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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립학교 발도로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 앨토스에 있는 발도르프 초등학교 5학년인 앤디 이글은 요즘 뜨개질에 한창 빠져있다. 이번 학기 뜨개질 수업의 숙제는 양말 만들기다. 앤디가 다니는 이 학교는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위치해 학부모들의 4분의 3이 구글, 애플, 야후, 이베이, 휼릿패커드 등 정보통신(IT) 기업에 다니는데, 정작 학교엔 컴퓨터가 한 대도 없다. 스크린보드, 빔 프로젝트 등 디지털 기기도 없다. 사립학교인 이 학교는 연간 수업료가 초·중학교는 1만7750달러(2015만원), 고등학교는 2만4400달러(2770만원)에 이르지만, 컴퓨터 구입에는 전혀 돈을 쓰지 않는다. 학교에는 책, 연필, 분필 등 아날로그 교육 기자재만 있고, 교실 한켠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꽂혀있다.

<뉴욕타임스>가 23일 소개한 사립학교인 발도르프 학교는 창의적 사고, 인간 교류, 주의력 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컴퓨터를 구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휴대폰, 아이패드, 노트북 등 다른 디지털 기기도 못 가져오게 한다. 대부분 미국 학교들이 컴퓨터를 한 대라도 더 구입해 교실을 디지털화하려는 기조와는 정반대다.

앤디의 아버지 앨런은 구글 직원이다. 그는 “아이패드가 산수, 읽기 등을 더 잘 가르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테크놀로지는 그 시간과 장소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지만, 앤디는 요즘 아이답지 않게 컴퓨터에서 구글 검색도 할 줄 모른다. 이 학교는 이런 교육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각에 대해 발도르프 고등학교 졸업자의 94%가 UC버클리 등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 학교의 ‘디지털 제로’ 학습방침은 교육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학교의 방침을 적극 지지하는 학자가 있는 반면,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기기 사용이 학습효과를 높이고 학습 주의력을 끌어올린다는 반론을 편다. 또 이 학교의 높은 명문대 진학률은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소득 덕으로 아날로그 교육방식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 “이 학교 학생들의 학부모는 대체로 고학력에 자유주의적 성향이며, 또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접하려 할 때, 전문가 수준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 근무하면서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피에르 로렌트(50)는 “어릴 때 컴퓨터를 안 배우면 디지털 시대에 뒤진다고 하는데, 컴퓨터를 다루는 건 치약을 짜는 것만큼 쉬운 일”이라며 “아이들이 좀더 큰 뒤에 컴퓨터에 익숙해지는 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