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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록의 대부’ 신중현

기사 원문 ; 헌정 받은 ‘펜더’기타 공연으로 보답”


칠순을 넘긴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72)은 21일 오후 인터뷰 장소에 4륜구동 지프차를 몰고 나타났다. 거친 길을 달리고 또 달려 낡을 대로 낡았을지언정 카랑카랑한 힘이 여전한 지프차는 주인을 닮은 듯했다.

“제가 좀 늦었죠? 미안합니다. 인터넷 작업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그는 요즘 경기 용인의 한적한 시골 마을 집에서 자신의 노래와 공연 동영상, 음악 강연 등을 누리집에 올리며 반세기에 걸친 음악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을 잘 다루느냐고 묻자 “1980년대 초부터 8비트 컴퓨터로 음악 작업을 했고, 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음악을 올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벨소리가 울려 전화를 받는데, 아이폰이다. 그는 “나오자마자 산 건데, 컴퓨터에 있는 내 음악을 넣고 다니며 들을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요새 괜히 바빠요. 혼자 가만히 있는 것도 건강에 안 좋고 하니 소일거리 만드는 거죠. 늙으니 하루하루 용기를 내어 살아요. 근데 제가 하는 일이 좀 복잡한 일이라 머리도 아프고, 머리를 고차원으로 움직이다 보니 녹슬지 않는 것도 같고….”

2006년 은퇴 공연 뒤로 두문불출한 지 어느덧 4년째다. “상업적인 댄스 음악만 넘쳐나고 록 음악이 설 자리가 없어졌어요. 음악성이 사라진 거죠. 무대도 없고 관객도 없고. 젊을 때는 패기와 열정으로 덤볐는데, 나이가 드니 심적으로 위축됐어요. 에이, 마지막으로 공연이나 제대로 한번 하고 그만두자, 했던 거죠.”

요즘 가요계에 대한 시름은 더 깊어졌다.

“우리 가요계는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어요. 음악성보다 상업성을 내세운 쇼 위주죠. 외국 음악의 겉만 받아들여 깊이가 없어요. 표절도 잦고요. 비슷비슷한 멜로디에 가사만 바뀌는 것 같다니까요. 창법도 비성·가성만 쓸 줄 알지 진심을 담아내지 못해요. 방송이 이런 음악만 줄곧 내보내니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게 음악인가 보다 하는 거죠.”

절망하던 그를 토닥인 건 평생의 동반자인 기타였다. 지난해 말 세계적인 기타 회사인 펜더는 신중현의 이름을 새긴 맞춤 기타를 그에게 헌정했다.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스티비 레이 본, 잉베이 말름스틴, 에디 밴 헤일런 등 앞서 헌정 기타를 받은 5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기타 같아요. 펜더 기타는 주면 주는 대로 받아주는 솔직한 악기예요.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잘 치면 잘 치는 대로 무한대로 받아주죠. 개성이 없는 게 개성이랄까? 특히 이 헌정 기타는 기가 막혀요. 지금껏 펜더 기타만 20대 이상 쳤는데, 이 기타를 쳐보니 이전 것들은 기타도 아니더라,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니까요. 허허~”

명기는 그를 다시 세상으로 이끌어냈다.

“아, 글쎄, 이런 명기를 벽에만 걸어놓고 보려니 너무 아까운 거예요. 이걸 받은 것도 다 대중이 보내준 성원 덕인데, 뭔가 보답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도 싶고. 고심 끝에 기타를 들고 나가 감사 인사도 하고 소리도 들려드리는 게 최소한의 도리겠다 싶어 공연을 결심했어요.”

그는 오는 26~27일 제주 문예회관을 시작으로 7월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7월24일 포항 경북학생문화회관 등을 도는 전국 투어를 준비중이다. 역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두 아들 대철(시나위)과 윤철(서울전자음악단)도 함께 무대에 오른다. 드러머인 셋째 아들 석철(서울전자음악단)도 참여하려 했으나 방송 활동으로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다들 바빠서 연습을 많이는 못하고 있지만, 두 아들이 제 음악을 잘 알아서 말 한마디만 해도 척척 손발이 맞아요. 자식들 보면 걱정이 앞서죠. 그래도 아들들이 음악을 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요즘 같은 시절에 음악만 하며 생활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걸 보면 고맙기도 하고요. 언젠가는 잘 되겠지 하는 희망을 품어보는 거죠.”

그의 음반이 뒤늦게 미국에 진출하게 됐다는 희소식도 힘을 북돋운다. 펜더 기타를 헌정받은 걸 눈여겨본 미국 음반사 ‘라이트 인 디 애틱 레코드’가 그의 음반 두 종류를 오는 10월 발매하기로 한 것이다. 하나는 시디 두 장에 히트곡을 담은 편집 음반이고, 또 하나는 그가 작곡·연주를 도맡고 여가수 김정미가 노래한 1973년작 <나우>다.

“미국 음반사에서 제 음악을 다 들어보더니 <나우>를 꼭 내고 싶다는 거예요. 사이키델릭 음악을 한 앨범인데, 제 딴엔 음악적 욕심을 낸 야심작이죠. 하지만 당시엔 반응이 썰렁했어요. 세상이 알아주질 않는구나 싶어 혼자 외로웠는데, 이번에 인정받은 것 같아 어깨를 펴게 됐어요. 이 음반들이 잘 알려져서 이참에 미국에서 공연도 하게 된다면 여한이 없겠지만, 칠순이 넘었으니 상상만 하는 거죠.”

나이가 전혀 안 느껴진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기타를 쳐서 그런가 봐요. 음악이란 게 그래서 좋아요”라며 소년처럼 웃었다.

요즘은 기타로 몸 상태를 측정해요. 소리가 잘 안 나면 죽음이 다가오는구나 하고, 소리가 잘 나면 쌩쌩하게 살아있구나 하는 거죠. 사실 최근 들어 기타 주법을 바꿨어요. 젊을 때는 힘으로 신나게 쳤는데, 나이 들고 힘이 빠지니 소리가 점차 죽어가는 거예요. 그때 문득 깨달음이 왔어요. ‘자연의 힘을 빌리자. 그러면 무한대의 힘이 나올 것이다.’ 예전부터 노장사상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분들이 설파한 ‘도’로 기타를 치는 겁니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치는 주법을 계속 연마하다 보면 언젠가는 경지에 이르지 않겠느냐”며 “덩치가 크고 힘이 넘치는 서양 사람들에게 체구는 작지만 무한의 경지에 이르는 동양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문득 ‘불멸의 기타리스트’라는 칭호를 떠올렸다. 꿈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는 영원히 늙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을 닮은 지프차에 시동을 걸었다. 카랑카랑한 엔진이 힘차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