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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30일 (일) 09:35 기준 최신판
문학은 사회적 조건아래서 평가받는다. 독자들이 갖는 사회적 인식은 그 시대의 반영이다. 독자들은 시대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체득하고 욕망을 드러내면서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자기방식을 이루어간다. 그렇다고 문학이 절대적으로 시대의 잣대로 평가되느냐하면 그렇지 않다. 문학에도 나름대로 내적 요구가 있고 문학의 장르에 따라 나름의 보편적인 미학적 틀이 있기 마련이다. 이 보편적 미학적 틀도 큰 강물처럼 새물을 받아가며 유유히 변해한다.
특히 시는 지금까지 문학의 어떤 장르보다 정의와 평가의 문제에서 난처함에 쉬이 헤어나지지 않는 것 같다. 시인이라면 무엇보다 시대적 문제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거대한 정치경제적, 인문적, 사회적 틀을 알건 모르건 본능으로 느끼고 자신만의 언어를 갈고 닦아 드러낸다. 물론 대부분의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다. 흉내내고 그럴 듯하게 보일 뿐 실제로는 늪속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귀감이 되는 시인들이 시대를 대표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 귀감이 되는 시인들이 시대적 요구가 강하고 급변할 때 세대교체가 활발하다는 점에 있다. 이는 단지 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학자도 그렇고 다른 예술장르에서도 형편이 다르지는 않다.
통일과 민주의 문제가 뜨거웠던 80년대의 시인들을 요사이 젊은이들은 잘 읽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느냐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때의 모순은 지금도 살아남아있다. 80년 시인들이 이르렀던 시적 성취가 시라는 장르의 내적 미학이라고 할만한 것을 구현했느냐 못했느냐 평가하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 그다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눈으로 또는 50년뒤, 100년뒤의 시각으로 80년대를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시의 내적 성취라는 것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겠는가? 시적 긴장과 이완, 어떤가. 갈고 닦은 언어로부터 나오는, 마음 속 깊은 곳 진실한 마음으로 갈고 닦은 언어로 부터 나오는 시에는 나름의 긴장이 조성될 수밖에 없고 나름의 이완을 통해 음악성을 얻는다.
시인은 새가 아니기 때문에 진실한, 마음, 갈고, 닦은 이런 단어들로 부터 떨어질 수 없다. 언어에서 풍기는 아름다움과 맛과 멋스러움 같은 것들은 그런 단어와 굳이 연결하지 않아도 될 듯하지만 그것은 함정이다. 시인은 온전하게 자기가 느낀 바와 자기가 느끼고 싶지 않은 바를 본능적으로 느끼기 마련이다. 그는 진실로 회피하는 마음으로 현실의 문제를 피해서 지극히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할지 모르지만 시로 받아들여질만한 완성도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진실로' 회피하는 '마음'을 '자기 삶' 속에서 '갈고 닦아야' 한다. 시인은 보편성과 함께 시대성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은 모두 시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같은 온도라도 여름에 30도와 겨울에 20도는 다르게 느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귀찮을 만큼 배가 부른 사람에게 내 민 옥수수 하나와 끼니를 굶은 사람에게 시원한 우물물과 옥수수 하나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
이 무슨 부질없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쓰고 있는지... 국이 끓는동안 심심해서 적어보았다. 목도 아프고 무엇보다 국도 다 끓었으니 쓸데 없는 자판두드리기 게임은 예서 멈출까 한다.
외로움은 욕망의 뒷면이다. 욕망하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성불하였거나 신선이 되었으므로 사람이 아니라고 범주를 날카롭게 지어본다면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문제는 외로움을 어떻게 느끼냐다. 왜 외로움을 느껴야 하느냐 따져들어가다보면 그 안에는 언어로 포착하기 힘든, 또아리를 튼 뱀 모양의 검은 구름떼가 있기 마련이다.
씰크로드학 은 개괄서다. 깊이 파고들 수 없고 널리 두루 보게 된다. 이 책을 읽고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주제를 정해보기 위한 교과서 역할을 한다. 읽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몇 줄에 시대와 지역을 수백년과 수천리를 왔다 갔다 한다. 고유명사가 많고 이론적 용어이고 싱겁게 써야만 한다. 여기에 간을 해서 맛을 들이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이다.
나름의 해석을 하거나 질문하고 답을 유추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무엇이 '소통'하도록 하며 소통의 형태와 양상은 무엇이며 소통을 소통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묻는다. 개괄적으로나마 소통의 역사를 보게 됨으로써 소통의 몸통을 더듬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나의 태도다. 거기다 하나 더. 이 책 글자마다에 박힌 땀과 피로 쓰인 옥중 저서에서 사람다움, 자유의 냄새와 결을 맡고 보고 싶다. 한글자라도 쉬이 흘려버리지 않도록 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