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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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었다. 드라이버를 세워두고 1시간씩 회장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동네 학예회가 아니라, 목숨을 건 자동차 경주인데 그렇다.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인 포뮬러원(F1)에서는 출발선에 차 세워 놓고 5분 이상 끌지 않는다. 정영조(48) 한국자동차경주협회 회장 겸 카보(KAVO) 대표는 10여년 전 한국 자동차 경주 현장에서 받은 충격을 이렇게 전했다.

척박한 한국의 모터스포츠 환경에서 F1은 언감생심이었다.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기업 현대기아차를 갖고 있지만 국내에 자체 팀조차 없다. 모터스포츠는 ‘폭주족 문화’라는 의구심도 남아 있다. 그러나 역발상도 가능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이민 시절 멜버른 F1을 접한 정 회장이 그랬다. “가족이 와서 즐기는 모습을 보고 이건 생활이고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문화보다는 훨씬 좋아 보였다.”

2006년 10월 그가 F1을 한국에 유치해 왔을 때 국내 반응은 반반이었다. 사람들은 긴가민가했다. 일부에서는 “계약이 안 됐는데 한다”라는 얘기도 나왔다. 2007년 전남 영암에 F1 경주장을 짓는 지반 다지기 공사가 시작됐고, 올해 4월 기공식이 열렸어도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지지난해 한 지역 방송국은 영국에 있는 포뮬러원매니지먼트(FOM)의 버니 에클레스턴 회장까지 찾아가 “F1을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이 맞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맞다”라는 답에, “아니 왜 한국에 줬느냐?”라고 물었단다. 에클레스턴 회장은 “한국에 주지 않았다. 정영조에게 주었다”고 했다.

언뜻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을 지킨 임경업 장군이 청나라 황제까지 감복시킨 기백으로 적지에서 살아왔지만, 결국 고국에 돌아와 죽임을 당한 역사가 떠오른다. 정 회장은 당시 “왜, 믿지 못할까? 왜, 우리는 F1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를 되물었다고 한다.

F1은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의 3대 스포츠로 꼽힌다. 한국은 월드컵과 올림픽을 연 나라 가운데 F1을 치르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F1의 총본부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이다. 그러나 F1의 모든 상업적 권리는 별도 기구인 FOM에 있다. 맥스 모즐리 국제자동차연맹 회장보다 영국의 30대 부호 안에 끼는 에클레스턴 FOM 회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F1 사업을 위해서는 현재의 F1 틀을 만든 에클레스턴 회장을 통해야 한다. 인맥과 친분, 로비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재력도 없고, 배경도 없는 정 회장이 F1을 유치한 것은 에클레스턴 회장과의 관계가 큰 힘이 됐다. 1998년 한국자동자경주협회 회장이 된 이래 에클레스턴 회장과는 절친한 사이를 유지한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정 같은 것이 있다”고 표현했다. 에클레스턴 회장 생일 때 포도주 등 자그마한 선물로 마음을 표시하고, 저녁식사에 초대하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면서 막역해졌다. 자가용 비행기로 한국 영공에 들어오는 순간 “조(정영조)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라는 무선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작은 감동이었을 것이다. 정 회장은 “에클레스턴 앞에서 솔직하게 나 자신을 드러냈고, 한국적인 정으로 접근했다. 그런 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연간 20조원의 자본이 움직이는 F1 비즈니스가 인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대회 운영 능력과 경험, 신뢰를 보여주지 않으면 치열한 유치권 확보 경쟁에서 밀린다. 정 회장은 1999년 국내 최초로 경남 창원에서 F3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를 유치했다. F1(배기량 2400㏄)보다는 낮은 F3(배기량 2000㏄급) 대회로 그해 F3 챔피언들을 모아 치르는 ‘슈퍼프리’ 형태였다. 창원 벨로드롬을 활용해 서킷을 만들었는데, 직접 현장 공사감독을 했다. 당시에도 기자들이 “진짜 하는 거냐”라고 묻기도 했다. 정 회장은 “마카우 F3 그랑프리 뒤 747 항공기 2대로 32대의 차량을 운반해오자 사람들이 그때서야 믿었다”며 웃었다. 5년간 대회를 치른 정 회장은 “1만·4만·7만원짜리 티켓이 팔릴까 밤잠을 설쳤지만 다 팔렸다. 한국 시장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그때 확신했다”고 했다. 4월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열린 서울 모터쇼에 100만명 가까운 관객이 찾은 것을 두고, 최소한 100만명의 수요층이 있다고 본다.


독일 기업 틸케가 설계한 13만여석의 2010 F1 코리아 그랑프리 영암 경주장은 최장 12년간 F1 대회를 유치한다. 전라남도와 신한은행, SK건설, 농협 등 7개 기업이 영암 그랑프리 운영주체인 카보의 주주다. 건축비(2200억원)와 대회 운영까지 총 4000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이다. 정 회장은 “주경기장 스탠드 곳곳에는 콘서트 공간이 들어가도록 배치했다. 서킷을 분할하기 쉽도록 해 대회 뒤 교통안전 행사나, 서킷 체험장으로 활용도를 높였다”고 했다. 틸케가 애초 제시한 설계비용도 팍 깎았다. 견적서에 850만유로를 제시하자 비행기 타고 에클레스턴 회장한테 날아가 에스오에스(SOS)를 쳤다. 다음날 틸케의 대표인 헤르만 틸케를 호출한 3자 대면에서 엄청나게 깎았다. 말레이시아(800만유로)나 아부다비(1200만유로)에 비하면 매우 낮다. 이런 식으로 개최권료 지불도 자린고비처럼 기름을 쫙 뺐다.

F1은 매머드 대회다. 중계용 방송장비만 항공기 7대 분량이 들어오고, 드라이버와 정비팀 등 팀 관계자는 통상 5000명이 된다. 외국의 팬 3만명의 입국이 예상된다. 인근 광주나 목포의 특급호텔 수는 조금 부족하다. 정 회장은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인심을 보여줄 수 있는 홈스테이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밥 더 먹으라고 손님 밥그릇에 물 부어버리는 남도의 정서를 “꼭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F1은 통상 3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간다. 그러나 정 회장은 “누가 얼마를 쓰고, 얼마를 벌었느냐는 식의 경제효과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문화 충격의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자극을 통해 자동차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는 벤츠를 몰고, 누구는 티코를 몬다는 식으로 자동차를 소유나 부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낮은 수준이다. 차는 우리의 삶과 떨어질 수 없다. 그런 차의 구조도 알고 직접 정비도 해보고, 또 속도의 욕구를 서킷이라는 제도권 공간에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현재 국내의 자동차 관련법으로는 개인이 머플러(소음기) 하나 교체할 수 없다. 자동차 선진국은 개인이 엔진도 개조하고 있다고 한다.

90년대만 해도 F1은 먼 나라 얘기였다. 그러나 2010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역사는 ‘또라이’라고 불린 사람들이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짐을 쌌고, 맨몸뚱이와 의지 하나로 유럽 모터스포츠 거물의 마음을 잡았다. 바위에 계란을 던지듯 극단적이고 고독한 싸움이었다. 이제 모든 게 끝났을까? 그는 “F1팀 한번 꼭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늘 꿈꾸는 사나이한테 안주는 없다.


비행기서 경주차까지 무한질주하는 사나이

“학사장교로 공군에 복무할 때 비행기 한 번 못 몰아봤다. 한번은 전투기에 올라탄 뒤 사병들한테 기체를 밧줄로 묶어 당기라고 했다. 그 심정을 이해하는가?”

정영조 회장의 본업은 민간 항공기 파일럿이다. 군에서 제대하고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으로 가족이민을 간 이유도 비행기를 타고 싶어서였다. 멜버른의 캐스트롤과 지에프에스(GFS) 항공학교를 거쳐 파일럿이 됐고, 이어 조종사 교관으로 일했다. 경비행기인 세스나172부터 보잉767까지 그가 갖고 있는 면허증은 40여개에 이른다. 교관 시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서 파견 나온 조종사를 교육시키면서 100여명 정도와 인맥을 만들었다. 버니 에클레스턴 FOM 회장이 방한할 때 관제탑을 통해 무선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은 이들의 힘 때문이다. 경비행기 구매자한테 직접 비행기를 몰고 배달해주는 페리(Ferri) 파일럿도 부업으로 했다. 양떼들이 풀을 뜯는 내륙의 목장에 내릴 때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낭만적 비행 장면이 부럽지 않았다”고 했다.

연예인 레이서 이세창과 한국자동차경주협회 대의원들의 요청으로 1998년 협회의 4대 회장 자리를 맡았다. 당시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만 신경 쓰면 된다”는 말에 솔깃했으나 “맡아 보니 일주일에 한 시간 짬 내기도 힘들 정도로 바빴다”고 했다. 그는 정·관계의 중요 인물을 만날 때도 청바지와 재킷, 넥타이 없는 와이셔츠를 입는다. 외국출장 때도 정장보다는 청바지를 챙긴다.

5·18 광주항쟁 때는 조선대 영문과 교수였던 아버지 고 정철인씨가 신군부에 의해 끌려가 투옥과 고문을 당한 아픈 가족사가 있다. 4년간 해직됐다가 복직한 아버지가 “줄줄 흐르는 물 먹이지, 썩은 물 먹이지 말라”고 한 교육철학을 간직하고 있다. 부인과 두 아들은 현재 멜버른에 있다. 한국에 F1팀이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대·기아차가 매년 수천억원씩 들이면 10년 내에 괜찮은 엔진을 만들 수 있다”며 “하지만 거액이 들어가는 팀 창단보다는 기존 팀 인수가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고 했다.

기사 원문, 기자 : 김창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