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531-1
지방선거 날이다. 아침에 투표를 하고 세워둔 자전거를 찾으러 가려했는데 게을렀다. 평소보다 일찍 낮밥을 지어 먹고 어슬렁 나갔다. 빨간 Reebok 반팔 옷을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눈이 부셔 선글래스를 껴고. 투표를 하거 갔는데 찍을만한 데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이게 더 낫겠다 싶은 곳에 찍어 접지 않고 투표함에 넣었다.
자전거는 하루 저녁 길에서 보내게 했는데도 나를 반겼다. 고마운 것. 벌써 일년이 넘어간다, 너랑 나랑 사이에는. 너는 어떤 벗보다 나와 함께 오래하였고 어떤 여인보다 내 몸을 더 많이 실어주었다. 너를 언제까지 아끼고 너는 또 나를 언제까지 데려다줄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아무렴 어떠리 우리 우정은 별이 되고 있을테니까.
해운대에 나갔더니 사람이 무척 많다. 물도 좋은지 사람들이 여럿 물속에서 노는데 추워보이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훌러덩 벗고 햇빛을 즐기고 누워 책을 읽는 이도 있고 공을 가지고 노는 이도 있고 남녀가 껴안고 있다. 우리네 젊은이들은 점잖다고 해야하나. 놀러 나온 사람답게 차려입고 허리를 두르거나 몸에 찰싹 가슴들을 붙인 모양이 몇 있긴하다. 하지만 아이들 빼고는 대개 우리네 사람들은 차려입고 와서 바다와 빛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발짝 떨어져서 아 좋구나 ! 할 뿐이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찍을 만한 것도 별로 없어보여 내쳐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았다. 바람이 좋았다. 옥빛 바다가 일렁이는데 후끈 달아올라서 그런지 오륙도도 뵈지 않을 정도였다. 높이 쌓여 올라가는 크고 너른 사각의 아파트들을 짓느라 투표날인데도 쉬지 않고 일하러 나와 있는 사람들이 햇빛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돌고 도는데 묘하게 졸리는 것이었다. 시원하여 좋았더니 살짝 낮잠을 잤으면 싶은 마음이 앞으로 나온다. 해 아래서 잘까 하다가 묘하게 이끌려 이미 본 프랑스와 오종의 5X2를 하는 씨네마떼끄 부산으로 다시 들어갔다. 들어가자 마자 모자와 장갑을 벗고 엉덩이를 앞으로 쭉 뺀 다음 잘 모양으로 걸터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자막은 볼 필요 없어서 프랑스 말을 자장가처럼 틀어놓고 눈을 반쯤 감았다.
깜빡 잠이 들었나. 잠이 들지 않았나. 자세를 바로 하고 영화를 마저 다시 본다. 다시보니 더 재미있다.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오르며 와 보니 땀이 등에 흥건하다. 차가운 물을 틀어 온몸에 뿌려대니 개운하다. 이 맛은 여름의 맛이지. 벌써 여름이 오나보다. 이제 새로 즐길만한 것이 돌아왔구나.
낮에도 왠지 단게 먹고 싶고 무언가 먹고 싶어 브라보 콘도 사먹어보았지만 괜히 입맛만 버렸는데 군것질하느니 밥을 먹자 해서 밥을 먹고 났는데도 허전하다. 여러날 된 케잌과 단 빵들을 다 주워먹으면서 DVD하나를 보고 나니 밤이다. 일할 것은 많은데 손에 잡히질 않는다.
엉덩이가 일을 하는 일을 하면서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다. 어줍잖게 아는 것으로 무엇을 만들다 보니 번번히 벽을 만나게 되어 그때마다 뒤로 물러서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어쩔 것이냐 가야지. 하면서 갈 밖에 다른 도리 없다.
내가 무언가 해낼 것이라고 실날같은 믿음이라도 있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되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하고자하는 것인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을 허물고 싶어 이러는 것인지.
아무튼 허전해서 이것저것 많이 집어 넣어도 맨 그 모냥이 그 모냥이다. 틀림없이 내일은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내 리듬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