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106

DoMath

슬로푸드 운동의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 인터뷰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 유기농 확산의 관건…


카를로 페트리니라는 이름은 몰라도 슬로푸드라는 말을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

그는 슬로푸드 운동을 만든 주도자이며 국제슬로푸드협회 회장이다. <타임>은 그를 2004년 ‘유럽의 영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고, 올해 <가디언>은 ‘지구를 구할 50명의 영웅’ 가운데 한 명으로 꼽았다. 슬로푸드 운동은 성공한 것일까? 카를로 페트리니는 지금 이탈리아에 모두 380개의 맥도널드 지점이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슬로푸드 철학부터 한국의 광우병 사태에 이르기까지 카를로 페트리니의 육성을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직접 만나 들었다. 10월27일 아침 9시30분 살로네 델 구스토와 테라 마드레 행사가 열린 토리노의 링고토 박람회장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시종 기자들로 붐볐다. 출국 전 한국에서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한 끝에 “교황보다 바쁜” 카를로 페트리니와의 단독 인터뷰가 성사됐다.


◎ 당신은 누구나 음식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와인이 한 병에 5유로라면,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된 와인은 한 병에 2유로다.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와인을 택해야 하는가?

우리는 음식을 덜 먹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교육해야 한다. 지금 경제체제에서 우리는 많이, 더 많이 소비하도록 교육받는다. 이제 새로운 형태의 경제체제를 위한 시기가 왔다. (음식물) 소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덜 먹는다면 당신은 음식의 질을 고를 여유를 확보한다. 덜 마시고 먹는 대신 더 좋은 것을 먹고 마시라.

◎ 일부 이탈리아 관리와 요리사들은 “외국에서 이탈리아 재료를 쓰지 않고 만든 요리는 이탈리아 요리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지역적이어야 함’이라는 슬로푸드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선한 먹거리는 반드시 지역적이어야 한다. 가령 한국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만든다면 토마토는 반드시 한국산이어야 한다. 만약 (한국에서) 이탈리아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수입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스파게티·토마토와 함께 맥주를 곁들인다면, 나는 한국 맥주를 마시겠다. 신선한 먹거리는 항상 당신이 있는 바로 그 나라·지역의 것이어야 한다. 찾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 당신은 저서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에서 종 다양성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주면서 착취해서 만든 ‘산업화된 유기농’을 비판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깨끗하고 공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좋은’ 음식 아닌가?

유기농 먹거리와 모든 고급 먹거리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나치게 높지 않은 가격에 생산하는 것이 그 도전이다. 만약 유기농 먹거리가 돈 가진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도전도 아닌 거다. 이 도전을 달성하기 위한 해결책의 하나는 학교나 병원 같은 공공 서비스이다. 병원이나 학교에서 유기농 먹거리를 급식하면 가격을 낮출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유기농법으로 먹거리를 재배·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은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에서 언급했던 피에몬테주의 모로초 지방 케이폰(식용 닭의 한 종)을 기억하는가? (※케이폰은 전통 닭인데 수요가 줄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카를로 페트리니는 모로초 인근 지역의 소비자를 조직해 소비자-생산자망을 만들었다. 케이폰은 다시 부활했다.) 당시 케이폰을 다시 구입한 소비자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케이폰 소비자 집단에 중산층이 아닌 노동자도 포함돼 있었나?

무엇보다 프레시디아 프로젝트(슬로푸드가 벌이는 생산자연합 활동)의 생산물은 지역적으로 소비되어야 한다. 모로초의 사례와 같은 프레시디아 프로젝트의 생산물은 원거리 판매 목적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소비되기 위해 축적되는 거다. 블루칼라도 (소비자 집단에)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 적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에게 옳은 일이 아니므로 너무 비싸서도 안 되지만, 농부나 생산자를 위해서 너무 낮아서도 안 된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적합한 가격을 찾을 필요가 있다.


◎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인상은 어땠나? 또 슬로푸드의 관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아시아 음식은 무엇인가?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미국 샌프란시스코·뉴욕,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3~4년 전쯤 먹어 봤다. 정확한 요리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 가운데 하나다. 개성 있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음식이 최고이고 올바르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가령 나는 한국에 여행 가서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한국에 있다면 나는 한국 음식을 먹을 거다. 여행할 때는 당신이 가는 여행지의 지역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 지역음식이 세상 최고의 음식이 된다.

◎ 당신은 별점을 매기고 요리법에만 관심을 쏟는 주류 음식 평가 매체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신은 여전히 <미슐랭 가이드> 같은 주류 레스토랑 평가서의 가치를 부정하는가? 바람직한 음식비평에 대한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

진정한 음식비평은 요리법에 대해서만 말하거나 그저 별점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미식학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문화·기억·농업·전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식학에 대한 글은 식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류 음식비평이 많은 사진과 오직 요리법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표피적이다.

◎ 한국은 미국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기준을 완화하는 협정을 올해 초 체결했다. 새 협정 아래서 한국 정부는 설령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위험 등급을 조정하지 않는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수십만의 시민들이 거리에서 거의 두 달 동안 시위를 벌였다. 당신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

주로 이탈리아어 신문을 읽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만약 한국에서의 저항이 그런 이유에서 벌어진 거라면 그 저항은 옳다. 비슷한 일이 이탈리아에서도 있었다. 미국법에서는 소에게 호르몬제를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불법이다. 따라서 호르몬제를 먹은 미국 소가 이탈리아에 들어오는 것은 옳지 않다.(<뉴욕 타임스>의 2000년 5월 보도를 종합하면, 당시 유럽연합이 미국 소 수입을 금지하자 미국이 유럽연합을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등 통상압력을 넣었다.) 내 생각에 한국에서의 저항은 같은 이유인 것 같다. 그러므로 만약 그 저항의 이유가 미국 쇠고기가 한우와 고기의 질이나 위험도에서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저항은 옳다.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음식 주권(food sovereignity)이다. 모든 국가는 무엇을 먹고, 경작하고, 어떤 문화를 갖고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유의 원리다.

확신에 찬 어조와 손의 제스처에서 혁명가 냄새가 났다. 두 세대 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활동한 무대도 토리노라는 건 우연일까? 인터뷰가 끝나자 자식뻘의 동양인을 포옹하며 ‘이탈리아식 인사’를 할 땐 마음 좋은 할아버지 같았다. “유기농법으로는 60억명을 먹여살릴 수 없다”는 비판이 오른쪽에서 나온다. “슬로푸드 대회가 농장·식당 노동자를 외면한다”는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코리브르)의 저자 에릭 슐로서의 비판이 왼쪽에서 나온다. ‘당신이 먹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게 카를로 페트리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가르침이 아닐까? 그렇다면, 답은 우리 안에서 나올 것이다.


맥도널드 반대에서 슬로푸드 선언까지…슬로푸드 운동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한국에서 슬로푸드는 ‘천천히 먹기’나 ‘유기농’ 정도의 의미로 이해된다. 과연 그게 슬로푸드 운동의 전부일까? 슬로푸드의 오해와 진실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 슬로푸드는 그저 유기농이 아니다. 슬로푸드 운동의 슬로건은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먹거리다. ‘좋음’은 감각적으로 맛있어야 함을, ‘깨끗함’은 생산 과정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아야 함을, ‘공정함’은 생산·유통이 사회 정의에 맞아야 함을 가리킨다. 슬로푸드는 ‘식탁 위의 민주주의’다.

◎ 18만명 | 한국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슬로푸드 운동은 크게 성장했다. 올해 일곱번째인 살로네 델 구스토는 2년마다 열리며 1996년 처음 열렸다. 올 살로네 델 구스토 행사에는 모두 18만명이 다녀갔다. 25%가 이탈리아 바깥 나라에서 왔다. 테라 마드레는 ‘어머니 대지’라는 뜻이다. 전세계의 음식 공동체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전통 음식을 알리고, 세계화의 대안을 고민하는 자리다. 2004년 처음 열렸으며, 2006년 행사 땐 1600개 음식공동체에서 6400여명이 참석했다. 올해 테라 마드레에는 아시아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일본 등 168개 공동체에서 참여했다. 한국인 참가자도 리스트에 있지만, 실제로는 참석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슬로푸드 문화원 김병수 대표 등 10여 명이 대회를 참관했다. 슬로푸드 문화원은 올 6월 정식 지부로 등록됐다. 그러나 회원은 아직 두자릿수에 불과하다.

◎ 1980 | 보통 슬로푸드 운동은 86년 맥도널드에 반대하면서 처음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슬로푸드 운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카를로 페트리니는 1949년 피에몬테의 브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페트리니는 이탈리아 공산당·사회당이 우경화됐다며 70년대에 당 외부에서 활동한 급진 좌파였다. 그는 피에몬테 지역 정치에도 참여했다. 70년대 후반부터 일간지에 음식 평론을 쓰기 시작했으며, 80년대 와인 등 전통음식을 촉진하는 모임인 아르시골라를 결성했다. 이 모임이 슬로푸드로 발전한다. 페트리니 등 이 모임의 주도자 13명은 맥도널드 반대 운동을 거치면서 87년 공동서명으로 ‘슬로푸드 선언’을 발표한다. 9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다리오 포도 공동서명자다. 89년 국제 슬로푸드 운동이 정식으로 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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