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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

온 국민이 올림픽 열기에 젖어있던 1988년, 경기도 구리시의 한 섬유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백여명이 신체마비 등의 증상을 앓아왔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원진레이온’ 사건은 당시 평범한 의대생이었던 임상혁(45·사진)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의 삶을 바꿔놓았다.

대학 시절 가정의학을 전공한 임 소장은 구리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진료 봉사 활동을 펼치다 원진레이온 피해자들과 만나게 됐다.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마치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을 지었어요. 대단히 충격적이었죠.” 그들과의 첫만남을 그는 이렇게 기억했다.


임 소장은 그들의 딱한 사정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 연구단체가 하는 피해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대학 졸업 뒤 노동·종교단체들이 세운 구로의원에서 일하면서도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을 계속 진료하던 그는 97년 병원을 그만두고 2년간 다시 공부해 아예 산업의학전문의 자격을 땄다.

그 사이 원진레이온 공장은 폐쇄되고 정부는 그 터를 팔아버렸다. 피해자들은 정부로부터 매각대금의 일부를 보상비로 받아 99년 구리시에 원진 피해노동자들을 위한 녹색병원을 지었다.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들이 다시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노동환경건강연구소도 만들었다.

임 소장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영세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나 산업재해 통계 연구에 매진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지하철의 석면 실태도 고발했으며, 2007년 미 공군 사격장 소음에 시달렸던 매향리 주민들의 정신건강 조사를 벌여, 매향리 주민들의 자살률이 일반인들보다 3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최근엔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앉아서 일할 권리를 주자는 캠페인을 기획했다. 이 운동은 많은 사회·인권단체들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그 결과 일부 대형마트, 백화점 계산대에 의자가 설치되기도 했다.

연구소는 지난 7월 민주노총·한국노총 및 환경·보건의료단체들과 함께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를 만들어 주요 발암물질의 제조와 유통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내년 2월께 그 결과를 발표하며 새롭게 발암물질로 지정해야할 물질들을 알릴 계획이다.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는 노동자들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더라. 대중적인 사회운동이 필요한 것 같다.”


그는 “아직도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 산재 비율은 5배 이상 높다”며 “노동환경이 옛날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노동환경 또한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3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설립 10돌 기념 행사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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