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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ath
Parha (토론 | 기여)님의 2010년 12월 6일 (월) 12: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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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4대강으로’ 펴낸 한국 대표 건축가 김석철

서울 예술의 전당을 비롯해 1970~80년대 수많은 국가 하드웨어 개조사업에 참여했으며, 건축 수출의 길도 개척한 한국 대표 건축가의 한 사람 김석철(67·사진)씨가 40여년 도시 건축 세계를 종합하고 최근 구상까지 더한 증보판 <여의도에서 4대강으로>(생각의나무)를 내놓았다.

이 책에서 밝힌 ‘김석철식 4대강 살리기’는 그 구상의 스케일이나 목표, 철학부터 독특하다. 예컨대 1969년 여의도 계획과 한강 마스터플랜에서 시작해 40여년 계속되고 있는 그의 한강 프로젝트는 남북을 아우른 한반도 통합을 전제로 한다.

  • 한강과 서해를 잇는 ‘제3의 길’을 만들고,
  • 개성~서울~수원~인천을 아우르는 어번링크(urban link)를 구축하며,
  • 추가령구조곡을 통해 원산으로 이어지는 운하 회랑지대까지 염두에 둔 원대한 구상이다.

“연평도도 이대로 두면 이런 일(남북 무력 충돌)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세종시에서 연평도를 포괄하는 대구상을 통해 풀어가야 한다.” 그가 작업중인 설계도를 보자.

  • 새만금과 군산·익산·전주를 묶은 지역·도시연합이 부여·공주· 세종시를 중심으로 대전·청주까지 묶는 연합으로 이어지고,
  • 다시 수원~서울~인천의 대권역과 연결된 다음
  • 북상해서 한강하구 권역으로 가서
    • 서쪽으로는 북방한계선(NLL)을 타고 연평도,
    • 동북쪽으로는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비무장지대를 거쳐 원산으로 이어지는 여러 색깔의 점과 선, 면들이 선명하다.

“사람들은 구상을 말로만 떠들지만 나는 그 구체적인 방안까지 갖고 있다.”

“애초 일제 때 해군은 원래 목포~신의주를 잇는 서해 개발을 염두에 뒀으나 육군의 부산~신의주 육로 축이 중심이 되면서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었다. 앞으로 남북 통일도 백두대간 쪽을 축으로 삼아서는 어렵다. 서해 쪽 벨트로 가야 한다.”

특히 그는 “낙동강 본류에는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강과 달리, 도처가 상류이고 수원(水源)이 동서로 분산된데다 본류와 지류가 독립적인 낙동강은 무엇보다 굴곡이 심해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강물의 자연정화 기능이 뛰어나므로 “운하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그의 신조다. 그는 낙동강의 중상류지역에 지속 불가능한 오염원인 산업단지를 만든 것부터 잘못됐다며,

  • 이를 두루 살리는 길은 너비 4~5미터·깊이 2미터 정도의 소규모 운하를 낙동강을 따라 서쪽에 따로 건설해 공단 도시들과 하구를 잇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운하와 강을 구분하지 못하고, 또 서로 전혀 다른 강들을 4대강이라는 이름 하나로 묶어 획일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은 독재적이며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곡학아세”라고 그는 비판했다. 그는

  • 새만금을 끼고 있는 금강권은 새로운 백제권 도시연합을 형성해서 중국과 연결

하면 ‘환경보호냐 지역개발이냐’의 해묵은 논란까지 해소하는 윈윈 전략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 영산강은 섬진강과 연결하고 지리산·다도해·광역 바다도시권까지 포함

하는 “지구 어디에도 없는, 바다와 산이 함께 어우러진 세상”을 만들어 산업·휴양·관광을 통합, 중국·일본까지 상대하는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10여년 전부터 암 투병을 계속해왔지만 10년쯤 더 일하며 “한반도와 한민족의 도시와 건축을 인류의 상형문화로 남기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넘쳤다


노신과 나 (이 영희)

(...)

젊은 시절의 누구나가 그렇듯이 정신적, 사상적 모색으로 고민하던 나는, 노신의 많은 저서를 읽으면서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에 감동했다. 단순히 지식을 상품으로 파는 것에 안주하는 교수나 기술자나 문예인이 아니라, 부정한 인위적, 사회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고난받는 이웃과 고난을 바꾸어 보려는 지식인의 사회적 의무에 눈을 뜬 것이다. 그 소명감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싹튼 것임은 물론이다.

종교는 '인간고'를 신의 섭리와 인간의 운명적 차원으로 해석하여 개인적 및 관념적 구제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노신은 무신론자인 까닭에 인간고를 역사적, 사회적 조건으로 보고 사회적 개혁을 통한 인간애의 보편적 실현에 그의 지식을 쏟았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으로 문학형식을 택하고, 작품을 통하여 중국사회의 착취, 억압, 타락, 몽매...를 고발하였다.

무신론자인 나는 그의 철학과 사상과 방법론에 공감하였다. 1959년대 말에 중국어 저서를 사전을 찾아가며 힘겹게 읽어가던 어느날 가슴에 와 닿는 한 구절에 마주쳤다. 변역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말일세, 강철로 된 방이 있다고 하자. 창문은 하나도 없고 여간해서 부술 수도 없는 거야. 안에는 많은 사람이 숨이 막힌 채 깊이 잠들어 있어. 오래잖아 괴로워하며 죽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혼수상태이기 때문에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에 놓여 있으면서도 죽음의 비애를 느끼지 못한다. 이때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서, 그들 중에서 다소 의식이 또렷한 몇 사람을 깨워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불행한 이 몇 사람에게 살아날 가망도 없는 임종의 고통만을 주게 될 것 인데,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도 몇 사람이 정신을 차린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대담형식의 이 구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국의 군벌통치와 장개석 총통 시대의 중국사회를 풍자한 글이다. 모든 면에서 군벌지배와 장개석 치하 중국을 방불케 했던 박정희 대통령 치하에서 고민하던 나는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그 구절은 무덤에서 노신이 나에게 타이르는 소리같이 들렸다. 나는 눈을 뜨고 정신을 번쩍 차렸다. 나는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결심하였다. 그 순간, 나의 삶의 내용과 방향과 목적은 결정되었다. 맹목적이고 광신적이며 비이성적인 극우, 반공주의에 마취되어 있는 사람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여 의식을 바로 잡아주는 일이 나의 삶의 전부가 되었다.

'그런 임무는 30대 초기의 한 젊은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의 교만이거나, 이른 소아병적 영우주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뒤 노신은 무덤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격려하고 또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의식 불명 상태로 누워있는 사람들을 흔들어보고, 소리를 지르고, 철로 된 방의 벽을 두들기다 주먹에서 피가 흐르면 온몸으로 부딪쳤다. 온몸에서 피가 흘러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면 내가 있는 곳은 형무소라는 철로 된 감방이었다. 0.11평 크기의 관 속 같은 그 철방에 있는 것은 나 혼자였지만, 그런 관 속에 들어있는 학생, 노동자, 지식인은 전국에 수백, 수천 명이었다. 그들 중의 적지 않은 수가 나의 몸부림으로 잠을 깼고, 그리고 나와 같은 정신으로 그들의 이웃의 잠을 깨고 그러다가 철방 속에 갖히게 된 것이다. 해마다 그 수는 늘어났다. 그들이 철방에서 나가면, 그들에 의해서 잠을 깬 학생, 노동자, 지식인이 또 몇백 몇천 몇만 명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절차가 영원일 듯이 되풀이되고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힘없는 나와 그들의 주먹과 몸에서 흐른 피는 헛되지 않았다는 흔적이 차츰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원할 것으로 믿고 스스로 쌓아올렸던 외세추종자 리승만의 동상이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뒷자리에 들어 앉아 히틀러의 2세를 자부하고 종생총통 왕국을 꿈꾸던 간겨한 전제군주 박정희가 자기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리승만과 박정희의 대를 이어 제 3의 장개석이 되려 했던 전두환도 성난 민중에 의해서 쫓겨나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철로 된 방에는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은 아직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크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숨을 쉬고, 빛을 보고, 주먹이 나갈 만한 크기는 되었다.

내가 몇 사람의 잠을 깨우고 몇 사람의 의식을 깨우쳣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노신처렴 '역사'를 밀고 갈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한 '시대'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30년 전 나의 의식의 눈을 뜨게 해준 노신에 대한 조그마한 답례를 한 셈이다.

역사춘추 1988년 7월


노신의 글과 마음, 이 영희

(...)

내가 <우상과 이성>의 첫머리에 노신의 글을 인용하면서 헌사로 삼은 까닭은 그에 대한 나의 빚을 갚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에게 진 빚이 무엇인가? 그의 삶의 기본자세에서 배운 빚이다.(...) 그는 소설문학 못지않게 평론으로 중국민중의 정신적, 의식적 몽매를 깨우치는 역할을 했다. (...) 노신의 좌우명이었던 다음의 글이 그의 정신을 말해 준다.

"천 사람의 비난에 대해서는 싸늘하게 고개를 돌리지만 어린이를 위해서는 고개를 숙여서 소가 되리라"

노신은 한마디로 '전투적 인도주의자' 였다. 민중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그의 글을 평이하고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는 각성으로 이끌었다. 그의 글에는 무식한 동시대의 민중이 알 수 없는 현학적인 요소는 아예 없다. 고매한 학설이나 이론으로 탁상공론 하는 것은 동포에 대한 지식인의 배신행위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중국 지식인의 전통적 인생관인 '영원히 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긴다'는 허황한 생각을 거부하였다. 그렇게 과대망상적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사는 시대에서의 일정한 한정된 역할로 만족한 것이다. 나는 노신의 이 점이 좋다. 영원, 허망, 허영, 허식 허욕을 마음에서 떨쳐버러면 눈앞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 무엇을 햐야 할 것인가는 자명해진다.

노신이 그 시대의 중국사회에서 해야 할 일은 전통과 지배계급의 위선과 무지와 허위를 까발리는 것이었다. 몸매한 민중의 의식을 깨우차는 작업이었다. 그러자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 쉬운 말을 가지고 알기 쉽게 써야한다.
  • 복잡하고 어려운 사물, 관계를 평이하게 풀어 써야 한다.
  • 추상적 용어를 덜 쓰고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낱말로 표현해야 한다.
  • 이론으로 해명하려 하지 말고 구체적 사례와 자료를 풍부하게 동원해서 제시해야 한다.
  • 학자, 전문가, 교수, 박사 따위 자화자찬의 높은 자리에서 '가르쳐 준다'는 교만한 자세로서가 아니라, '함께 괴로워 하고 함께 생각해 보자'는 친절함이 모든 글의 정신이어야 한다.......... 이것이 노신이다.

그가 글을 쓴 시대의 상황은 해방이후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하다. 정면으로 글을 쓰지 못하는 탄압과 억압의 야만적 시대였기 때문에 역설, 해학, 완곡, 비유.......... 등으로 뜻을 전한 것이 많다. 그 기법을 그에게서 배우려고 했다. 나는 평론류의 글을 쓰기에 앞서 노신 전집에서 아무 글이나 책이 펼쳐지는 대로 읽는다. 글을 다 써놓고 노신의 마음이 되어 음미해본다. 이런 습관이 든 지 벌써 30년 가깝다.


동굴 속의 독백, 1982


이 영희 글 모음

구글 문서 는 불안하여 이리로 복사하고 옮겨 저장한다.

저서

  1. 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사,1974
  2. 우상과 이성,한길사,1977
  3. 분단을 넘어서, 1984
  4.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 1984
  5. 베트남 전쟁, 두레,1985
  6. 역설의 변증, 1987
  7. 역정, 창비사, 1988
  8. 自由人, 자유인, 범우사,1990
  9.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
  10.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두레,1994
  11. 스핑크스의 코, 까치,1998
  12. 동굴속의 독백, 나남,1999
  13. 반세기의 신화, 삼인,1999
  14.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 한길사, 2006-8
  15. 21세기 아침의 사색
  16. 리영희저작집(전12권), 한길사, 2006-08-30


번역·편역서

  1. 8억인과의 대화,창비사,1977
  2. 중국백서, 1982
  3. 10억인의 나라, 1983
  4. 일본어로 번역된 평론집 『分斷民族の苦惱』(1985),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2000)

관련도서

  1. <리영희, 살아있는 신화>, 김만수, 2003
  2.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 2004
  3. 리영희 프리즘, 2009-3
  4. 리영희 평전, 김삼웅

인터뷰 모음

  • 서중석, ‘사회평론’ 1991년 6월
리영희 - 냉전 이데올로기의 우상에 맞선 이성의 필봉’, 역사비평’ 1995년 여름호 인터뷰 ‘
  • "미국에 예속상태에서 통일은 불가능"
김치관, 통일뉴스, 2001-10-30, 리영희- 이계환 대담
  • <인터뷰>“우리민족 미래 낙관 하게 됐다”
배문성, 문화일보, 2003-01-13
  • “대통령-외교보좌관 미국 정확히 알라"
프레시안, 2003-07-12
  • “미군철수 15년 계획 세우자”
한겨레21, 2003-07-17, 리영희-박노자 대담
  • [원로인터뷰] 리영희 “南이 北보다 더 변해야”
문학수, 경향신문, 2004-01-26 , 리영희-한홍구 대담
  • “긴 안목에서 역사를 보라”
권태선, 한겨레, 2004-3-3, 한겨레 지령 5천호
  • [신춘특별대담] 리영희 교수
평화통신, 2005-1-1,
  • <연합인터뷰>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이봉석, 연합뉴스, 2005-03-16
  • 자서전 ‘대화’ 낸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산행 인터뷰
김문, 서울신문, 2005-03-28
  • "일본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
프레시안, 2005-03-29, 리영희-김민웅 대담
  • 리영희교수 “이젠 펜을 놓습니다”
김진우, 경향신문, 2006-9-4
  • 시대의 스승' 리영희, 그에게 한국사회를 묻다
문경미, 오마이뉴스, 2006-9-25
  • 집필활동 마감한 리영희 선생을 만나다
한승동, 한겨레, 2006-9-28
  • [신춘특별대담]리영희 교수에게 듣는다
민족시보, 2007-01-01
  • “생명·자연·평화의 사회주의적 가치 받들 때”
김봉선·오동근, 경향신문, 2008-03-27, 경향신문 독립언론 선언 10년 기념 인터뷰
“8년만에 만년필을 잡아보네”
  • 리영희 선생에게 듣는 한겨레와 오늘
권혁철, 한겨레, 2008-5-14, 한겨레 창간 20주년 기념 인터뷰, 리영희-김효순 대담
  • “지능적인 폭압체제… 사회모순 키워 투쟁사회로 돌아갈 것”
안수찬, 한겨레21, 2009.12.04
  •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2009-12-5
  • 또 다른 전환시대
.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2010-1-2
  • [대담] 투병중인 리영희 선생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
오마이뉴스, 2010-9-1


관련방송

  • 리영희 교수, EBS「지성과의 만남」출연 (연합, 2002-08-14)
  • 광복절특집-리영희에게 듣는다 (MBC미디어비평, 2002. 8. 16)
  • 특별대담 : 리영희에게 듣는다 (MBC 미디어비평 제 94 회, 2003년 4월 25일)
  • KBS<인물현대사> 2004년 6월 4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편


글모음

  • 다나까 망언에 생각한다 (1974년, ‘우상과 이성’ 수록)
  • 노신의 글과 마음 (1982년)
  • 노신과 나 (역사춘추, 1988년 7월)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1988년 9월 15일)
  •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 (사회와 사상 . 1권 1호, 1988)
  •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가 아니다 (사회와사상, 1989년)
  •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 (신동아,1991-3)
  • 내가 아직 종교를 갖지 않는 이유(월간 말, 1994년 4,5월)
  • 북방한계선은 합법적인 군사분계선인가 (통일시론, 1999년7월 여름호)
  • 마음 아파서 하고 싶지 않는 이야기(법보신문, 1998-05-13)
  • 하늘 나는 새에게서 배우는 마음 (법보신문, 1997-06-11)
  • 불교계가 한 번 생각해 볼 일(법보신문, 1997-04-23)
  • 성직자의 삶과 죽음 육체와 소유 (법보신문, 1997-03-26)
  • 남북관계와 주한미군 문제 (당대비평 통권 제12호, 2000.9)

관련논쟁과 기사

  • 진보지식인 대부 리영희 ’공과'를 되묻는다 - 한신대 윤평중 교수의 비판
배영대, 중앙일보, 2006-11-08
  • 리영희 비판에 되묻는다
강준만, 한겨레, 2006-11-15
  • 윤평중 교수에게 말한다
홍윤기, 한겨레, 2006-11-15
  • 우상파괴자의 도그마와 우상
조성환, 계산 시대정신, 2007년 봄호
  • ‘전환시대의 논리’와 리영희
윤무한, 신동아, 2008-10-24
  • [자서전 읽기](12) 리영희의 ‘대화’
이권우, 경향신문, 2008-12-12
  • 상식이 범죄가 되는 사회, 우상을 깨고 이성을 깨우다
한승동, 한겨레, 201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