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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조선 세종 때 개발돼 압록강변 국경을 지키는 무기로 쓰였던 전통 화살 로켓 ‘신기전’(神機箭)이 다시 하늘을 날았다.

허환일 충남대 교수(항공우주공학) 연구팀은 지난 15일 세계 우주공학자들이 참석한 대전 국제우주대회(IAC)에서 길이 5.58m, 비행거리 1㎞로, 신기전 중 가장 큰 대신기전을 복원해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1993년 작은 규모의 소신기전(1.15m)과 중신기전(1.45m)을 복원했던 채연석 박사(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 원장)도 지난 17일 추진체에 해당하는 화약통의 구조를 다시 해석해 만든 새로운 중·소 신기전을 쏘아올렸다.

최근엔 ‘종이로 감싼 폭탄’을 싣고 날아가다 사방으로 흩어져 터지게 했다는 산화신기전(5.31m)도 복원 작업 중이어서 사료에 전해지는 ‘신기전 4형제’가 모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 로켓공학자들 오랜 복원 노력 옛 문헌 <병기도설>(1474)에 전해지는 신기전의 위력과 기술을 되살려 널리 알리는 일에는 채 박사의 공이 컸다. 1973년부터 신기전을 연구해온 그는 미국 유학 중인 1983년 국제우주대회에서 신기전의 설계도면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처음 알렸다. 그는 “옛 문헌엔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상세한 설계도가 남아 있다”며 “설계도가 전해지는 로켓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복원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했다. 채 박사는 1993년 대전 엑스포 개최를 기념해 중·소 신기전과 화차를 처음 복원해 크게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신기전>에 자문을 하기도 했다.

2007년 말부터 허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채 박사의 자문을 받아 가장 규모가 큰 대신기전 복원에 나섰다. 허 교수는 “설계도면을 보니 측량 단위를 촌, 푼과 더불어 리(0.31㎜)까지 썼는데, 이런 정밀도는 정말 놀라울 정도”라며 “요즘으로 치면 나노과학 수준”이라고 말했다.




■ ‘한지 화약통’이 추진체 로켓공학자들 한테 큰 관심을 끈 것은 현대 로켓의 추진체에 해당하는 ‘약통’(화약통)을 종이로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허 교수는 “종이 약통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자주 발견되지만 대신기전처럼 당대 최대 규모의 로켓 화약통을 종이로 만들었다는 점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매우 높은 연소 압력을 견디며 터지지 않아야 하는 약통을 종이로 만드는 일은 쉽잖았다.

연구팀은 여러 제조법으로 만든 갖가지 한지들을 대상으로 ‘인장력’을 측정했다. 여러 무형문화재들의 도움을 받아 약통 제조 기술까지 배웠다. 이들은 국산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롤러로 누르며 150~160겹이 되도록 둘둘 말아 두께 1.62㎝의 약통을 만들었다. 허 교수는 “외국 공학자들은 종이 약통이 왜 터지거나 타지 않는지 궁금해했는데, 이는 꽉 채운 화약이 다 타들어가기 전까지는 오히려 종이를 보호하는 구실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신기전은 노즐 없는 로켓” 추진 가스를 분사하는 ‘노즐’도 오래 애를 먹였다. 복원 작업을 벌인 로켓공학자들은 로켓이라면 당연히 분사구를 좁혀 분사 압력을 최대로 높이는 장치인 노즐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실험을 거쳐보니 ‘신기전은 노즐 없는 로켓’일 가능성이 더 커졌다.

노즐 없이 어떻게 5.58m나 되는 대신기전이 1㎞나 날아갈 수 있을까? 허 교수는 “추진 연료인 흑색화약을 종이 약통에 망치질로 단단히 채워넣고 원뿔형 구멍을 깊게 만들어 그 뾰족한 끝부분부터 타게 하면, 화약이 타들어가며 자연스레 빈 공간이 생긴다”며 “이 공간이 ‘자연 노즐’ 구실을 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복원 연구자들은 ‘완벽 복원’ ‘원형 재현’을 목표로 내걸지만, ‘노즐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해석이 뒤바뀌었듯이 문헌 사료만으론 ‘15세기 원형’을 그대로 되살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로켓공학자들은 왜 신기전 복원에 애를 쓸까? 국산 로켓 케이에스아르(KSR) 개발의 주역이기도 했던 채 박사는 “신기전의 설계도를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 작동하는 기능을 눈으로 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며 “복원사업은 조상의 탁월한 과학기술 능력과 재주를 실감하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