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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 한겨레신문 11월 10일
“세상은 비극으로 차고 넘치지만 그것을 반드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청소년에게 있는가. 조금은 코믹하게 비틀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더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이 소설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사실 네 상황은 비극적이지만은 않아. 봐, 웃기잖아?’”
27살, 장편 청소년소설 <번데기 프로젝트>로 비룡소출판사의 청소년문학상 ‘블루픽션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제미(사진)씨. 책 말미에 붙인 ‘작가의 말’은 이 신예작가의 ‘당돌한’ 작품관을 엿보게 해준다. 9일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네댓 번쯤은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미’라는 필명 역시 ‘재미’라는 말의 변용이라고 했다.
<번데기 프로젝트>는 소설 쓰기에 관한 소설이다. 부모가 운영하는 허름한 삼겹살집 일을 돕느라 시간을 쪼개가며 바득바득 소설을 쓰던 고교 2년생 여자아이 정수선이 문학담당 선생(허무식)의 지도로 청소년문학 공모에 도전한다. 방과후는 물론 주말에도 매일같이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열여덟 살 소녀는 소설 쓸 시간을 짜낼 노하우를 얻고자 가입한 동호회에서 ‘치타’라는 남자를 만나는데, 그의 꿈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써서 1억원 상금이 걸린 청소년문학 공모전에 당선한다. 주인공을 모종의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그 남자의 꿈 이야기는 책의 말미에서 그 남자 자신도 몰랐던, 그 남자가 저지른 ‘살인의 기억’임이 드러난다.
이씨는 주인공 정수선처럼 고교 시절 문학 공모에서 상을 받아 문예특기자로 대학(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졸업한 뒤 5년 동안 ‘반 백수’인 불완전 고용상태로 보낸 건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짧게는 석 달, 길게는 1년 반까지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하며 소설을 썼다. 주인공이 호시탐탐 식당일을 게을리할라 감시하는 아버지의 눈초리를 피해 화장실에서도 쓰고, 수업시간에도 썼듯이, 하루에 원고지 100매씩을 메우는 강행군의 소산이 <번데기 프로젝트>다.
“왜 소설을 쓰냐고요? 재미있으니까요. 현실은 만족스럽지 않잖아요. 소설을 쓰지 않는 현실은 재미없어요. 글을 쓰지 않으면 우울해져요. 내겐 이야기가 필요해요.”
이씨는 현재 어느 회사에서 안내데스크 일을 하는 직장인이다. 들고나는 사람들의 신분증을 받아 신원을 확인하는 일을 하는 짬짬이, 퇴근 뒤엔 회사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쓴다고 했다. 중학생 때부터 소설을 썼으니, 습작 목록이 길다랗다. 장편소설 여덟 편, 짤막한 것까지 합치면 단편은 150편이 넘는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듯 ‘시궁창 같은’ 일상을 날려버리며 당당하게 소설 공모에 당선한 주인공 정수선, 바로 작가 이씨의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