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22-1
1968년 처음 세상의 빛을 보고 만38년을 살았고 서른 아홉번째 생일이 지나간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니 마땅히 축하할 일이다. 예전처럼 이리저리 소문내며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자축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스스로 축하한다는 것이 빈곤한 변명이나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오늘은 내 삶이 여기까지 온 것을 차분히 되돌아보면서 만난 사람들과 만날 사람들을 떠올려 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잊지 않고 축하를 보내온 사람들에게는 가슴 깊은 데서 애정이 쏟아져 나오는 듯 했다. 해마다 생일날 아침이면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감사의 말을 드렸지만 오늘은 그도 하지 않았다.
어제 늦게 잤는데도 새벽부터 눈을 떠서 더는 잘 수 없었다. 가볍게 요기를 하고 바다를 가르고 나오는 해를 보다 밖으로 나갔다. 바다와 태양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일어난 것이다. 20층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고 보는 것보다 오늘은 가까이 있고 싶었다. 모체인 바다를 가르고 나와 이제 물살을 따듯하게 내비치며 바위를 땅에 굳건하게 박게 하고 그 바위를 철썩 쏴아 치게하는 파도의 아버지 태양을 온몸으로 맞고 싶었다.
아침인데도 등이 후끈 대도록 바다가를 걸어다니며 간밤의 꿈과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꿈에서 만진 살결의 보드라움과 연한 차가움이 문뜩 되살아 난 것이다. 내가 만지지도 않았는데 그런 촉감을 어떻게 느끼는가? 어쩌면 우리는 경험하기 전부터 무언가를 우리 안에 간직하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면서 느끼는 것은 어쩌면 우리 안에 태어나면서부터 있는 그 무엇을 끄집어내는 열쇠 였는지 모른다. 보고 듣고 만진 것이 기억되고 재창조된 결과로 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깊이 담긴 본원적인 바탕이 꿈이라는 바람에 풀이 떨 듯 가는 모래 일 듯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 먼저도 아니고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 나를 떠나 내 주위의 세계도 저마다의 생명 범주 안에서 그런 본원적인 바탕을 안고 '나'라는 생명도 그 일어나는 가는 모래의 하나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항상 하듯 커피를 맛있게 끓여 맛과 향을 느끼고 요사이 그 시간이면 하듯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노자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는 어제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 정수일 선생님의 '우보천리'를 읽어갔다. 잠을 자다 깬 것인지 졸리기도 하여 잠깐 누워 잠이 들었다. 길지 않았는데도 여러 꿈을 꾸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없다. 깨어 났을 때는 이른 아침 했던 생각을 다시 되집어 보게 되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떨고 일어나는 것은 단순 감정이라 불리는 순간적인 느낌이 아닌지 모른다. 이야기를 만들어 엮어내고 꿈 속에서 겪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서 마침내 '단순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복잡한 이야기'의 요소가 아니라 그것들은 사실 조금 늘어지고 뭉친 정도의 차이일 뿐 서로 다르지 않으며, 다르지 않으면서도 기능하는 바가 달라 서로 하나가 없이는 다른 것도 없어지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정수일 선생님의 책을 이어 보다 인터넷에 들어가 Gil사이트 일부를 고쳤다. 아주 작은 기능을 하나 익히는데 꽤 애썼다. 허탈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배움이란 어짜피 참아내기를 동반하는 것이니까. 배고팠는데 쌀이 없어 이것저것 집에 있는 것을 꺼내 끼니를 떼우고 밖으로 나섰다. '우보천리'와 카메라를 챙겨 나갔다. 멀리 낯선 길을 갈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잘 가는 길을 따라 되짚어 가자 마음먹고 대신 천천히 걷고 가끔 쉬면서 책을 읽거나 풀과 바다 새와 나무와 사람을 보며 지나간 세월에 내가 만난 사람들과 그 안에서 어울려 이루어진 사건들을 회상했다. 그것들에 대하여 어떤 사색을 하거나 평가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마음이 고요하여 순서와 상관없이 나오는 대로 보았고 다시 느끼려고 했고 지나간 세월과 상관없어 보이는 생각들도 하였던 것 같다.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떤 길을 걸을지,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놀지, 사이트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해나갈 일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푸드득 날았다가 가지에 앉는 새를 배경으로 해주는 숲과 바다의 풍경에 취하기도 했다. 길을 걷다 들꽃이나 풀이 눈에 들어와 마음을 사로 잡으면 사진에 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카페에 앉아 햇빛을 가득 들이마시고 있는 사람들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였는데 마음이 평화로와서 그런지 미소가 가끔 나왔다.
그대로 걸어 해운대를 걸어 동백섬을 돌아 다시 해운대를 거쳐 집으로 들어왔다. 이 동안 걷다가 서서 바라보거나 책을 보면서 쉬기도 했다. 해운대서 장기를 누며 소일하는 노인들이 두는 판을 구경하기도 하였는데, 어이없게 차와 마를 잃어버리는 노인의 장기를 보노라니, 위험이란 저런 것이구나... 상대가 나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위험이란 나의 불찰로 오는 것이 더 크구나. 그것을 알면서도 보이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위험이란 판을 전체적으로 다 보지 못하고 마음이 어디 다른 곳에 치우쳐 있을 때 생기는 것인가 보다.
쉬며 걸었다 해도 오랜만에 꽤 걸은 것인데, 돌아오는 길은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 시원스럽게 걸었다. 달맞이 고개를 들어설 때 즈음 해는 벌써 장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시장기가 느껴졌다. 집에 들어가면 별 게 없으니 쌀과 반찬을 사가지고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들어와 떡을 구워 먹었다. 낮에 남겨둔 찌꺼기도 없애고. 생일을 축하하는 고마운 사람들은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을 아쉬어 하면서 맛있는 것을 먹으로들 권했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우보천리'를 읽고 있어서 그랬나 지금 내가 먹고 살고 이렇게 마음껏 걸어다닐 수 있다는 큰자유를 향유하는 느낌 만으로 배가 불렀다.
모르지 누군가를 만났으면 특별한 무언가를 먹고 마시면서 생의 낭만을 즐겼을지. 그랬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없이 좋았겠지. 그러나 벌써 서른 아홉번째 생일이지 않은가.
우보천리 읽은 부분에서도 마침 감옥에서 사모님의 생신을 맞는 선생님의 감회가 나와 있었지. 요약하면 생일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부모님께 감사하고 자신의 성장을 가늠자라고.
돌아오면서 문득,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큰 나다움과 작은 나다움'을 고루 생각한 '나다움'을 구현하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겠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나를 남고 내가 담고 태어난 본 바탕 위에서 참나를 발견해가면서 나의 소명을 다해야 하고 그런 바탕이 가진 순리를 거역하지 않으면서 흘러가야겠구나 다짐하였지.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애틋한 부자간의 정에 대한 기억이 적은 나로서는 그것은 이성적인 생각이었을 뿐 감사의 마음을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했어. 불효한 것이야.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지금 얼마나 자랐는가? 이 질문을 들이대니 할 말이 없더군. 다만 이제 나는 자라고 있고 이제서나마 하나둘 깨달아가고 있으니 지나치게 책망하여 기를 죽이지는 말자 위로하였지. 일 년 뒤의 생일에 다시 이 질문을 던질 때는 냉정하게 평가하여도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가야겠다 마음 먹었어. 그때는 나도 가정을 이루고 살틋한 정을 주고 받으면서 내게 주어진 소명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가고 있을거야. 그럴거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반성과 사색은 깊게 하되 기를 많이 죽이지는 말자 한거지.
돌아와 Gil사이트의 디자인과 글을 다듬고 보니 벌써 하루가 다 저물어 간다. 오늘이 가기 전에 서른 아홉 번째 생일에 대한 감회를 적지 않을 수 없어 하던 일을 미루고 이렇게 장광설을 풀어놓았네.
水流花開라...
萬里青天
雲起雨來
空山無人
水流花開
(송대 황산곡)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초의 선사의 차 선물에 추사의 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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