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587: 두 판 사이의 차이

DoMath
편집 요약 없음
 
(차이 없음)

2007년 7월 18일 (수) 19:33 기준 최신판

한겨레 신문기사, 교과과정과 논술 시험 을 여기에 옮김.


논술에 대한 논란의 첫 기준은 교육과정의 문제다. 논술이 교육과정을 벗어났느냐 아니면 교육과정 내에 있느냐 하는 논란이다. 모두가 나름의 논리로 교육과정의 안과 밖을 판정하고 있으니 싸움이 될 리도 없으며, 이런 싸움은 끝이 날 수도 없다. 그것은 교육과정에 대한 정의(definition, 定意)가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의를 만들고 거기에 맞추어 자기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제대로 싸워서 이 논란을 잘 마무리하려면 지금이라도 교육과정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 그것이 수학에서 가르친 정의의 바른 사용이다. 법정에서의 논란 역시 법에 정의된 대로 판단해야 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바른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논란을 벌이고 사람들은 수학을 잘못 배웠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랄까.

그런데 문제는 교육과정의 정의에 대해서도 교육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를 중심으로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지식이나 학문의 구조를 가르치는 ‘학문 중심’으로 볼 것인가, 또는 문제 해결 능력, 논리적 추론 능력 등과 같은 ‘인지 과정’ 중심으로 볼 것인가 하는 등의 논란 속에서 아직 그 정의를 명확히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과거로부터 판례처럼 내려온 것을 기준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므로 교육과정 문서가 존재하며 이것이 곧 법이다. 그래서 수능에서 수리영역 문제에 대한 논란의 기준도 교육과정 문서, 더 실제적으로는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검정을 받은 수학 교과서가 되었다. 우함수와 기함수라는 용어가 수능 문제에 사용됐을 때, 교육과정을 벗어났다는 비판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는 이 용어가 교육과정에 규정된 용어는 아니지만 그나마 몇 개의 교과서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대충 넘어갔다.



그런데 지난 7월에 실시된 모대학의 2007학년도 대입 수시 1학기 논술 문제의 예를 보자. 제시문에 주어진 글의 일부다.

어떤 자연수 N이 소수인지 여부를 검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인수분해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N이하의 모든 소수들로 N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 이때 N이 실제로 소수일 때가 제일 큰 문제이다.

이 글에서 밑줄 친 ⓑ의 근거를 논술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이것은 소수판정법의 한 가지 방법을 말하는 것인데, 이하의 모든 소수들로 이 나누어 떨어지지 않으면 자연수 N은 소수로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려면 결론을 부정하는 귀류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런 정도의 증명이 교육과정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교육과정을 교과서가 아닌 수학 전체라고 판단하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제시문을 주고서 매미가 소수를 주기로 생활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두 가지 학설에 대해 각각의 근거와 예를 사용하여 논술하라는 문제가 있었다.

매미의 생존 주기가 종류별로 5년, 7년, 13년, 17년으로 다양한데, 그 공통점은 소수(prime number, 素數)라는 점이다. 왜 하필 소수를 주기로 생활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설명으로 유력한 두 학설이 있는데, 한 가지는 주기가 소수가 되면 매미가 천적을 피하기 쉽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학설은 동종간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스스로의 조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논술을 쓰려면 폭넓은 독서와 상식을 필요로 한다. 아니면 소수의 성질에 대하여 수학자가 하는 정도의 고민을 했다면 문제에서 원하는 바를 논술할 수가 있다. 그러나 어디 우리 학생들이 폭넓은 독서와 상식을 넓힐 기회가 있었던가? 세상에 그 많은 책을 다 섭렵해야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학생들의 상식은 얼마나 넓어야 하는가? 이것이 과연 교육과정인가?

지금까지 논술에 대해서 한 가지 예만 보여주었지만 대부분의 논술 문제가 교과서 또는 교육과정 문서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논술에 대한 논란이 치열한 것에 반해 이상하리만큼 심층면접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다음은 모 대학 2006학년도 수시 2학기 자연계열 면접·구술고사 문제다.

함수 이 을 만족할 때 “에서 대칭연속”이라고 정의하자. 함수 가 모든 점에서 대칭연속일 때 를 “대칭연속함수”라고 하자. 한편, 다음 극한 가 존재할 때 “에서 대칭미분가능” 하다고 정의하고, 또한 모든 점에서 대칭미분가능하면 함수 가 “대칭미분가능”하다고 하고, “대칭도함수” 를 모든 에 대하여 로 정의하자.

역시 교육과정에도 없는 새로운 ‘대칭연속함수’라는 것을 정의해놓고 각종 질문을 몰아친다. 솔직히 나도 이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 문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몇몇 대학에서 실시되는 자연계열의 심층면접 문제를 보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전혀 모르는 교수들이 출제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약자인 수험생과 고등학교 교사들은 항의가 먹히지 않으니 손해보지 않기 위해 일단 대비 공부를 해야 한다.

교육과정의 정의와 범위에 대하여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은 문서상으로는 교과서가 기준이며, 제도상으로는 학교 수업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위에 예로 든 문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논술과 면접 문제들이 교과서를 벗어남을 물론 학교 수업에서 교사들이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똑똑한 학생 몇 명 뽑자고 교육을 망치는 우(遇)를 더 이상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최수일/용산고 교사 choisil@hanmail.net


수학과 수학 교육에 대한 단상 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