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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조선 후기 궁벽한 산골마을에 서 자명종 소리가 울렸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살던 실학자 규남 하백원(1781~1845)이 사랑방에 걸어둔 자명종이었다. 그는 같은 마을에 살던 과학자 나경적(1690~1762)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던 실학자였다. 자명종을 직접 제작했던 나경적도 야사리로 찾아온 조선 후기 대표적 과학사상가 홍대용(1731~1783)을 만나 전남 나주에서 ‘혼천의’를 함께 제작했던 발명가였다.


“바로 이곳이 규남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입니다. 저쪽 은행나무 옆엔 서당이 있었지요.”

하백원의 6대손 하상래(65·광주 광산구)씨가 최근 폐교가 된 동면중학교 이서분교 바로 인근에 있는 규남 생가 터를 안내하며 이렇게 말했다. 생가 터에선 하연호(88)씨가 새로 한옥을 짓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상래씨는 “40여년 전 고향을 떠난 뒤, 먹고사는 일에 바빠 할아버지 생가 터를 보존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앞으로 많은 분들이 야사마을을 찾아와 당대 실학자들의 고민을 회고하며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곧 이서분교 건너 하백원기념관 옆 한옥으로 귀향할 생각이다.

하백원기념관에는 서양식 자동양수기라 할 ‘자승차’(自升車)의 모형이 있다. 하백원이 남긴 설계도에 바탕한 것이다. 터빈의 회전력으로 피스톤을 돌리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중국의 수차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전라감사였던 서유구(1764~1845)는 1834년 가뭄이 극심하자 하백원에게 이 기계의 제작을 의뢰하는 편지를 보냈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엔 하백원의 자승차도해를 기초로 복원된 자승차가 전시돼 있다.

하백원의 <동국지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51년이나 앞선 것으로 전남도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 지도는 오는 28일까지 화순 하니움센터에서 열리는 화순 출신 문인 시·서화전에서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실학자 후손과 마을 사람들이 야사마을을 실학 콘텐츠를 활용한 문화마을로 되살리고 있다. 60여가구 가운데 17가구는 전남도의 ‘행복마을 프로젝트’ 지원으로 지난해 4월 한옥을 짓기 시작해 곧 마무리한다. 이장 이승준(55)씨는 “실학 마을이라는 점이 마을을 활성화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며 “한옥 민박을 운영하고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순군도 내년에 옛 이서분교 터를 실학 문화체험 공간으로 리모델링할 방침이다. 안동교 조선대 한국학자료센터 전임연구원은 “야사마을은 나경적과 하백원 등이 천문과학기구를 제작해 실생활에 활용했던 ‘이용후생’ 학풍을 이어갔던 실학의 산실”이라고 말했다.

화순/글·사진 정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