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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른 59개 주한미군기지의 반환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반환기지의 활용 용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린벨트로 10년간 쉬게해 활주로는 인라인 광장으로 관제탑은 카페로 리모델링, 보존구역엔 습지·목초지가


» 인라인스케이팅 등 시민들의 레저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활주로 일부.

서울에서는 이미 정부가 용산기지 반환 뒤 일부 지역을 상업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온전한 공원으로 꾸미기 바라는 시민·환경단체와 정부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나머지 반환 예정 기지를 둔 지방자치단체들도 대부분 개발에 중심을 둔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시가 1992년 주독미군이 철수한 시 외곽 헬리콥터기지를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개발과 공원화를 주장하는 양쪽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크푸르트 도심의 중앙역에서 북쪽으로 8㎞ 가량 떨어진 보나메스 지역에 자리잡은 옛 주독미군의 ‘모리스 로즈 헬리콥터기지’. 지난 15일 오전 기지 옆을 흐르는 샛강을 건너 철조망이 걷힌 지 오래인 옛 기지 구역으로 들어갔다. 과거 관제탑으로 사용됐을 법한 타워형 건물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그 건물은 옆에 붙은 건물과 함께 리모델링돼 음식을 파는 카페로 쓰이고 있었다. 오른편에 조금 떨어져 있는 창고는 소방박물관으로 개조됐다. 헬기가 뜨고 내렸을 활주로도 대부분 그대로 남겨져 시민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 새 관찰 등 자연학습과 휴식을 위해 기지를 찾는 주민들을 위한 카페로 개조돼 활용되고 있는 옛 관제탑과 부속 건물.

활주로를 지나 기지 북서쪽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바닥의 콘크리트 포장을 걷어낸 자리에 갈대와 여러 종류의 초본류가 자라고 있었다. 오리나무, 물푸레나무, 버드나무 등의 나무들도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물이 얕게 고인 습지가 나타났다. 현장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갈대로 에워싸인 이 습지와 기지내 풀밭이, 물총새·쇠물닭 등 5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조류를 불러들이고 있다고 쓰여 있다. 습지는 개구리와 두꺼비들에게는 이상적인 산란 장소가 되고 있었다.

옛 헬리콥터 기지는 이제 시민들의 휴식·레저활동 공간(기지 동쪽과 활주로), 자연에 맡긴 보존지역(기지 북서쪽), 활주로 남쪽에서 샛강 사이의 목초지로 크게 나눠져 있었다. 현장을 안내한 환경단체 분트의 프랑트푸르트지역 자원활동가 칼 셰러(85)는 “자연을 위한 보전과 인간을 위한 개발 사이의 타협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1992년 주독미군의 기지 반환이 이뤄진 뒤에도 프랑크푸르트시와 시민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시청 환경·공원과는 이 땅을 그린벨트지역으로 묶어뒀다가 10여년이 지난 뒤인 2003년 3만여평에 이르는 기지의 개조작업을 시작했다. 환경단체인 분트가 제안한 ‘인간의 레저활동과 자연보존의 평화로운 공존’이 개조작업의 목표였다.


» 옛 주독미군 헬리콥터기지 안에 만들어진 연못. 사람이 손을 대지 않고 빗물이 고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터 안에 대규모 개발사업을 펼치자는 목소리는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다. 스포츠 시설을 새로 설치해 활용도를 높이자는 주장이 일부 있었으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레저활동을 위한 공간이 되는 동시에 야생동물들의 서식공간으로 꾸미되,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기지 안에 새로운 시설을 짓지도 않았고, 멀쩡한 시설을 부수지도 않았다. 미군이 남기고 간 건물은 새로운 용도를 찾아냈다. 인간의 활용을 위해 새롭게 한 일이라고는 카페와 박물관으로 꾸미기 위한 건물 리모델링이 전부인 셈이다.

그렇다고 자연보존을 위해 특별히 한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 헬리콥터 대기장이었던 곳은 바닥에서 콘크리트 포장 일부를 깨어내는 작업을 했지만, 깨어낸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기지 밖으로 내보내 폐기물로 처리하기 않고 기지 안에 남겨 놓았다. 작은 것들은 철사그물에 넣어 활주로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던 사람들이 걸터앉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크고 편평한 슬래브 형태로 깨진 것들은 모아서 바닥에 깔아놓았다.

핵심 생물서식공간으로 구분해 놓은 북서쪽 지역에도 따로 공사비를 들인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곳곳에 있는 연못은 사실 땅 위에 빗물이 고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분트의 활동가 칼 셰러는 “깨뜨린 콘크리트 포장 덩어리들을 치우지 않은 것은 폐기물 처리 비용을 아끼려는 측면도 있지만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하자는 뜻도 있다”며 “아무렇게나 쌓인 콘크리트 판들 안의 틈새는 야생동물들의 훌륭한 서식처가 된다”고 설명했다.

북서쪽 자연보존 구역을 나오면서 본 안내판에는 “우리는 이 지역이 정글이 되기를 기다릴 것이며, 그것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일일 뿐”이라고 적혀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독일)/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