는 셀 수 없이 많은 방면으로 영역이 쪼개지고 가치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달해가고 있고 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상품화되고 그에 따라 가치기준이 빠르게 분화하고 바뀌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영재교육의 핵심 분야였던 예술과 자연과학분야만 보더라도 예술 안에서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고 10년 뒤에 어떤 과학기술이 세계를 주도할 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영재에 대한 정의, 인식과 판별, 영재교육과정을 세우고 평가하는 문제를 포함해서 영재교육 전반에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반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당면하는 어려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백년을 걸쳐 쌓아온 연구와 교육성과를 압축해서 따라 잡아야 하고 동시에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상응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에 대한 노력과 고민을 늦출 경우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아이들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따라서 잘못된 교육을 하게 되고 그 아이들이 살아갈 21세기에서 아이들이 자아를 실현하고 제대로 살아가도록 대비하는데 줄 수 있는 도움을 미처 다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까지도 소홀할 경우 문제는 심각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나?
- 정책과 시책을 세울 때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정책과 시책을 내는 정책가, 연구가들은 보다 신중해야 합니다. 정책행정가들도 영재교육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자주 가져야 합니다. 아울러 영재교육의 시대적 중요성을 반성하고 지원을 가능한 넓힐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학과 연구기관에 비판적으로 요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당장 성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충분한 연구와 고민을 통해 몇 년 뒤에 어떤 성과가 나올지 고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연구자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영재교육의 현주소가 어떤지,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작은 연구결과라도 연구하고 발표하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합니다. 실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이해가 되지만 주제의 폭을 줄이고 일의 규모와 완급을 조절해더라도 공동 연구 기회를 가지고 참여하고 발표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오, 라고 말하는 분위기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육과 연구를 하는 중간에 아니다 생각되는 부분, 때를 늦추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부분,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 우선적으로 무엇을 하고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영재교육 교사로서 기준을 세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들 하지만 사실 이런 ‘예, 아니오.’의 과정과 그로부터 생기는 갈등과 노력이 자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영재라는 용어 대신 다른 말을 써야 한다.
영재라는 용어는 이미 정착되어 이 주장은 부질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영재라는 말의 유행과 그로부터 오는 신비감을 없애기 위해서 21세기 영재교육의 목표와 방향에 맞는 새말을 찾고 그것을 보급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영재교육은 학문영재와 예술영재로 그 개념이 고착되어 있습니다. 또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영재라는 말은 그 말자체가 지나치게 높은 수준을 떠올리게 해서 ‘우리학교에는 영재가 없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영재’라는 꼬리표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달아주고 그 쳇바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 꼬리표를 단 아이들이 속으로 겪고 있는 아픔을 덜어주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 연구자와 교육자들은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앞의 ‘가’에서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다시 강조되어야 합니다. 특히 ‘영재판별’에 대해 들을 때마다 껄끄럽습니다. 교사들이 ‘우리가’ 영재를 제대로 뽑은 것인지 영재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하곤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하지만 영재판별의 문제는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루빨리 양성이 되어 영재판별의 적당한 기준을 세우고 실제로 선발 할 때뿐만 아니라 선발 후에도 면담과 상담을 통해 판별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전공별 교사 참고 교재는 전문 연구자들이 맡아야 하는 일입니다. 교사들에게 이 일을 떠넘기는 것이 과연 잘되고 있는 일인지 반성해야 합니다. 한 주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관점으로 쓰인 참고교재가 만들어지고 교사는 그런 바탕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지금 사정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루라도 빨리 고쳐져야 할 일이며 이를 위해 대학과 연구기관에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자 중에서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에 대해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전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서 영재성이 없다, 영재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회의하기 보다는 저 아이의 영재성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면 지금까지라도 보존된 재능 이 비록 아주 높지는 않더라도 잘 지켜주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영재교육뿐만 아니라 전공별 연구자와 만날 기회를 통해 교육과정과 강의 교재를 개발하고 보완해 가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연구자들은 계속 교사들과 교류해야 하고 이를 연구 성과로 발표하여 정책에 반영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고려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 영재교육연구회가 있고 많은 교사들이 석사과정을 하면서 참여하기 때문에 이것이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 외에도 연구 소모임이 연구자와 적당한 연구주제를 통해 그때그때 주제별로 연구를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마. 재능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과 충분히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을 적절히 나눌 필요가 있다. 하지만 둘 다 필수적으로 중요하다. 원하는 만큼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은 충분한 조건이지만 이는 재능아 교육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여 반드시 만족이 되어야 합니다. 영재교육을 받는 아이들에 대해 배울 것의 최하 수준을 높게 잡고 최상의 수준을 낮게 잡는 것은 매우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서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의심하고 다시 생각해보도록 해야 하고 수준이 높고 지적인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그것의 수준이 얼마만큼이든 그것을 만족할만한 통로를 찾아야 합니다. 교사가 그것을 모두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한사람이 그것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정책적으로 고려해야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합리적인 정책이 결정되어 자리를 잡기까지 교사는 그런 특별한 아이가 드러날 경우 그 아이의 재능과 욕구의 물꼬를 어떻게 터줄 것인지 다른 교사와 이야기하고 기회가 오는 대로 정책가들과 연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 합니다.
- 재능아 교육에 참여할 사람들은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서 서로 도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명쾌한 것인데도 그간 제가 본 경험으로 보면 현실에서는 잘 되지 않는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정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거나 집단 구획의식이 뿌리 깊은 우리 문화 때문인지 또는 다른 중요하고 더 깊이 있는 원인이 있는 것인지 그것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수직적으로는 초등과 중등, 수평적으로는 영역별, 교과별, 지역별 경계를 넘어 서로 도와야 합니다. 이것도 합리적인 제도를 개발하고 그 틀 안에서 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제도가 없다고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초등영재와 중등영재 사이에 교육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야 하는데도 현실은 그와 다릅니다. 영재교육의 이념과 영재의 특성을 보았을 때 영역별 통합 교과나 프로젝트 수업이 많아야 하는데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교과목을 정할 때도 특정 교과 중심의 이기적 현상들이 곳곳에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이라 보일 주장일 수 있겠다는 것을 알지만 이것 없이 교육과정의 연계, 통합교과의 개발이라는 말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이상 너머의 신기루가 아닐 런지요?
- 유아부터 고등학교까지 재능아 교육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이것은 당장 실현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초등 5,6학년과 중학생 정도의 나이를 가진 재능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장 가능한 일입니다.
결론
제목에 걸맞지 않게 발표가 싱겁게 끝나지 않았는지 염려가 됩니다. 그리고 발표가 대부분 주관적인 것이라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위에서 논쟁점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재료삼아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을 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방향을 정하고 큰 틀을 짜고 정책과 시책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창의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두 동의하고 있듯이 창의성도 개발 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개발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쉽고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일반적 법칙은 없더라도 일반적으로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창의성이 더 잘 드러난다고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논쟁점들과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논쟁점들을 모아 이야기하고 창의적인 답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따라서 영재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민주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고 그것은 대화를 통해 일차적으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정책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아이디어와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힘이 되는 안들이 나올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연구와 개발 사업, 발표회와 같이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재교육교사 소모임을 만들어도 좋습니다. 영재교육연구회가 창립하였습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도 되고 다른 단체에 소속해도 좋고 따로 만들어도 좋습니다. 부산영재교육진흥원도 재능 있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님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교육행정과 정책을 담당하는 정책가들, 국내외 연구·교육 단체들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만들 것입니다. 참여하여 논의하고 함께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