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h Mail 01
안녕, 명훈아 !
첫편지를 쓰고 여러날 갔구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제때 갖다 주어야 했단다. 읽고 그냥 돌려주기 아까와서 마저 정리를 하느라 며칠 걸렸단다. 러시아의 작가 똘스또이는 이런 말을 했다더라, "한번 읽고 말 책은 한번도 읽지 말아라." 괜찮지 않니?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 읽고 기억해 둔 거라 이게 정확한지 썩 자신있진 않구나. 아니 언제 어디서 읽은 것인지조차 뿌옇다. 하지만, 썩 괜찮은 말은 외우지 않아도 기억의 판에 단박에 팍 박히고 말잖아.
그건 그렇다치고, 사실, 삼촌은 지난 서른시간 강좌에 들어가기 전에 마침내 이를 고지를 먼저 정했어. '무한 세계의 신비' 쯤으로 했단다. 수학 용어같지 않아보이지? 끝이 없음을 뜻하는 무한(無漢), 영어로도 infinity라고 한단다. 세상 어디에 무한한 게 있을까? 별? 해운대의 모래알? 지구에 떠다니는 먼지? 그럴까? 그럼, 2천 5년전 아르키메데스 할아버지가 계산해보았다는 것 :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은 ? (몇 개나 될까? 계산해보겠니? 그 지혜로왔던 그리이스 할아버지는 어떻게 시도했을까?)
그런데 앞으로 보겠지만, 수학에서는 끝없이 많은게 참 많거든. 그걸 볼 수 있는 건 우리의 두 눈이 아냐.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바로 마음의 눈 !으로 볼 수 밖에 없어. 마음의 눈을 뜨면 끝없이 많은 것들이 나타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처음 볼 때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질들이 나타나. 신비롭지!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많겠지만, 기왕이면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그런데 느닷없이
- '자, 무한이란 무엇이지? '
라고 물으면 너무 막막하잖아. 그래서 기왕이면 차근차근 해보고 싶었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자연수(natural number)부터 시작해서 실수(real number)까지 가보면서 수도 이해하고, 셈도 이해하면서 탐험을 하는 거지. 튼실하고 붉게 잘 익은 열매를 따먹으면서 가는거야. 마치 공주를 구하러가는 용사가 가는데, 성에 이르기까지 보물들을 하나하나 꼭 손에 넣어야 하는 것과 같아.
그렇다고 수나 셈을 이해하는 것이 무한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다오. 자연수 세계 하나만해도 우주야. 신비로움 자체야 ! 모르면 모를수록 뻔하고 호기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오묘해. 아이쿠, 말이 너무 길어지는구나.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 간단히 말할께. 자연수부터 수를 정성들여 '키워가면서'(이 말을 기억해다오!), 마침내 유리수(rational number)와 무리수(irrational number) 까지 탐험하면서 '무한' 속에 담긴 마법을 보이려는 것이었어. 그렇다면 이야기는 자연수 세계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지. 자, 그럼 시작해볼께.
그럼. 질문 :
- 자연수란 무얼까?
무엇을 자연수라고 부르지? 자연스러운 수(Natural number), 무엇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지? 삼촌이 물으며 대개 이런 답을 한단다.
- 일, 이, 삼, 사, ...이렇게 가는 수 !
그럼 삼촌은 이렇게 되물어, 기억나니 ? 정말 그랬어.
- '이렇게' 라니, 어떻게, 도대체 ?
또는 이렇게 답했던 친구도 있었던 것 같아. (명훈이는 어떻게 생각하니, 자연수가 무얼까? )
- 셀 수 있는 수 !
야, 이 대답은 정말 삼촌을 깜짝 놀라게 했던 답이었단다. 지금까지 여러 답을 들어보았지만, 이 답처럼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답은 없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걸 애써 감추었어. 삼촌 짖궂잖아. 하.하. 또 이렇게 되물었던거지.
- (삼촌) 그래? 그럼, 센다는 것이 무얼까?
- (친구) 하나, 둘, 셋, ... 이렇게 ...
- (삼촌) 어떻게 ? 자연수로 센다는 것이니, 아니면 자연수를 센다는 것이니 ?
- (친구) 음... 자연수로 세죠. 아니, 자연수도 셀 수 있나? 아니, 그게 아니고 ...
삼촌은 흐뭇해서 이쯤해서 미소가 살짝 나오지 않을 수 없더라. 삼촌이 무얼 더 알아서라기 보다는 '센다는 행위'와 '자연수'라는 '물체'(라고 생각하는 것) 를 묶어 생각했다는 것이 기특하고 고마왔단다. 물론 이 답이 맞다고 말하긴 일러. 나중에 보겠지만, 자연수 말고도 셀 수 있는 수는 많거든. 아무튼, 앞으로 이야기는 어떻게 더 전개 되었을까? 상상해보겠니? 머물러 있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다음으로 넘어 가볼께.
잠깐 ! 더 나아가기 전에 멈춰! 삼촌이 명훈이에게 요구하노니....
이 문제에 대해 명훈이는 더 생각해보아라, '자연수란 무엇일까?' 그리고, 앞의 답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수학편지 공책에 나름대로 적어보아라 ! 일기처럼 ! 공책 한 쪽에 가득. |
아, 그러고보니, 해야할 말을 아직 안했네. '수학편지 공책'에 대해 말을 안했어. 그래서 삼촌이 방금 앞에서 한말은 빈말이랑 다를게 없구나. 공책을 하나 준비해다오. 깨끗한 것으로. 연필과 지우개도 준비해야지. 읽기만해선 수학을 하는게 아니야. 스스로 생각하고, 손으로 해봐야하거든.(Do Math !!!) 틀리거나 생각이 바뀌면 연필로 죽죽 그어버릴게 아니라, 지우고 깨끗하게 다시 써야해. 그래서 지우개도 필요해. 기억나니? 삼촌이 강좌 기간 중에 여러번 말했는데...
- 글씨를 넉넉하게 쓰고, 공책을 깨끗하게 정리하라.
공책을 깨끗하게 정리하는게 무언지 차차 나올거야. 한 쪽을 다 못썼어도 괜찮아. 우선 다음을 읽기 전에 생각나는 만큼 집중해서 써봐. 남은 부분은 나중에 써도 되니까, 그냥 비워놓고 빈칸으로 둬. 알았지?
자, 그럼 계속할께. 자연수가 무엇인지 말하기는 여간 어려운게 아냐. 사실 불가능한지도 몰라. 그 질문에 답을 한 방식도 여럿이야.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연수는 신이 내린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다." 라는 말까지 하니까. 어쨌든 삼촌은 이렇게 말해보고 싶어. 기억을 더듬어가보자.
더, 대신 이번엔 올려놓지 않을께. 명훈이 마음 속에 '원(圓;circle)' 하나만 올려놓아봐. 완전한 동그라미. 한 점에서 떨어진 거리가 같은 점들의 모임. 이건 눈에 보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어. 비슷한 것은 많지만 실재하진 않아. 오로지 우리 마음 속에만 있어. (왜 그럴까?) 이제 공통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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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보면, 박사랑 루트가, 따듯한 봄날이었나? 작은 폭포가 있는 곳에 앉아 이야기 나누잖아. 그때 박사가 나뭇잎 하나를 들고 "오운리 원, 오운리 원데스!' (only one) 이라고 하잖아. 바로 그것 !
마음이 눈이 아직 다 못떴을까봐, 삼촌이 직접, 사과, 귤, 토마토, 숟가락, 인형, 헬리콥터 들을 진짜루 올려놓아볼께. 인형은 명훈이 마음의 눈으로 본 것과 다를 수 있겠구나.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단다.) 아, 근데, 그 옆에 먼지랑 원도 보이지
그 '하나'가 있는게 정말 중요해. 그 '하나'에 '하나' 만큼 더 있으면, 그걸 '둘'이라고 하지. 사과가 두 개, 당근이 두 개, 숟가락 두 개,... (이렇게 하면 명훈이도 명훈이의 클론(clone)을 상상해야 할거야. 실재하지 않는다고? 상상은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그럼 둘에 하나가 더 있으면 ? 그것에 하나 더 있으면 ? 그것에 하나 더, 하나 더, 하나 더... 그렇게 되는 걸 이제 '자연수'라고 부르자. 그럼. 앞에서 했던 질문과 답에 대해 어느정도 느낌이 오니? 그렇게 되면 자연수는 어디에 있겠니? 어디에나 있지. 세상 어디나 있고 어디에도 없고... 그렇지 않을까?
그럼 이쯤에서 다시 앞에 비워둔 공책에 새로 든 생각을 정리해서 써보겠니? |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자연수가 무엇인지 '정의(definition)'한 것은 아니야. 정의는 참 중요하지만, 수학은 맨처음부터 그것으로부터 시작한 게 아니거든. 정의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앞에서 삼촌이 말한 것이 정의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해. 과연 '공통점'이 뭐냐는 것도 모호하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견줘봐야 하느냐도 문제고,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미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를 딪고 있다는 거지. 앞에서 내가 말한 건, 난 그렇게 느끼고 이해하고 있다는 거야. 명훈이도 명훈이 나름대로 한번 1 을 해석해보거라.
어쨌건 여기서 센다는 행위는 무척 중요한 것 같지 않니? 아주 오래전, 호랭이가 담배피던 시절, 사람들이 돌을 들고 사냥을 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하던 시절을 한번 상상해볼까? 그 시절 사냥은 무척 어려웠을거야. 신발도 칼도 없던 시절이쟎아. 운이 좋은 날에야 산토끼 한마리와 산멧돼지 한마리를 잡았을까 말까 했을거야. 그러다가 점점 도구도 세련되고 사냥 기술이 발달하면서 산채로 잡을 수 있게도 되었아. 그러다가 마침내 집에서 기를 수도 있게 되었겠지? 양을 잡았어. 세마리. 울타리에 넣어둬. 또는 동굴에. 세마리 정도라면 풀을 먹이러 갔다가 오면서 일일이 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거야. 모두 있는지 없는지. 그런데 양들이 새끼를 치고, 새로 살아있는 양을 더 잡았어. 이제 열 두마리가 있다고 해보자. 그건 한눈에 알기가 힘들어. 보통 둘, 많아야 넷까지는 세지 않고도 몇개 인줄 바로 알아보는데, 다섯이 넘어가면서부터는 힘들다고해. 동물들 중에도 '넷'까지는 알아보는 동물들이 있대.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겠지만, 그 이야기를 해볼까? 몇 백년 전 어느 나라에 어떤 귀족이 있었어. 시골에 있는 작은 성에서 아주 조용하게 살았지. 그런데 어느 날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까악~까악~ 우는 거야. 조용한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했었는데, 하필 그때마다 까악~까악 우는 거야. 참다참다 미쳐버릴 지경이 되었어. 어떻게 했겠어? 까마귀를 잡으려고 마음을 먹어겠지. 까마귀 때문에 이사를 갈 수 없잖아. 그리고 이사를 한다 해보자. 거기도 까마귀가 있을지 모르잖아. 확실한 건 지금 여기 있는 까마귀를 잡는거지. 그런데 화살만 들이대면 이게 나무 뒤로 쏙 숨어버리는 거야. 몇 번을 숨어서 화살을 들이댔는데, 사람이 보이면 숨어서 안나오는거야. 그러다가 사람이 가고나면 모습을 드러내 또 하늘을 보고 까악~까악~ 우는거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명훈이가 그 귀족이었으면 어떻게 했겠니?)
어느 날 귀족은 좋은 생각이 났어. 바로 이거야 ! 뭐였냐면, 두 사람이 가는 거야. 그러다가 한 사람은 숨어있고 한 사람만 돌아오는거지. 그때 까마귀가 나타나면 화살을 채우고 숨었던 사람이 잽싸게 나타나 순식간에 쏴서 잡으려고 했어.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니?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은 숨어있는데 까마귀가 안나타나는 거야. 아무리 기다려도. 그러다가 숨었던 사람이 허리도 아프고 지루하기도 해서 일어나 돌아오면 그때서야 나타나 또 까악~까악 우는 거였어.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새대가리' 가 아니었나? 싶었겠지. 오기가 생긴 이 귀족은 다음에 셋을 보내보았어. 그런데 그때도 마찬가지야. 세 명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까마귀는 나타나지 않았어. 자, 이제 누가 이기나보자. 귀족은 넷을 보냈지. 까마귀는 또 안나타났어. 귀족은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까 하다가 이게 재미있어지고 흥미로와진거야. 음악도 좋지만, 문득 이런 호기심이 들었어. "저 까마귀도 셀 수 있나보다. 아마 넷은 셋과 다르다는 것을 아는 거야. 그러니까, '넷'에 대한 느낌이 있는 거겠군. 음.. 그렇다면 과연 얼마까지 수에 대한 느낌이 있을까?" 그리고는 다음 날 다섯 명을 보냈어. 모두 화살을 들고. 까마귀는 또 숨었어. 그러자 다섯사람 모두 숨었어. 까마귀는 안나타나. 한 사람이 퇴장했어. 까마귀, 안나타나. 두 사람이 퇴장했어. 까마귀 콧방귀만 풍 뀔 뿐 안나타나. 세째 사람도 갔어. 여전해. 이제, 네째 사람이 되돌아 갔어. 그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 그때 까마귀가 나타난거야. 넷까지 가니까 모두 갔다고 여긴거지. 그때 다섯째 사람이 잽싸게 나타나 화살을 쏴서 잡았어. (아~ 불쌍한 까마귀~)
이건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냐. 조금 꾸미기는 했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대. 지금도 실험할 수 있단다. (그렇다고 명훈이가 살아있는 새를 잡으러 화살을 준비하진 말아다오.) 어떤 동물은 수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있단다. 사람도 그렇지. 다른 부족들과 교류가 없는 어떤 원주민 부족은 지금도 하나, 둘, 다음엔 '많다'고 한다잖아. 그 부족이 멍청해서 그럴까? 아냐. 아마 오래오래 전에 우리의 선조들은 대체로 그랬던 것 같아. 지금 남은 언어 중에도 '셋'이 '많다'는 뜻인 경우가 많다고 해. 한자로는 나무(木)을 세번 겹쳐서 쓰면 '숲이 빽빽하다'(森)가 되고, 털(毛)이 셋있으면 자그마한 솜털이 송송이 돋아있다(毳)가 되고, 말(言)이 셋 붙어있으면 재재거리다(답[1])이라는 뜻이란다. 아랍어도 그렇다고 해. 한 사람이 rajulun, 두 사람이 rajuan , 그리고 많은 사람은 rijalun 이란다. (아랍어를 잘 몰라서 읽은 책에서 옮긴 것이란다). 또 영어도 three 가 셋이라는 뜻이잖아. 그런데, 어근이 같아 보이는 throng 은 무리가 되잖니? 이것말고도 그런 흔적은 많이 있다고 해. 그리고 아주 어린 아가들이 수를 배우게 될 때, 하나, 둘 까지는 쉽게 따라하는데, '셋'을 배울 때는 무척 어렵게 배운다고도 한단다. 넷은 쉽게 배우는데 말야.
넷까지는 잘 세어가는데 다섯째부터 헷갈린다는 증거도 자주 있어. 삼촌이 수학 공부를 한 러시아에서는 숫자에 따라 뒤에 오는 말이 조금씩 바뀌곤 하거든. 예를들어 일 년은 odin god (아진 고드;라틴 문자로 바꿔 쓴 것란다) 라고 해. 단수형이니까. 원래 '년'을 뜻하는 god 가 그대로야. 그런데 이 년은 dva goda (드바 고다)로 끝이 살짝 변해. 삼 년도 tri goda 야. 사 년도 chet-ry goda, 그런데 다섯 이후부터는 pyati let 으로 갑자기, god 는 사라지고 let 으로 바뀌어버린단다. 그렇게 거창하게 볼 필요도 없어. 학교에서 반장 선거할 때, 투표함을 열어서 하나씩 세어가면서 누가 많은지 비교할 때, 보통 어떻게 하니? 오른쪽 그림처럼 하지 않아? 다섯개 묶음으로 하는 거야. 지금도 프랑스의 포도주 양조장에서는 포도주 통을 팔러 내보내면서 그런 식으로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리고 아주 오래오래 전 뼈를 발견하면 거기에 날카로운 돌로 긁었는지, 이런 표시가 있단다.
아마 양을 동굴로 데리고 가면서 세던 것일거야. 양 한마리에 빗금 하나를 '대응'시켰던 것이지. 양 하나, 빗금하나, 둘째 양들어가면 빗금 둘, 세째 양 들어가면 셋, 이런 식으로 말야. 이건 수 천년 동안 쓰고 있었어. 지금도 어쩌면 높은 산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은 채 태어나서부터 양만 돌본 목동들은 이렇게 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 사람들은 '하나, 둘, 셋, 넷, ... ' 이런 걸 모르거든. 그냥 양 한마리와 빗금 하나를 대응시킬 뿐이야. 다음 날 아침 양들이 모두 있는 줄 알려면 양 한 마리에 빗금 하나를 손가락으로 되짚어가면 되겠지? 여기서 삼촌이 일부로 '대응'이라는 말을 썼단다. '대응'이라는 개념은 나중에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해. 그래서 낯선 용어이지만 일부러 써둔거야.
새로 잡았거나, 새끼를 쳐서 양이 늘어나면 빗금을 그만큼 더 치면 되겠지? 자, 그렇다면, 양이 사라지면 어떻게 했을까? 축제 때 잡어 먹었을 수도 있고, 늑대에게 물려 갔을 수도 있잖아. (아~ 불쌍한 양~) 그러면 뼈나 나무조각에 새긴 건 버리고 다시 그어야지. 양들을 한줄로 늘여 놓고 양 한마리씩 지나갈 때마다 하나씩 빗금을 그었을거야. 왜 그렇게 하냐고? 그냥 하나, 둘, 셋, ... '이렇게' 세어가면 될텐데? 아니지, 그렇게 못해. 그 사람들은 아직 수를 부를 말도, 숫자도 없었거든 !
그런데 양이 점점 늘어 아흔 아홉 마리였다고 해보자. 뼈가 얼마가 길어야겠니? 양 한 마리와 빗금 하나를 대응시키면서 나타내기가 점점 어려웠을거야, 그렇지? 아래 그림을 보아라.
그뿐만 아니야. 세월은 흘러흘러,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모여살았을 거야. 도시가 생기고 사람들 관계가 복잡해져. 내게 없는 물건을 다른 사람과 주고 받아야 할 때가 있었겠지. 비단 어떤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에만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건 아니었을거야. 교류하는 양도 점점 많앚지고 형태도 복잡해져. 이렇게 되면서 '수와 숫자' 에 대한 필요가 늘어났겠지. 아주 자연스럽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야. 하지만, 누군가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어디에도 기록이 없지만, 그 누군가는 '수와 숫자'를 깨닫고, 쓰기 시작했을거야. 놀라운 일이지!! 놀랍지 않니? 빗금 방식이 아니라, 어떤 기호로 써서 표시하기 시작한거야 !! 그렇게 되면 그것을 오래 기록해둘 수 있어서 더 좋잖아.
이렇게 해서 '숫자를 나타내기' 시대로 접어들어. 그 시대가 언제 시작했는지 그것은 잘 알 수 없어. 그리고 정말 숫자가 어떻게 시작했을까 하는 것도 고고학자들이 발견해놓은 온갖 자료들로 추측하는 것일 뿐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지 않으면 알 수 없겠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고 해도 모든 부족을 다 가보면서 확인해볼 수는 없잖아? 하지만, 어쨌든 수를 세야 한다는 필요가 생기고, 세기 위해서는 '수와 숫자'가 있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분명해.
휴 ~ 첫시간엔 말을 너무 많이했구나.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지? 지난 서른 시간 강좌 때는 하지 않은거야. 자연수 이야기하고 바로 숫자쓰기로 넘어갔어. 하지만, 이제는 글이니까, 조금 더 자세히 써보았단다. 앞으로도 그럴거야. 너무 많지 않니? 읽다가 벌써부터 지쳐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다. 삼촌은 수학이야기만 나오면 너무 재미있어서 흥분하게 돼. 그래서 말이 너무 많아지는구나. 수도 안나오고 식도 안나오는데 이게 무슨 수학이예요? 라고 묻고 있진 않겠지, 설마? 수학의 탄생 지점으로 한번 돌아가 보는 거야. 그럼 다음 편지에는 진짜루, 수를 기호로 나타낸 것, 바로 '숫자'를 사람들이 어떻게 썼는지 함께 보자. 사실, 그걸 이번 편지에 하려고 했는데. 다음 편지부터 조금씩 조금씩 수나 기호들이 많아질거야.
봄이 성큼 온 것 같아. 봄바람이 제법 거세구나. 생명들이 모두 움터 나오려다 보니 바람도 마냥 느긋할 순 없나봐. 오늘은 산책을 하는데 개나리가 노란 망울을 터뜨리고, 목련꽃이 하얗게 빛이 나더라. 저 꽃들이 피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피어남만으로도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구나. 참, 아름다운 세상이지 ?
총총. 다음 편지 때까지 안녕 !
Note
- 수학 편지 대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