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24-1

DoMath
211.249.225.103 (토론)님의 2006년 4월 24일 (월) 10:3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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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고 사라지겠다고 마음먹고 쓰는 글이란 죽은 글이다.
읽히지 않고 사라지겠다고 마음먹고 쓰는 글이란 죽은 글이다.
이 까만 적막 속에서는 나는 부른다, 너를.
너의 헛배부른 몸뚱이만 부른다.

오늘 하나의 죽음이 나의 삶에 보태어졌다.
취해야했다. 그리고 취하기 위하여 나는 하나 더 쓴다.
이 무용지물인 글을 남기고 읽히고 쓴다, 그의 기억 속을 파헤치기 위하여 -


육개월 전 세상을 떴다고 하는 걸 오늘 부활절날에야 알고 그녀를 기리며, SvetlanaPetrovna !

부활절날 축하하러 당신에게 전화를 했어요, 스베뜰라나 뻬뜨로브나
딸이 받더군요
슬픈 소식 있다하더군요 당신이, 스베뜰라나 뻬뜨로브나, 떠났다고 끝나버렸다고 이 세상에 없다 하더군요

병도 없었는데 바로 거기서 우니베르시쩨뜨에서
갑자기 지금은 모두 다 아는데
당신은 오랫동안 러시아에 안계셨나 보아요
지난 여름에, 스베뜰라나 뻬뜨로브나
우리 만나기로 해놓고 아무때나 밤 12시가 되도 좋다고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난 안갔어요. 피곤하다고
곧 또 올텐데요 하고는
전화도 않고 왔어요 미안했거든요, 미안해요, 스베뜰라나 뻬뜨로브나

부활절이예요. 축하전화를 하면 오히~ 바악~ 하며
놀란 목소리고 기뻐하시리라 기뻐하실 목소리 듣고 싶었어요
올 여름이 오기 전에라도 올 여름이 다 오기 전이라도 보자고
하려고 이번엔 꼭 그러자고 하려고 전화했어요,스베뜰라나 뻬뜨로브나
그런데 당신의 딸이 받았어요
슬픈 소식 있다더군요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고 끝나버렸다고 우린 세월에 적응해간다고
당신 어디에 있는가요,스베뜰라나 뻬뜨로브나

난 지금 당신이랑 이야기했던 챠이꼽스끼를 듣고 있어요
그리고 체홉을 읽으려고 해요. 이 술이 다 깨면 읽으려구요
뿌쉬킨을. 당신 앞에서 배에 힘을 가득 넣고 낭송했던
예언자를. 읽고 싶어요 그때처럼 소리내어
왜 나를 울려요
왜 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어요
스베뜨라나 뻬뜨로브나 왜
우리는 만나고 오늘 나는
당신을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하나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자랑스러 해주셨죠,스베뜰라나 뻬뜨로브나
러시아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날
내가 억지로 해 간 숙제 노트에 붉은 줄을 북북 그어 보여주셨어요
바악~
이거 봐라, 이러면 안되는거야
이거 너 알면서 왜 또 틀렸어
노트 붉은 볼펜으로 그어진 엷고 파란 노트 왜 나는 지금 다시 읽어야 하나요
우리 박은 참 똑똑해
너가 너무 좋단다. 너를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호호호 이해해다오
이게 러시아 사람이란다
좋으면 뭐든 도와줄려고 하거든
호.호.호
너를 도울만한 사람을 내가 알고 있는지... 어디.. 보자
호.호.호.
미안해. 이럼 안되는지 알아, 이래서 러시아 사람은 안된다니까
그래도, 가만...
어떻게든 통해서 너의 조국에서
(대단한 나의 조국에서요?)
하셨죠, 난 바보웃음만 지을 뿐

하셨어요
당신은
난 6번 교향곡이 좋지만, 우울해서
그래도 5번이 더 좋아 밝아지잖아
체홉도 그래
넌 왜 그리 슬픈 데를 보니
아냐 러시아 말이나 문화를 알면 다를거야
네게도
얼마나 체홉이 웃긴지
얼마나 웃긴지 체홉이
그걸 알 수 있을텐데
아녜요. 웃겨요
하지만 정말 유머러스하지만 안톤 빠블로비치 체홉은
삶의 쓴 맛에 담긴 웃음을 쓴 거예요
웃음 속에 쓰디 쓴 침을 뱉은게 아닌 것 같아요
그래 그래 네 말을 알아 하지만 체홉은
그 무엇보다 너무 웃기단다
호.호.호

당신이 가버리고 육개월이 흘렀다니
당신의 뼈에도 주름이 더 졌겠어요
난 이리 젊디 젊은데, 피가 끓어서
눈물도 빨갛디 빨간데
당신의 뼈엔 주름만 더 가고
촛불만 타는 밤에 당신 웃음소리,
당신 눈 안에 담긴 물
모스크바 강가에 집
백 년 묵은 피아노에 달린 촛대를 보이며
우리 아버지는 가난했던 노동자였는데 한달 월급을 다 부어 나에게 사주셨어
부끄러 웃던 웃음 맛있니? 난 음식 못하는데 생선이 잘 익었나 모르겠구나 백년 된 금칠이 남은 브로크하우저 백과사전 책장을
보이며 쓰다 듬으며 혁명가 낫세르을 만나곤 했다던 남편 이야기로
멀리 해지는 모스크바 강 그 느린 여름 밤의 강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스베뜰라나 뻬뜨로브나, 우리 남편이 살아서 널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야, 이 와인 정말 맛있는데, 그르지아산 흐반치까라구나. 그러면 그렇지. 꽃도 너무 예쁘구나. 어디 볼까, 으음, 향도 참 좋은 걸.

어디 있어요 지금?
영혼은 가볍다고들 하니 어디든 갈 수 있을테죠
지금 내가 피운 향을 따라 이리 와 있나요
나를 피워
내리고 내린 이 찻 잔에
깃들었나요, 비어버린 술 잔에?

스베뜰라나 뻬뜨로브나
여름이 다 오기 전에
난 갈거예요
가서 만날 거예요
만나서 헤집을 거예요
당신의 무덤을
주름져 무너져 내리는 당신의 뼈마디를

잘가세요
가서 가서 가서
영영 가서
그때 처럼
일어나 주먹을 쥐고 발을 구르며
러시아 말이란 러시아 시란 러시아 사람이란
이런거야
말하지 말아주세요
더는 이젠 나도
말하지 않도록
이 가벼운 혀를 말라버리도록



간 밤 격정에 사로잡혀 썼던 것이다. 그냥 두기로 한다. 어떤 이는 큰 슬픔을 만나면 어찌 쓸 수 있겠냐고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어제 밤 슬픔은 그다지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