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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8일 (수) 01:11 기준 최신판
- 그러니까, 오늘은 네시간을 잔듯 만듯 하다가 깨어버린 덕에 열두시간이 넘도록 이러고 앉아 있는데, 사람 할 짓이 아니다. 는 걸 알면서도 이리하고 있다. 무얼 마음이 급한가, 마음이 무얼 단단히 잡고 말겠다고 벼른건가. 아니지 않은가?
- 그만그만한 듣기와 읽기와 생각과, 그만그만한 일상으로 살아간다면 가야할 곳으로 가는게 아니겠지. 살얼음을 걷듯 가시밭길 가듯 가야한다면 그리 가야겠지. 삶을 아낀다면 그리 하겠지.
- 어쨌든 생활이 그렇듯, 언어는 습관인데, 언어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의 오랜 찌꺼기라, 나의 습관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만의 것이 아니면서 나의 것인데, 여기가 절망을 경험하는 첫지점이 아니겠는가. 언어의 찌꺼기를 걷어낼 수 있는 길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결단하고 내 안에 오래전부터 있어온 생명을 부활시키는 길 밖에. 결단 없이 부활도 없다. 모든 것을 내던지도록.
- 소수가 자연수를 유일하게 곱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수'가 '소수'들의 '곱'으로 표현하고 그 방식은 어떤 것으로 먼저 접근하듯 같은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수'는 '나눗셈' 개념을 통해 얻어진 자연수의 부분집합이며 자연수의 기초다. 그런데 '나눗셈'은 뺄셈의 반복으로 보더라도 결국 곱셈의 역인 것이다. 그렇다면 소수가 자연수를 유일하게 곱으로 표현한다는 문장은 단순하지 않은 의미를 감추고 있어 보인다. 소수가 무한개라는 점에서 이미 소수 세계의 복잡성이 드러났다. 자연수는 단순해보여도 그 질서 안에는 '상당한 수준'의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찾게 된 것이다.
- 미망이 열반이고, 질서가 무질서고, 깨끗함이 추함이고, 건조함이 촉촉함이다. 이것은 '시간'에 대해 상대적인 개념이 아닌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없이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있을 수 있다. '큰 나'는 '작은 나'의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작은 나'는 '커지려'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길러지기도 하였다. '작은 나' 없는 큰 나 없다. 작은 나를 '작은 나'로 제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내 안에서 이리 심하게 꿈틀거리고 끓다 얼다 하는가?
- 오늘 아침, 치열했던 생각들이 밤으로 가면서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나는 먹고 싶은 것도 없어지고, 입고 싶은 것도 없어지고, 늘씬한 여자 허리와 목을 봐도 풀린 눈만 뻐끔뻐끔.
- 이리도 변덕이 죽끓으니, 내 안의 나는 도대체 무언지. 내가 만진 모든 물건들에 나의 흔적은 어디에 있으며 내 마음 속에 나타났다 사라진 모든 像들은 다 어디에 숨어 있느냐. 나를 아프게 하고 기쁘게 하였던 감정들은 어디서 왔다 지금은 또 어디로 가 있고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 오늘도 내 안에서 기름에 불부은듯 느닷없이 타오르다 재가 된 마음들은 또 무엇이었느냐.
- 무슨 말이 이리도 많은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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