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22-1

DoMath

가족이 생겨난 것은 여러 이유가 복합적이겠지만, '놀이'하기 위해서 '결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주 옛날, 공룡이 헤엄치고 익룡이 날아다니던 시절 사람들은 지금처럼 혼자놀기의 문화가 덜 발달해있었을 것이다. (혼자놀기의 발달사 현대화를 엮어봐도 재미있는 연구가 될 것 같다.) 그래서 함께 놀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욕구와 욕망, 생산과 분배, 권력, 자연자체가 인간무리에게 요구하였던 바 ... 이런 것들로 가족이라는 제도적 틀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사회는 역동적으로 변화하지만 사실 인간의 삶이란 고작 100년을 못넘기 마련이라 모두 제도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럴 때 어떤 식으로든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각자 욕심이 지나치지만 않을 때 그렇다.)

여기서 '놀이'라는 개념을 중간 정도의, 그러니까 호이징어가 썼던 포괄적인 뜻의 '놀이' 개념 보다 좁고 보통 놀이 연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도의 놀이 개념보다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한다. '호모루덴스'에 혹시 그런 직접적인 연구가 있나 해서 다시 열어봐도 없어서 서운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쉴 새 없이 무슨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아이를 가지게 되면 더 그렇다. 아이에게 엄격하건 친구처럼 살건, 아내와 찰떡 궁합이건 아니건, 소위 '아웅다웅'하며 살다보면 지루할 새가 별로 없다. 게다가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하는 가족구성원의 고민과 자기 삶에 대한 회의라는 것도 사실 '고독한 자아'가 가지는 '권태'를 슬쩍 옆으로 밀쳐내기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현대의 삶이 소단위로 쪼개지고 분화되면 기존 개념의 가족 해체라는 양식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새로운 소규모놀이집단의 형태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거기에는 다른 중대한 문제들이 얼키고 설켜 있다. 이것을 소위 '연구'라는 것을 통해 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이겠다. 하지만 연구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어서 나같은 놈팽이들은 그저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다가 고 천장보고 키득키득 웃다가 훌쩍 눈물이 흘러 배게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벌이랑 나비랑 놀다 벌나비가 났어
땅에선 웅웅 비상하는
꽃씨물고 벌나비
하늘선 팔랑팔랑 바람따라

웅웅웅
벌떼 벌나비 둘러싸고
大洋이란이름의山脈이란이름의
큰바다건너큰땅건너
우주 푸르딩딩하였던 별을
돌고 돌아와선
우르릉 쾅광 꾸아앙
터져버리는
4월 어느 젊은 날의 오후


만남과 헤어짐이 다 무언가. 사람은 왜 만나자고 하고 헤어지자 하는가. 만남을 그렇다치자. 무엇을 바라 헤어지자 하는가. 왜 너에게 왜 나에게 상처를 주는가. 왜 나의 심장을 너의 심장을, 평생을 쿵.쿵.쿵 뛰는 우리의 심장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쥐는가?

만남에서 '좋구나'... 하고 더 바라는 것이 없다면 헤어짐은 없을 터이다.

그러나 더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또 얼마나 맥빠진 일인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時代의 개를
革命하지도 反逆하지도
아니하고 바녁하지도 핵맹하지도 않은 건
젊은 날 나의 죄

중학교때 검은 교복입고 반장이라 이용되어
더러운 매를 들었던 죄
여태 부모님께 지은 죄 말고는
어쩌면 유일한 죄

그러니까
날 좀 내버려두고
날이면 날마다
너는 너나 잘 하라고
밤이면 밤마다
너나 더 잘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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