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108
‘낙타는 말했다’ 주연 맡은 연극 연출가 김낙형
“배우가 아니라 동네 사람 같대요. 어디서 주워왔나, 딱이다, 뭐 그런 반응이더라고요.”
영화 <낙타는 말했다>에 주연으로 출연한 연극 연출가 김낙형은 주변의 반응에 좀 서운했던 모양이다. “잘 나가다가 버럭 성질을 내고”, 툭하면 육두문자를 내뱉는 인간 말종이 딱 자기 모습이라니. “도대체 내가 (평소에) 어떻다는 거야, 나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혜화동 1번지 3기 동인 출신으로 <지상의 모든 밤들>(2005), <바람아래 빠빠빠>(2004), <별이 쏟아지다>(2002) 등의 창작 연극을 직접 쓰고 연출한 지식인이 <낙타는 말했다>의 일자무식한 주인공 주영광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독특한 외모 때문일 것이다. 깡마른 얼굴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 초점을 알 수 없지만 뭔가를 향해 끓어오르는 듯한 눈, 그리고 유행에 전혀 관심 없는 듯한 수수한 옷차림까지.
“촬영한 곳이 수원시 평동이거든요. 저는 나름대로 도회스럽게 한다고 했는데, 영화 나온 거 보니까 완전 촌놈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부제를 달았죠. 농촌 활극이라고.”
감옥에서 막 출소해 고향으로 돌아온 주영광은 딸 하나 달린 과부를 얻어 같이 살면서 재개발이 예정된 땅을 사는 등 삶의 의지를 불태우지만 뭐 하나 생각대로 되는 게 없다. 급기야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과 재개발이 물 건너갔다는 소식이 들리자 폭발할 지경에 이른다.
“겉으로는 시류에 편승하는데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얘기죠. 돈 번다고 하면 우르르 몰리는 게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형, 동생 하며 지내던 조규장 감독이 “형이 아니면 안 된다”며 보여준 시나리오를 읽고 재미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출연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극단76에 배우로 입단했지만 연기는 진작에 접은 터였다. 1997년 연극 <지피족>에 갑자기 대타로 출연했다가 무대에서 쓰러져 공황 증세를 겪으며 1년 동안 집에서 쉰 이후 그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한 번도 안 해 본 영화라니. 거절의 뜻으로 “100만원 주면 할게”라고 했다가 덜컥 “바로 입금할게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연극계에서 개런티 100만원은 엄청난 거액인데, 역시 영화계는 달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배우를 못 알아보는 것은 독립영화 쪽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 한잔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어요.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왔는데, 한 30분 지나니까 이러는 거예요. ‘아 근디 배우는 언제 오는겨?’ 하하하. 주연 배우 3명이 다 와 있는데요.”
연극 연출가로서 그는 지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 대학로 최고의 흥행 연극 중 하나인 <민들레 바람되어>를 연출했고, 오는 12월 1일부터 공연하는 <에쿠우스>의 협력연출도 맡았다. 그가 연출한 <맥베드>는 지난해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을 받은 데 이어, 최근 이집트에서 열린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의자 하나로 모든 소품을 표현해 내는 신체연극인데 원작의 긴박함과 처절함을 잘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상을 받은 기념으로 오는 29일까지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맥베드>를 공연한다.
“연극이라는 공간예술의 특성을 이제야 깨달아가는 것 같아요. 최근 4년 동안 창작극을 전혀 못 썼는데 내년에는 깊이 있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해 보고 싶어요. 영화요? 재미있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열연해야죠. 허허허.”
12일 독립영화전용관(옛 명동 중앙극장) 개봉.
파리아스 아시아 정복 ‘아름다운 축구’의 힘
“보면 아름답고, 결과를 내는 축구. 쉽게 말하자면 그것이 내 축구철학이다.”
지난 7일 저녁 200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일본 도쿄국립경기장 프레스룸. ‘K리그 천적’으로 악명 높던 알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를 2-1로 누르고 취임 5년 만에 포항 스틸러스를 ‘아시아 클럽축구 정상’에 올려놓은 세르지오 파리아스(42) 감독은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를 이렇게 요약했다.
브라질 출신인 그가 2005년 38살의 나이로 포항 지휘봉을 잡았을 때, 과연 ‘남미 출신이 한국 프로축구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아스는 그동안 숱한 ‘매직’을 발휘했고, 마침내 아시아 최고봉에 섰다. 파리아스는 늘 선수들에게 박진감 넘치는 공격축구를 주문했고, 그의 축구철학은 ‘스틸러스 웨이’나 ‘파리아스 웨이’로 이름 붙여졌다.
■ ★ 4개 취임 뒤 2년은 파리아스 감독에게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하지만 이후 뛰어난 지도력과 용병술을 발휘해 2007년 K리그 정규리그 정상에 오르며 성공시대를 예고했다. 당시 리그 5위로 밀렸으나 6강 플레이오프에서 5연승 파죽지세로 포항을 1992년 이후 15년 만에 챔피언에 올려놓았다. 그건 ‘파리아스 매직’의 신호탄이었을 뿐이다. 2008년 축구협회(FA)컵, 올해 리그컵(피스컵 코리아) 우승, 그리고 이번 우승까지 더해 4개의 별을 달게 됐다. 포항 관계자는 파리아스에 대해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며, 축구와 가정밖에 모르는 열정적 지도자”라고 했다.
■ 매직의 실체는? 신연호 <에스비에스(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현대 축구에서 감독의 비중은 절대적”이라며 “파리아스가 화려한 스타 없이 그렇게 성적을 내는 것은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내 지도자들이 누구나 공격축구를 외치지만 실체가 없다”며 “파리아스식 공격축구는, 상대로부터 공을 빼앗았을 때 공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경기 속도를 높여 상대 문전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대회 최우수선수에 오른 노병준은 “파리아스 매직은 집중력”이라고 했다. “선수가 경기장에서 뛰고 있을 때 착각하기 쉬운데, 감독님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그때그때 정확히 지적해준다. 경기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앙수비 김형일은 “감독님은 상대팀 분석을 잘하고, 우리의 장단점을 잘 얘기해준다. 경기장에서는 카리스마가 확실하지만, 밖에서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 야망 이번 우승으로 포항은 12월9일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2009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나갈 수 있게 됐다. FC바르셀로나 등 대륙 챔피언들이 출전하는 대회. 이에 대해 파리아스는 “아주 큰 꿈이었는데 이루게 돼 기쁘다”면서도 “높은 수준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이 자리에서는 그냥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말하겠다”고 했다.
시즌 3관왕 의지도 강하게 드러냈다. 21일 시작되는 2009 K리그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겠다는 것. 정규리그 2위여서 가능성도 높다. 내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에 대한 야망도 다시 한 번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월드컵에 관해 말하자면 언젠가 (한국) 감독으로 출전하고 싶다. 모국(브라질)에서 개최되는 (2014년) 월드컵을 말한다.” 지난 8월 2년 재계약에 성공한 파리아스. 그의 매직은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