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 Slova: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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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없음)

2006년 11월 3일 (금) 15:39 기준 최신판

  • ”기본적으로 내 경우에는 예술과 정치가 분리돼 있습니다. 나는 그저 음악가이고 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며, 그리고 음악가에게 정치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음악가인 나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 밖에 없습니다. 즉 내 예술적 양심에 따라서 의식의 순수성과 광대한 차원을 향한 고차원적인 요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예술가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므로, 만인을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해야만 되고, 따라서 정치에 도움이 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단기간의 임무일 수밖에 없습니다.”
  • “나에게는 조국과 음악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깊은 상관관계 속에 있다. 나의 음악은 나의 조국에서 태어났고, 나의 조국은 나의 음악을 그 자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다시 더 풍요한 음악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 “전혀 아닙니다. 나는 이 작품(화염속의 천사)을 통해서 그 어떤 정치적 영향이나 선동적 입장을 따른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단지 나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작곡가로서 이 작품을 다루었습니다. 이 화염에 싸인 천사는 내가 나의 민족을 위해 작곡한 마지막 관현악 작품입니다. 나는 분신으로 죽어 간 젊은이들을 영웅으로 추켜 세우려는 것이 아닐 뿐더러 그들 중의 그 누구도 성인으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천성과 자신들의 순수한 영혼의 열정과 걸맞게 행동하였던,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사실을 우리는 기억 속에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 “나는 이 교성곡(나의 땅 나의 조국)을 1987년 2월과 3월 2개월 동안에 완성하였다. 언젠가 나는 한 번 민족을 위한,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안겨주는 곡을 쓰고 싶었다. 이 곡은 나의 량심에서 참을 수 없어 터져나온 곡이다. 이것으로써 <광주여 영원히>와 함께 나는 작곡가로서 우리민족에게 바치는 나의 절절한 호소와 충정을 표시한 것이다.”
  • “결혼을 제외하고 내 생애는 언제나 분단의 경계 위에 선 것이었다. 내 음악의 대부분은 그 분단을 극복하는 일에 바쳐졌다.”
  • “고향에 돌아가면 남도창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