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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창살’ 너머로 열여덟 희망 ‘찰칵’

노현웅 기자/ 기사 원문

영민(18·가명)이는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불렀다. 백일도 되기 전에 영민이 곁을 떠난 아버지는 “어머니를 쫓아낸 사람”일 뿐이다. 소년원 ‘선배’이기도 한 아버지는 지금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오갈 데 없는 영민이는 무속인인 고모와 함께 살아왔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할 수 없었던 영민이는 어릴 적부터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다니며” 방황했다. 그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물건도 훔치고, 사람도 때리고, 오토바이도 몰고 다녔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상습절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처음으로 서울소년원이란 곳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제빵·도예 등 직업훈련 수업을 들었지만 왠지 고리타분해 보였다. 그냥 “예전에 ‘똑딱이 카메라’를 만져봤던 기억이 나서” 영상미디어반을 선택했다. “영민이는 처음에 선생님이고 뭐고 없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3개월 동안은 자기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죠.” 박인원 영상미디어반 지도교사는 “상처 받은 세월만큼 무겁게 쌓인 마음의 더께를 걷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 영민이는 용기를 냈다. 지난 5월 부모 대신 자신을 키워 온 고모와의 대화를 영상에 담은 ‘다큐멘터리 영민’을 만들었다. 고모가 면회를 올 때마다 카메라를 앞에 놓고 인터뷰한 영상을 편집한 것이다.

“고모에게 나라는 아이는 뭔지, 엄마는 어떤 분이었는지….” 영민이는 이 작업을 하면서 어머니가 재혼해 다른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모가 자신을 “배 안 아프고 얻은 아들”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영민이는 이제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영민이는 “나 스스로를 솔직하게 만들어 준” 카메라와 영상에 점점 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맞춤법을 잘 몰라 카메라 이론을 배울 땐 어려움이 많았지만,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바라볼 때면 행복감을 느꼈다. 영상미디어반 박 교사는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은 아이들에게 카메라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민이는 지난 24일 소년원 강당에서 영상미디어반 동료 10여명과 함께 사진전을 열었다. “지난 7월 서울에서 ‘매그넘 코리아’ 전시회를 보고 ‘우리도 사진전을 열고 싶다’고 선생님한테 졸랐어요. 답답한 소년원 안에서 찍은 것이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열성을 다했어요.”

동료들과 힘모아 ‘철창속 사진전’ “내달 출소하면 사진 공부 하고파”

창살에 갇힌 복도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이(아래 사진), 어두운 타이어 사이에 힘겹게 핀 들꽃(위) …. 대부분 회색 톤인 전시회 출품작들은 영민이와 동료들의 자화상이다. 영민이는 “사진을 찍으면 나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고, 오랜 기다림과 고민 끝에 얻은 한 장면으로 모든 걸 설명하는 게 매력인 것 같다”며 “아직 모자라는 것투성이지만 공부를 더 열심히 해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영민이는 다음달 출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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