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17-1
어제 문득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기억이 옳다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였을 것이다. 그제 밤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 D는 하루 종일 운전까지 해서 피곤한데다 일요일 아침 일찍 멀리 차를 몰아야 하기 때문에 함께 차를 마시다가 먼저 잠을 청했다. 남은 우리는 두어시간 더 이야기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많이 자고 싶었는데 그날도 많이 자지는 못했다. 아침에 D가 부시럭 거리며 씻고 음식하는 소리에 설핏 깼다 자다 하다가 그 녀석이 나가는 문소리가 나서야 어? 녀석이 가나? 하면서 깨 더는 못잤다. 더 자고 싶었지만 더 잘 수 없었다. 일어나 컴을 켜서 토막글을 올리고 메일 읽고 답을 하고 그리고 나서는 컴터에 어떤 기능을 넣으려다가 시간만 보내고 해내지 못했다. 꼭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책을 읽고 싶었다. 며칠 전 꺼낸 이영희-임헌영 대담집 '대화'를 한 토막 읽고, 선물 받은 '연암을 읽는다'에서 누이에게 쓴 묘비명 부분을 읽으니 벌써 나갈 시간이 다되었다. 나갈 시간이란게 따로 있는게 아니지만 나는 어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고 있던 참이다. 몸이 묵직해서 첫 비스콘티 영화는 뺄까 하다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이 나온다는 소개책자를 읽고 시디를 찾아 들으면서 준비할 만큼 부지런을 떨었다.
그러면서 지극히 평온한 마음에서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도대체 나란 놈은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암, 잡놈이구 말구.'
그건 그렇구, 내내 일어나면서 부터 내내 그리고 영화를 하루 종일 보고 밤에 들어오면서도 문득문득 귀청 울린다.
- 소통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 경계없는 소통은 가능한가?
- 경계인 없는 집단간 소통은 가능한가?
사람들은 중심을 향해 다가가고 싶어한다. 그 안에서 나름의 질서를 찾고 안정과 평화를 찾는다. 중심을 향한 열망때문인지 편하게 살고 싶어 그런 것인지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이고 하는 문제는 여기서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다만 경계인 없는 소통은 과연 가능한가? 라는 말이 귀청을 때리기만 하면 나는 눈살을 찌뿌려야했다. 무언지 모르게 그 말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도 그렇다. 동과 서, 남과 북, 옛것과 새로움, 현재와 미래의 경계에 선 듯하면서도 웅장하고 거대한 그분 음악은 아직은 들으면 아플 때가 많다. 어쩌면 경계인이라는 말이 바로 그런 것과 맞물리면서 눈살을 찌부리게 하는지 모른다. 마침 위도 콕콕 찌르는 아픔이 있었다. 어제 2차를 하고 나서 집에 들어와 조금이지만 토해냈던 기억도 난다.
동이 있고 서가 있고, 옛것이 있고 새로움이 있다. 그것은 물론 경계가 불분명하다. 경계가 명쾌할 수록 경계인은 적지 않을까?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 사이에 경계가 얼마나 치열하였나? 얼마나 치고박고 적대적인가? 하고는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그리 많은 경계인들이 있을까 반문을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피상적일 뿐이다. 남과 북의 대치국면을 만들었던 핵심부는 사실 동전의 양면이고 이란성 쌍둥이 였을지 모른다.
.... 경계인은 소통을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있는 증표라기 보다, 소통의 필요를 증거한다? 라고 메모를 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 경계인의 확연한 존재는 경계밖, 즉 경계인을 경계인으로 만드는 중심축(에 있는, 구성하는 사람들)의 소외로부터 비롯한다. 라고 이어 메모가 있다. 과연 그런가? 중심축이 자기를 스스로 소외할 수 있다는 말은 아무래도 장난질같다.
오래도록 생각해야 할 일이다. 관계를 맺는 것이 소통을 하도록 한다는 건조하다. 소통은 실천에서 나오지만 소통에 대한 철학은 들을 만하고 생각할 만한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게지.
새로 지은 따근한 점심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는다. 김이 모락모락 한데다 김을 잘 싸서 꼭꼭 씹으니 맛이 산다. 맛이 사니 혀도 산다. 라디오에선 서울에서 한다는 봄실내악축제인가 뭔가 하는 것에 대해 나온다. 거기 조직위에 있는 첼리스트 씩씩하고도 부드럽고 자신감이 철철 넘쳐난다. 성공하고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분위기 몰이하는 타입니다. 라디오만 듣고 있어도 전염된 듯 힘이 솟고 밥알이 꾹꾹 눌러 씹힌다. 내 어금니가 멀리서 하는 저 전파로 부터 전염되다니 세상은 무섭다는 생각을 하곤 컥컥 웃다 목이 막힌다. 어제 부어 두어 투명하고 맑은 교토 우치차를 꿀꺽 먹고나니 정신 돌아온다.
조직위원회에는 모대학 환경과 교수, 모대학 경영학과 교수들을 이야기하며 "많이들 도와주고 계시구요, 우리 조직위원회는 우리의 봄 실내악축제가 ..." 말한다.
아, 우리나라는 왜 교수중심 사회인가? 대학교수가 말아먹어가는 대학문화는 도처에 있다. 지성인이 못되는 지식으로 사는 지식인의 비율을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교수들이 그런 시시껄렁한 것을 연구할 수 없다. 유난히 대학교수는 한국에서 학자 그룹에서 더 나아가 사회 리더그룹에 속한다. 교수에게는 학자적 존경심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고 '권위', 안정적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보이는 경우는 잦다. 그것은 우리 사회, 일제시대 전부터 일제시대, 미군정, 전쟁, 군사독재와 이어지면서 정신병적 상태를 가지게 되고 병적 문화가 약하지만 깊숙하고 넓게 자리잡게 된 것 같은데 그러는 과정에서 형성된 게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돌아왔을 때, 한국사회에선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였다. 아슬아슬 하긴 하지만 개혁을 할 기대를 걸어보기도 하고 개혁은 못하더라도 이 견고한 한국사회의 표피에 금을 내버릴 똘아이 짓이라도 하길 바라는 마음 컸다. 처음 검찰을 뒤흔들 때, 욕도 먹어도 싸지만 그래도 이것이 신호탄 같은 게 아닐까 하고, 어리석게도,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개혁도 흔들기도 없이 '제대로' 집권을 해보려는 것 같았다. 제대로 한국사회를 개혁할 조건을 성숙시킬 만한 역량이나 비젼이 있다고는, 아쉽지만, 기대하지 않았다. 암튼, 그때 나는 한국사회 개혁은 넓게는 교육분야, 좁게는 대학문화와 대학사회의 개혁을 못하고는 개혁의 토양을 다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천박한 입신양명주의나, 그런 듯 안그런 듯 안개처럼 넓게 자리 한 관료주의, 성공지상주의 같은 것은 우리 역사와 조건의 산물일지 모르지만, 그 층위만을 본다면 그런 병적 집착들이 문화로 꽃을 피우면서 한국 사회 보이지 않게 조정하는 것은 대학사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대학이 대학답지 못하고 학원화 되어가고 '연구'가 '실적'이 되어 탐하는 그 무엇이 되도록 하고 따라서 연구방법이나 연구결과도 얄팍해지기만 하고 학문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어 주류에 편입하려고 별 짓을 다하고... 그러면서 무슨 무슨 위원이다는 수도 없이 꿰차고 자기의 숨은 권력을 확대해나가도 교수 사회 안에서도 비판받기 보다 우러러 보이고, 먹고 사는 것이 지상의 과제가 된 청년 학생들도 그리 더 몰려 재생산구조가 탄탄해져가는 우리 대학 사회... 아, 왜 이런 일이 하필 우리에게 이렇게 지독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