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503-1: 두 판 사이의 차이

DoM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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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3일 (수) 20:15 기준 최신판

이상한 경험을 하였다. 이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은 없다. 있었겠지, 언젠가는. 여느 아침처럼 일어나 물을 마시고 바다 구경을 잠시 하면서 바다 바람을 쐬고 떡을 구워 먹고 커피를 올려놓고 몇마디 꿈에서 본 것을 적고 맛있게 끓여진 커피를 마시고 어제 쓰다만 Manifesto를 이어쓸까 하다가 마음이 어째 안가서 거실에 나와 책을 정리하다 며칠 전 아름다운 가게에서 사 온 셍 떽쥐베리의 인간의 대지(불어 원제 Terre des hommes; 민희식 역)를 본다. 음악은 wind of renaissance 라는 뻬쩨르부르크의 음악가들이 고전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올려놓고 듣는다.

서문부터 크게 울린다. 이어진 첫번째 이야기 항공로까지 거실에 앉아보다 쇼파에 반쯤 기대 읽는다. 울림이 크다. 깊이 들어간다. 명상하는 듯 하다. 그러다 펼쳐진 노트에 다시 쓰려던 글을 쓰려한다. 어제 밤에 읽은 부분들과 오늘 아침 본 것들, 들은 것들 꿈에서 보고 느낀 것들 이런 것들도 녹여 본다. 그런데 엉뚱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세 쪽을 내리 쓰다가 꿈을 꾸는 이야기 비슷해서 물을 한잔 마신 다음 누워서 쓰기 쓴다. 써지질 않는다. 더는 써지질 않는다. 글방 안으로 들고 들어가 보아도 안써진다. 그래서 펜을 놓았다.

나와서 앉으려는데 앉는 것도 불편하고 서 있자니 그것도 불편하고 몸이 잘게 떨리고 배는 고파오고 컴퓨터를 뜯어보려는데 손이 떨려서 관두고 이 방갔다 저 방갔다 어쩔 줄 모른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오디오를 켰다 껐다. 서랍이란 서랍을 다 열어 뒤지고 내고 들이고 컴을 껐다 켰다. 얼굴에 물을 묻혔다 지웠다, 옷장을 다 헤집어 놓아 창자가 쏟아져 나온 것 같다. 빵을 꺼내 진한 딸기잼에 발라 먹고 서둘러 국을 끓이는 동안에도 그리고 다 없어져가는 지금도 손이 가늘게 떨려오고 어깨도 그렇다. 완전히 진정은 안된 것 같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무언지 모르지만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과 이것을 그냥 잊어버려야겠다고 하고 국을 끓이고 밥을 해먹은 것이다. 바다는 푸르다푸르다. 나가서 산책을 하면 조금 나아질 것도 같은데 배부르지 않을 만큼 그것도 단지 황태와 마른 새우, 다시마를 넣어 끓인 국하나에 먹었는데도 속이 울렁거린다. 이것을 잊지 않고 두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컴을 켜고 - 컴을 켠다는 것은 요사이 내게 있어서 셋상으로 나는 창을 여는 것과 같으니까 - 세상 속에 잠시 담그고 이를 이곳에 살짝 남겨둔다. 언어는 나를 기록하지 못하고 나도 언어를 사랑하는 법을 아직 모르지만 이를 통해 우리를 연결하는 징검다리로 삼고자 함이다.


사람이 닿은 적 없는 골짜기

가파른 계곡 사이엔 물이

거치른 뱀을 담고 흐르네

가족을 떠난 뱀은 세상을

마음껏 비벼대고 싶었는데

때 아닌 물살에 빠져버린 것 !

이리 깊은 계곡에 올 줄 몰랐네

해다 드는 것도 찰나 별은 어디에

바위에 몸을 긇히면서 아기배암은

몸을 더 키워가더니 내 팔뚝

만 해졌을 때 배암은 이제 더는

물살이 날 데리고 가지 않고

내가 물살을 데리고 간다고

그런게 아닌가 놀라 입을 못다물고

몸을 뒤틀어 보았지 그때마다

물살이 온 몸을 휘어 감다 퍼지니

물살이랑 나랑 몸대고 있고

물풀이랑 나랑 사각 맞대니

나 무서워 도망가건, 나를 가게 하건

아이 좋아라 물에 뿌리박은 몸이여


물이 좋아서 물에 뿌리 박고 흔들 흔들

몸을 흔들다 어느날 배암은 햇빛이

머리 위에 쏟아지다 사라지고

물살은 물살대로 푸르러지더니

먼 데서 부터 차차로 옅어지며

붉은 빛으로 사르르 물들어와

노랗고 빨간 태양이 하는 말을 들었지

씨를 뿌리던 농부가 땅을 갈던 이야기

겨우내 꽁꽁 언 땅을 내가 녹이면

기지개를 켜고 아내와 입을 맞추고

느릿 소한마리 몰고 나선 농부가

어느날 아이를 안은 아내와 입맞추고

나와 땅을 파고 동그랗고 까만 눈

황소에서 콧김이 푹푹 쏟아난 이야기며

뒤집어 엎은 땅에 씨앗을 뿌리고

작은 싹이 돋아 아이도 농부되어 땅 갈고

땅의 진실을 알아가던 옛날 이야기

내일 또 하기로 하고 태양은

강의 상류를 따라 안녕 떠나고 뱀은

어둠 속에서 혼자 강바닥을 내리보며

땅이란 무엇일까? 땅을 가는 농부란 무엇이고

황소는 무엇일까? 황소의 콧김은 무엇이고

푹,푹 나오는 콧김은 무슨 냄새일까? 땅의 진실은

무슨 색깔일까? 물어 보았지만

강바닥은 물살을 따라 천천히 흐르면서

미소만 머금고는 답은 안하고 천천히 흐르면서

떠나고 이어오는 강바닥 그러한다

떠나고 이어오는 강바닥도 말 없이 그리 간다


결심했지, 뱀은

뿌리를 내가 내린 뿌리를 거두어 들이면

안되나요 대답이 없어

네가 몸뚱이를 거두면 소꿉친구들과 영영 이별인걸

너는 이제 물살이랑 몸을 맞댈 때면

물풀 사이로 휘돌며 주고 받았던

이야기를 다 잃고 너를 들이받았던

바위보다 더 꺼칠한 몸과 부딪히고

너를 낚아 채려고 하늘 (하늘이 뭐지?)

에서 여태 본적도 없는

뾰죽한 발톱들이 내려와 (발톱이 뭐지?)

한 여름 물 불어 오를 때 보다 빨리

그리 쓸려가던 강바닥보다 더 빨리

네 몸을 찍어 오를거야. 너는 그 때

물살과 주고 받았던 모든 대화를 그리워 할

새도 없이 찢겨 지고 말거야 너는 이제

어린 시냇물이랑 사이 좋게 지내던 개구리를

먹어 치워야 살고 네가 나오면

농부의 아가는 놀라 여린 무릎에선 피가 날걸

땅을 갈던 농부의 곡괭이제 너는 찍혀

가는 너의 몸은 두동강 날걸

농부의 아이들이 여름을 몇 개 지내고는

무리지어 떼를 지어 너를 몰아

막대기로 너의 머릴 집어 올려 태양보다

뜨거운 불구덩에 넣을걸


배암은 무서웠어

몸을 두동강 내는 게 날카로운 게 찍어버리는게

불구덩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간이 콩알만 해지고 놀라 몸이 옴츠라들어

물풀보다도 가느다래 지고 벌벌 떨렸어

물살이 배암을 안고 상류로 간 태양에게 부탁하여

몸을 달궈 배암을 문질러 주었더니 놀란 몸이 풀리고

배암은 뿌리를 강바닥에 다시 박고는 잠들었네

저도 모르게


꿈은 물 속 보다 깜깜하네

물살보다 느릿느릿 몸을 흔 들 어

꿈 속으로 들어갈 수록

따듯하고 깜깜하여 더 들어가고만 싶어

이제 된 것 같은데 자꾸만 자꾸만 더 깊이 깊이 들어가고 싶어

들어 갈수록 뜨겁고 차가운 회오리가 밀려 올라와

나중에 알았더라면 바람이라

불리는 물살이 솟구쳐 올라와

물 속까지 들어왔다 나갈 때 마다

배암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여긴 처음 보는 곳이야 살이 아파

마음 먹어도 오늘은 왠일인지 더 깊이

빠져만드네 깜깜한 곳 어디서 뜨거운 건

더 뜨겁게 달아 몸을 찌르고 지나가고

차가운 건 더 차갑게 얼어 할퀴고 지나가고

고요한 밤 물살도 놀라 쿨쿨쿨 잠을 깨고

강바닥 가던 길 멈추고 강의 소꿉친구들도 놀라

몸을 비틀어 우리 배암이 금새 엉켜버릴 것만 같아

물살은 물살대로 강바닥과 친구들은 저마다

배암을 흔들어보지만 오늘은 소용없는 날

모두들 걱정이 되어 잠을 못자고 소란스러운데

배암은 아무것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아

꿈 속으로 깊이 깊이 더 들어가네

들어갈 뿐이네 이젠 알겠어

이건 꿈이야 이게 땅인건가봐

이게 땅을 갈고 땅의 진실인지도 몰라

저기 보인다 황소가 ! 저게 황소인가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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