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601-2

DoMath
Parha (토론 | 기여)님의 2006년 6월 1일 (목) 14:21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책표지

22일, 국옹과 함께 걸어서 담헌(홍대용)의 집에 갔는데 풍무(김억)도 밤에 왔다. 담헌이 슬을 연주하자 풍무는 거문고로 화음을 맞추고 국옹은 갓을 벗어 던지고 노래를 불렀다. 밤이 깊어지자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져 더위가 건듯 물러나 거문고 소리가 더욱 맑았다. 좌우에 앉은 사람들이 고요하니 말이 없는게 마치 도가의 단을 닦는 이가 생각을 끊고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같고, 참선 중인 승려가 전생을 문득 깨치는 것 같기도 했다. 무릇 스스로를 돌이켜 떳떳할진댄 삼군과도 맞설 수 있는 법이거늘, 국옹은 노래를 부를 때 옷을 풀어헤치고 턱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아 방약무인하였다.

언젠가 매탕은 처마의 늙은 거미가 거미줄 치는 걸 보고서는 기뻐하며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절묘하지 않습니까! 때때로 멈칫멈칫하는 것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고, 때때로 잽싸게 움직이는 것은 흡사 득의 한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리씨 뿌릴 때의 발 모양 같기도 하고 거문고 줄 누르는 손가락 같기도 합니다. "

지금 담헌과 풍무가 소리를 맞추는 모습을 보고 내 비로소 늙은 거미에 대한 매탕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난 여름 내가 담헌의 집에 갔을 때 담헌은 한창 악사 연씨와 거문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하늘은 비를 머금어 동쪽 하늘가 구름은 온통 먹빛이어서 한번 우레라도 치면 금방 비가 쏟아질 참이었다. 이윽고 긴 우렛소리가 하늘을 지나갔는데 담헌은 연씨에게 " 저 소리는 어떤 음에 속할까요?" 라고 묻더니 마침내 거문고를 가져와 그 소리에 화답하였다. 나는 이에 감발되어 '하늘의 우레'라는 노래를 지었다.

연암을 읽는다라는 책을 알았지만 미루고 있던 차에 좋은 분이 선물을 주셨다. 한달이 넘은 것 같은데 그간 돌아다니기도 많이 돌아다녔고 다른 책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이 책은 한꺼번에 읽을 책이 아닌 듯 하여 시간 나고 기분이 그런 날 꺼내어 한 편 읽고 되새기기 좋아 아주 더디게 읽고 있다.

어느 글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오늘 이 부분 한여름 밤에 모여 노는 일을 적은 글 은 혼자 읽고 좋아하기엔 벅차 여기 옮겨 놓는다. 누군가 이 구절이 깊이 마음을 때린다면 달 좋고 바람 좋은 날 이 글을 안주 삼아 술을 한잔 나눔이 어떨지? :)


Parha로 돌아가기 --- 오늘 쓰다로 가기 --- 오늘 그리다로 가기 --- 오늘 우리말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