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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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의 시 하나 마음에 들어오다. 여기 옮기려고 시집을 펼치다 쩍! 하고 시집이 둘로 갈라져 버렸다. 바로 여기 있는 시다.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하섬


1

보러 가자. 정확한 시간은 몰라. 내가 어떻게 지들이 언제 그러고 있는지 알겠어? 바다와 달, 지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야. 우린 그냥 지들이 그러는 동안에 갈라진 바다 사이로 하섬 가면 되는 거야. 생각해봐. 장화를 빌려 신고 갈라진 바닷속을 가는 거야. 불도 없는 섬을 향해 달빛이 교교히 비치는 바다를 건너가는 거야. 그리고, 또 다음날 보름달이 바다를 다 마셔버리면 우리는 또 그 섬을 나오면 되는 거야. 원불교 섬인데 지금 아무도 없어. 갈래? 시인이 그런데 안 가면 되니?


2

최소한 베개를 안으면 아프진 않을 텐데
없는 너를 안고 우리는 하섬 간다
징그러워 징그러워
갈망으로 뭉그러진 몸뚱어리인가
보라 군청 주황 별들이 떨어져 여는
불가사리의 길을 따라
우리는 하섬 간다
발밑에서 별 터지는 소리
가슴까지 튀어오른다
저기 저 돌아오면 하섬도 없고 물도 없는데
보이지 않는 달의 손가락이 푸른 바다의 치마를 끌고 어디로 갔는지
내 몸 속에 엉킨 온갖 것들이
물 없는 푸른 바다 깊이 한없이 녹아내린다


3

우리는 별의 어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구상 모든 별들은 별의 어떤 부분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별의 어떤 속성은 저렇게 태양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만들기도 합니다.


4

흑석동 원불교 회관 지나다보면 하섬 가는 길 떠오른다. 가랑이 사이로 달이 떠선, 바다를 데리고 앞서 가버리고. 하섬 가는 길 열리던. 검푸른 하늘. 아아 나 모두 녹아내려 아무것도 하섬에 부리지 못했던 그 푸른 물 속 길.

... 전통스런 소재를 현대화적 기법으로 담은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특히 4장은 더 마음에 들어. 쏙 들어.


주: 시인은 이런 각주을 달았다.

  • 1연 : 이영자의 전화
  • 3연 : KBS1 지구촌 다큐멘터리 '우주의 신비' 199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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