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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일 (월) 10:30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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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아침

영영 과거가 되지 않았다. 꿈 이전에도 꿈에도 꿈 이후에도 여태 함께 하고 있었다. 생기고 일고 멎고 잠겨들고 죽어가는 여리디 여리거나 늙고 늙어 보일 듯 말 듯한 몸과 마음의 방울들을 잘 보고 있노라면 어떤 것도 그리 간단하게 왔다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고 영원히 회귀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

어제 영화에서 보면, 죽음을 선택한 한 예술가의 영혼은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많은 사람의 영혼들이 잠궈놓은 극단적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은 어려우나 나의 경우는 그렇다. 나는 커트 코베인이, 지미 핸드릭스 처럼 스물 일곱에 자살해버리겠다고 한 자기 최면이나 상품화되어가는 자기의 정신물에 회의와 절망으로 자살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 말들로 대충 땜방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최면은 수많은 사람들도 걸고 그따위 회의와 절망은 꽤 그럴 듯한 사람들도 한두명도 아니고 수백수천의 재능있는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생을 마감하지 않는다. 약을 지나치게 많이 했다는 것도 이유다. 하지만 어제 영화를 본 후 내가 나도 모르게 한달음에 써내렸던 글자들을 다시 보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는 경계에 서 있었다.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뛰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 뛰어내릴 조건은 충분했다. 미련 조차 나와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육기관(학교)과 아카데미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은 중고등학교까지 그렇다. 학원화 되어가고 있다. 학원화란 목적을 위해 교육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학원의 목적은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고,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립대학과 중고등학교도 크게 다르다고 말하기 어려워졌고(물론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그만큼 세상을 비틀어놓았다) 국공립 교육기관의 큰 흐름에서 보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주의라는 큰 정치경제적 체제 수호를 식민지경략국이건 경략지국가건 자기 역할에따라 알게 모르게 몸부림치고 있다. 저항은 언제나 있었으니 그들도 저항을 맞긴 하지만, 인류역사 대부분의 경우에 권력의 주체는 바뀌어도 지배층에 피에서 피로 이어주는 성배처럼 흘러 전해 내려오는 지배자의 지략과 힘으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듯 하다.

시대가 그러니 교육마저 상품화된다고 발을 동동 굴러봤자 별 수 없는 노릇처럼 보인다. 아니 이런 시대에도 교육이 상품화되지 않는다면 되려 비효율까지 동반하게 되어 어떤 식으로든 흘러가지 못하고 이리가지도 저리가지도 못한 채 고여 썩어문드러질 수 있다. 설마 말라비틀어지기야 할까, 뒷물이 계속 흘러들테니 어떤 식으로든 길을 찾으려 할테니까. 너무 오래 고이면 그게 걱정인 것이다. 그때까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지성과 감성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제 속에 있는 제정신 아닌 유쾌와 우울을 이리저리 흘려보내지 못하고 아이들은 또 본드를 하고 집을 나가 헤매다니고 칼을 들고 핏발 선 눈으로 밤을 헤매거나 고개를 숙이고 언젠가는 세상에 복수하기 위하여 판검사가 되겠다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 먹을 것 아닌가. 아이들의 영혼이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영혼이 태양에 드러나버린 지렝이처럼 허무하게 말라 가 버릴 것인가. 영혼 전체를 비옥하게 하는 아이들의 그 영혼이 !

중고등 학교는 발버둥 쳐봐도 근본적인 개혁이라는 것이 힘들도록 되어있어 보인다. 교육계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놓은 제도는 이겨낼 수 없는 딱딱한 껍질 속에 있어 보인다. 교사들은 애를 써보지만 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권력과 자금이 위에서 먹구름처럼 돌고 있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은 애써 자기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안일에 빠져있거나 오늘 아이들과의 관계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부족한 건 사실이다. 또 무엇을 바꾸고자 하면 항상 그랬듯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사분오열이 될터이니 모두들 이 문제 풀어보자고 팔을 걷도 덤비더라도 해결은 더 간단하지 않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수들은 권위있으면서 안정적이고 욕심 별로 없으면서 속으로 호박씨까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그럴 듯한 직업이 사실 교수요, 교육 관료들 같아 보인다. 게다가 잘만하면 권력의 심장부에서 한탕할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연구에 재미를 붙이거나 공자식으로하면 군자로서의 길을 가는 사람들, 호박씨는 안까지만 안정적인 직업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싶은 마음으로 이 직업을 택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눈물나게 서로운 것은 그런 부류를 다 묶어도 앞의 '권위있으면서' 부터 '가진 사람들'까지의 부류에 비해 비교도 안되게 수적으로나 대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질적인 면에서나 영향력이 적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 판단이 옳고 그르냐는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울 것이다. 연구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주체의 문제다.


대학이 연구 중심의 틀을 유지해나간다 하더라도 지금의 체제로는 문제는 남는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대학이 무지 커졌다. 대학 도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나의 대학이 커지기만 한게 아니라 오늘도 어디선가 새로운 대학이 생겨날 만큼 대학의 수가 많아졌다. 그렇게 대학생이 많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생이 많아서 대학이 커진 것일까? 대학교수가 많아야 하겠기에 대학생을 더 많이 뽑은 것일까?


어찌되었든 대학은 규모상 커지고 갈갈이 흩어짐으로써 여기저기서 지적인 발전을 낳을 기회를 낭비하고 빌어먹는 교수들이 숨을 곳은 많아졌다. 이 그물망은 누구를 위해 이런 저런 프로그램으로 이끌어 간 것은 아닌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가지는 낭비는 모든 낭비가 드렇듯이 과잉을 낳아 원할하게 흘러가고 나오는 유연한 구조를 경직되게 만들고 복잡하게 만들어서 결국 구조 전체의 생명에 위기를 낳는데도 지금 와서 굳이 이를 바꾸어야 할 이유를 도저히 밝혀내어 바꾸어보자 할 수 없도록 얽히고 설켜 있다. 얽히고 설킨 것을 풀기 보다 새로운 조직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나라 영화판에서는 영화아카데미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데는 관심없고 영화에 절어버린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만들고 그들이 우리나라 영화판에 끼친 영향은 크다. 물론 이런 기관이 갖는 한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카데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한국종합예술학교 안에 영화학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아카데믹한 영화를 만들 기초를 닦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이루느라 바쁜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철학아카데미라는 것이 있는 모양인데 거기 공동대표하는 분이 신문에 쓴 글을 보면 많이 읽기는 하는 모양이어서 아는 것은 많은데 쉽게 전달을 못하는 것인지, 자신의 철학을 하지 않고 수많은 철학자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마치 윈도우 운영체제 안에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많이 깔다보면 지독한 변비현상이 생기듯 그런 말못할 질병을 앓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잘 읽어지지도 않는다. 간혹 짜증이 날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알량하나마 그래도 포기 않고 해보고 싶은 철학하기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빨이 애리니 말이 새간다. 잘되기를 빌어도 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왜 말이 이리 새나오나. 미안하다.

대학에 대해서, 다시말해, 그 맞은 편에 - 대항해서가 아니다 - 아카데미류의 교육연국기관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도올 김용옥은 서원인지 서당인지를 만들어 돌리고 있고 영화에는 영화아카데미가 철학분야는 철학아카데미나 수유공간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탄생하고 어렵지만 살림을 꾸리고 있듯이 강호학자들을 배출할 기관들이 확대 발전하고 이들 사이에 아주 유연한 연대관계가 형성된다면 좋겠다. 분야는 과학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과학은 대단한 과학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방해한다면 그것은 크게 걱정할 거리가 아니다. 대단한 과학기구가 필요할 경우 대학과 협력하거나 대학이 그런 일을 주로 맡고 아카데미(아, 이름을 소학이라 지어도 나쁘지 않겠다. 잠깐, 좋지 않다. 나쁘지 않지만 좋지 않다. )들은 작은 것 보다 생활과 맞닿은 과학의 발전을 꾀하고 그와 이론적 작업을 함께 하여 학문의 주류와 어느정도는 맞물리면서도 독립적으로 자기의 생성과 발전을 꾀하면 좋겠다.

나는 그런 형태로 다음과 같은 작업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제 밤 오늘 새벽 꿈에 나왔던 것이다.)

문명교류사 연구원을 운영하여 정수일 선생님 같은 분이 당신의 학문을 함께 연구하고 발전시켜 학파를 형성하게 한다. 여기는 대학에 다니는 사람 뿐만 아니라 대학에 소속이 안된 아마츄어라도 참여할 수 있다. 수업은 학파의 꼭두가 이끄는데 강의와 세미나를 치열하게 하고 사람사이의 유대를 연구와 밀착시킨다. 여기서는 대학보다 자유로운 강의와 토론, 그리고 현장 실습을 꼭두의 프로그램대로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집중한다. 학기마다 또는 년 단위로 연구 논문을 내고 주간별로 수업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하여 모일 수 없는 여러곳의 사람들과 나누고 다시 토론에 부친다. 이런 성과를 걸러내고 걸러내어 한두달에 한번 뉴스레터 형식으로 인쇄하여 발간한다.

수학연구원, 철학연구원, 영화연구원들이 제각기 발전해가면서 이들은 분기에 한번씨, 또는 반년에 한번씩 공동주제를 정해 함께 모여 공부하고 토론한다. 따라서 각 연구원들의 운영책임자들과 연구원의 연구꼭지들은 일년에 한번 정도는 모여야 한다. 이를 통해 학술모임을 개최할 그 해의 주제를 정하고 각 연구원에는 그에 필요한 강좌를 하나씩 개설한다. 강좌를 통해 연구를 함께 해나가고 정기적으로 소규모 모임을 미리 만들어 어느정도는 윤곽을 잡고 간다.

예를 들어 'P'씨는 어쩌다 직장인이 되기는 했지만 군자로서의 삶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다. 지금 신문사에서 하는 문화센터는 약하고 대학은 너무 무겁고... 그리고 존경하는 교수님은 있는데 그분 수업만 들었으면 좋겠는데 다른 과목까지 이수해야하고 등록금부담도 많다. 문화센터는 성이 안찬다... 그런 P씨는 연구원들이 낸 올해의 주제를 보니 그동안 한번 집중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었던 생각이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인다니 함께 만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P씨는 여러 연구원들에서 자신에게 여러모로 맞는 과목을 택해 일년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나니 자기만의 연구주제가 만들어져 해당 연구원에 가서 일 년 더 하기로 했다.

예를들어 O 양은...

수학연구소에서는 소장 수학자들이 수학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들은


Parha로 가기 --- 오늘, 쓰다로 가기 --- 오늘, 그리다로 가기 --- 오늘, 우리말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