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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3일 (목) 09:02 기준 최신판
7월 15일 미산계곡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건, 그러니까, 씰크로드 떠나기 여러날 전이었다. 6월에 모인 분들을 또 볼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벌써부터 설레였는데 우즈베키스탄과 뚜르크메니스탄을 다녀온 씰크로드 탐방 여진이 강해서 잘 깨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어쩌다 이번 개인산방 모임이 오십여명을 넘긴다는 게시판 글을 읽고는 질리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갈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마침 강원도에 폭우가 쏟아지고 그 안에서 돌담 쌓기를 한다고 하니, 일도 일이지만, 넘쳐날 것 같은 내린천 옆에서 돌담을 쌓는다는 것이 상상만해도 퍽 낭만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어 서둘렀다. 서둘렀으나 약속했던 토요일 떠나지 못했다. 그 전날 창녕의 여러곳을 다녀와 늦게까지 이야기하고 술을 꽤 마셔서 정신이 혼미한데다 늦게 일어나 할 일 몇가지를 하고 나니 벌써 두시가 넘어선 것이다. 서둘러 짐을 싸고 나가다 생각해보니 그대로 가면 아무리 서둘러도 홍천에 9시나 되어야 들어가고 그러면 상남으로 갈 차가 이미 끊겼을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심하였다. 미리 생각해보지 못하니 몸과 마음만 번거로왔던 것이다. 내리는 비를 보다 그냥 돌아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편안하게 하루를 보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토요일 밤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했지만, 그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일요일 한번 쳐지면 한 없어서 시계를 맞추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알람시간보다 한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여유있게 새벽을 맞고 미리 싸둔 짐을 챙겨 메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떠난 것이 7시가 아직 안되었다. 버스를 타고 홍천까지 가는 길위로 짙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있었다. 아침에 챙긴 '나의 아버지 연암 박지원'과 '허난설헌 시집'을 번갈아보며 책에 빠지기도 하고 뜬금없이 상념에 빠져 밑도 끝도 없는 감정과 상상의 길로 가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기도 하였다. 안동 휴게소에 내리니 비방울이 하나둘 내리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튼 라디오서는 강원도의 물난리에 대하여 소란스럽게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충북 제천을 지나 원주에 접어들 즈음에는 컴컴하고 비가 시원스럽게 내리고 있다. 원주까지 제법 빨리 갔는데, 거기서 홍천가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하여 특명을 받은 군인 두엇과 함께 홍천으로 출발하는 버스로 비를 피해 뛰어 갈아탔다.
홍천에 내리니 열두시가 조금 넘었다. 홍천강이 넘실대고 있었는데 빗길 다리를 추적추적 건너 짬뽕 전문점에 가서 짬뽕을 맛있게 먹고 내리를 비를 보며 자판기 커피도 하나 뽑아들었다. 상남으로 가는 버스가 두시 반에 오기로 하였는데 아직 시간이 많아 농협마트에 가서 한우쇠고기를 사넣으니 보트카 두병과 옷가지, 책 두권이 든 가방이 더 빵빵해졌다. 두시 반에 오기로 버스는 양평 물난리로 40분을 더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홍천서만 세시간을 넘게 기다린 셈이다. 어쨌든 버스는 왔고 첫자리에 앉아 물난리 소식을 라디오로 들으면서 상남 도착하니 박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니 다섯시가 되었다. 집에서 출발해서 열시간이 걸린 셈이다. 몇 명 없을 줄 알았는데 개인산방에는 스무명이 넘은 사람들이 방이나 부엌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도착하자 마자 짐을 놓고 밖에 나왔다.
정자 있는 곳으로 나가보니 내린천이 불어 금방이라도 일어설 것만 같았다. 용이나 이무기를 담았는지 흙탕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 흙탕물 위로는 흙색 갈기를 한 말떼가 거슬러 오르는 것만 같아 가슴 속 심지에 불이 붙기 시작하였다. 비조불통 계곡으로 발길을 옮기니 거긴 더 볼만했다. 물살이 어찌나세고 물이 넘치던지 그 거대했던 바위들이 몇개 보이지 않고 길까지 물이 차올랐다. 내 마음까지 기분좋게 일렁였다. 물난리는 제대로 만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안전한 나는 물에 취한 물구경꾼 말고 다른 무엇이 아니었다.
돌아와 비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이실장님과 다른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한두명이 더 나오고 비를 피해 모여 불을 피우고 어제온 분들이 먹다 남은 언 꽁치와 데친 문어를 안주로 바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내가 가져간 우즈벡 보드카로 시작해서 소주로 이어졌다.
이미 어둠이 내린 뒤에 비가 그쳤다. 사람들이 나와 술자리가 제법 커지니 모닥불을 제대로 피우고 그리 빙둘러 앉았다. 보드카는 이미 떨어졌고 소주도 떨어지고 꼬냑이 나와 그것도 다 떨어지고 마침내 박변이 이실장님 드리려고 사온 루스끼 스딴다르뜨 보드카를 터야할 즈음 또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이때까지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흥이 넘쳐 이번 여름 바이칼에 신영복 선생님과 함께가는 분께서 차를 끌어대 불을 밝히고 문을 열어 러시아 노래모음집을 틀었다. 남자아이 녀석이 느닷없이 그럴싸하게 춤을 춰대는 통에 술자리는 후끈 달아올랐고 잘 그러지 않는데 내가 나가 러시아 춤도 아니고 카프카즈 지방 춤도 아닌 이상한 춤을 추워댔다. 두 남자아이 녀석과 함께.
그러는 사이 비가 오고 밤도 늦었고 술도 꽤 되어 사람들은 하나둘 들어갔다. 남은 여섯이 자연스럽게 짝을 지어 게임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시시껄렁한 노래들이 오갔던 것 같은데 흥에 겨워있던 나도 함께 잘 어울려 놀았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그 사람들마저 들어가고 나 혼자 남았다. 비는 내리는데 불은 꺼지지 않았다. 꺼지기는 커녕 더 살아 오르는 것만 같았다. 불과 비의 전면전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불의 저항은 거셌다. 비 속에서 타오르는 모닥불을 우산으로 가리우고 서서 보다가 우산도 개 넣어버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미 젖어서 머리를 따라 물이 흐르고 바로 옆 숲의 나무들처럼 서서 나도 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새벽 네시가 넘었을 즈음 불을 흐뜨려놓고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씻고 따듯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어지럽기도 하였으나 자연 속에 들어와 물과 불과 함께 하였더니 눈을 감아도 뻘건 불씨들과 그리 떨어지는 비줄기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불가에 서있는 청년 하나가 보이고 차차 작아져갔다. 빗물도 모닥불도 지팡이를 짚고 선 그 청년의 모습도 어둠에 잠겨가는지 더 작고 작아지더니 불씨 하나로 되어 마침내 깜깜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짐을 싸서 일단 서울로 가는 차를 얻어탔다. 졸다 깨다 하면서 서울에 이르르니 한강 강변에 물이 찰랑 거렸다. 덕분에 차는 막히지 않았다. 인사동으로 가서 비 속을 걸었다. 전시회장도 들어가보고 자주 다녔던 그 길을 우산 펴지 않고 그냥 걸어보았다. 처음엔 그렇게 비가 오지 않았으니까.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깊은 자연속에 있다 도시 한가운데로 나오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인지, 저마다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이 빗속에서도 휘둥그레 하거나 빙그레 웃으면서 다니는 것을 보아서 그런건지... 인사동길에 돌들이 비에 반짝이는 것 조차 견딜 수 없이 어떤 슬픔을 중독시키는 것 같았다.
몇번 전화가 오고 간 다음 만나기로 한 분이 나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 사이 지내온 이야기하고 반주로 소주 몇 잔을 한 다음, 가보기로 한 카페에 갔으나 문이 잠겼다. 먹어 보기로 한 음식점들도 모두 문이 닫아 몇 군데를 헛탕쳤던 터라 허허 참... 연휴 마지막 날인데다 비가 이리 오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걸었다. 지하로 난 전라도 음식+술집에 들어가 간단한 안주에 비싸지 않은 양주 한병을 시켜 담소를 즐기면서 금새 한 병을 뚝딱. 술집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주인도 서둘러 문을 닫으려 해서 우리는 나와 다음 술집을 찾았다. 간단히 맥주 한잔을 하고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가다보니 처음 가기로 한 카페가 문을 연게 보였다. 하하.
들어가 보드카를 시키고 - 사실 이 약속은 보드카 때문이었다 - 이미 양주 한병을 나눠먹은 사이였고 말이 통하는 것을 서로 느껴서 말도 빨라지도 자세도 한결 편해졌다. 보트카가 몇순배 돌고 다른 분이 오고나서 흥은 더 났다. 금요일 저녁 보드카 한병을 다 먹다시피 했고 잠을 충분히 못잔체 근 열시간을 걸려 개인산방에 들어가고, 거기서 술을 진탕 마시고, 몇시간 못자고 또 하루를 시작하고, 서울까지 오고... 하였더니 몸이 많이 지쳤는지 보트카가 아직 꽤 남았는데 눈이 풀렸다. 화장실에 가서 나는 먹은 것을 토해내야 했다. 두 번쯤 그러면서도 술잔을 몇 번 더 기울였고 한시 반쯤 우리는 흩어졌다.
근처 모텔에 들어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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