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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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간에 유전자 빈도의 변화를 확률이론으로 분석하면 생물과 수학의 융합이겠고, 영어 시간에 디킨스의 작품을 통해 19세기 사회를 들여다본다면 영어와 역사의 융합이겠지요. 음악 시간에 작곡과 노래연습을, 미술 시간에 무대장치와 의상 제작을, 국어 시간에 대본 창작을 해서 뮤지컬을 만들기도 합니다.(서울 성심여고)


본문 [세상 읽기]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로서는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입니다. 오늘은 교육부가 개편을 검토중인 문·이과 체계와 관련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좀 뜬금없지만 스웨덴의 대학입학 국가고시 국어과목 문항을 인용하면서 시작해볼까 합니다.

“총리가 사회통합을 위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공모한다. 공동체 형성을 도모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왜 자신의 프로젝트가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논하라.” 이 문항은 국어일까요, 사회일까요? 이게 바로 국어와 사회를 ‘융합’한 사례입니다.

‘융합’을 거창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선 등잔 밑을 봐야 합니다. ‘국영수’가 바로 융합이거든요! 국영수와 같은 도구 과목은 다양한 과목·분야의 주제들과 융합될 수 있습니다. 수학 시간에 유전자 빈도의 변화를 확률이론으로 분석하면 생물과 수학의 융합이겠고, 영어 시간에 디킨스의 작품을 통해 19세기 사회를 들여다본다면 영어와 역사의 융합이겠지요. 음악 시간에 작곡과 노래연습을, 미술 시간에 무대장치와 의상 제작을, 국어 시간에 대본 창작을 해서 뮤지컬을 만들기도 합니다.(서울 성심여고)

국영수만이 아닙니다. 역사·사회·지구과학·화학·미술 등… 애초에 융합적 요소를 듬뿍 보유한 과목들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융합교육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혁신학교 정도를 제외하면, 융합교육을 시도하는 교사에게는 엄청난 난관이 닥치거든요. 제가 예전 칼럼에서 언급했지요.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 되어버린 학교. 교사에게 심지어 자기 교과서를 선택할 권리도 없고, 새 학년에 담당할 학년·과목을 미리 알 방법도 없는 ‘교권 부재’의 상황.

또 하나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문·이과 사이의 장벽을 제거하는 것과, 문·이과를 융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지구온난화에 관심을 가지고 지구과학·화학·세계지리·경제 과목을 이수하고 수능시험을 치르는 게 가능할까요? 전혀 불가능합니다. 학교에서 문·이과 구분해서 학급과 과목을 편성하는데다, 대입시험(수능)에서 사회 과목과 과학 과목을 섞어서 응시하는 게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그렇다면 문·이과 장벽을 제거하여 학생에게 폭넓은 이수과목 및 입시과목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아울러 학생들이 ‘쉬운 과목’으로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에서처럼 지원하려는 대학 전공별로 필수과목(혹은 선택과목의 범위)을 지정하는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되면 시간표가 (지원하려는 대학 전공에 따른) 필수과목, (본인의 선호에 따른) 선택과목, 그리고 중간중간 공강 시간으로 짜이게 됩니다.

교육부는 문·이과 개편과 관련하여 현행유지안, 부분통합안, 완전융합안 등 세가지 방안을 제시했고, 조만간 이 중에서 하나를 확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융합안’이 가관입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과목들을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20년 전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지”(서태지, ‘교실 이데아’)라는 일갈이 떠오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면 과목별로 수요에 변동이 나타나겠지요. 교육당국 입장에서는 수요 변동에 맞춰 교사를 수급하는 것이 귀찮고 버겁겠지요. 그리고 수요가 감소한 과목에서 교원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면, 교총과 전교조가 모두 싫어할 것입니다. 결국 관료적 무의식을 버리지 못한 결과, 명분은 ‘융합’인데 내용은 고도의 ‘획일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섣부른 융합안은 과감히 내쳐야 합니다. 장벽을 제거하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 먼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