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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농법으로 ‘오메가3’ 쌀 수확하는 홍순영씨

서른아홉살 때였다. 1997년 여름 논에 농약을 친 뒤 쓰러졌다. 온몸이 가렵고 피부가 하얗게 변해갔다. 농약 중독이었다. 지리산 농부 홍순영(53·사진·전남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씨가 무농약 농사법을 배우러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는 현미식초 농사법, 우렁이 친환경 농법 등 무엇이든 배우고 실험했다. “한번은 큰 플라스틱통에다 바닷물을 담아 싣고와 논바닥에 붓기도 했어요.”(웃음) 농약을 뿌리지 않아 논엔 풀이 수북했고, 쌀 수확량도 농약을 쓰는 관행농법의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주변에선 ‘미친 놈’이라고 수근거렸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홍씨는 2000년 ‘환원 순환농법’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에서 나온 것을 자연으로 돌리는 농법이었다. 그는 경남 진주에서 ‘탄화기’를 구입해 농장에 설치 했다. 이 기계에다 주변 산과 들에 지천으로 깔린 잡초와 식물들을 베어 잘라넣은 뒤 고열로 태워 나오는 연기를 액체로 추출했다. 쇠비름·자리공·소리쟁이 등 80여 가지의 식물 제제를 만들었다. 문고병이나 벼멸구 등 병충해가 올 때가 되면 그에 적합한 제제를 뿌렸다. 들깨와 비슷하게 생긴 레드 퍼릴라(적자소)가 밥맛을 햅쌀처럼 유지시켜준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됐다. 환삼덩굴·산죽·담배나무액은 선충을 잡는 데 탁월했다.

그는 무엇보다 땅 기운을 살리는 데 열정을 쏟았다. “모든 병충해는 토양에서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퇴비에 주목했다. 맨밥을 인근 산에다 놓아둬 토착 미생물이 붙게 한 다음 흙설탕과 배합해 배양한 액을, 쌀겨와 밀기울 더미에다 뿌려 ‘발효 퇴비’를 만들었다. 퇴비 속 미생물은 땅 속을 파고들어가 재생산된다. 그는 “땅에 좋은 퇴비를 뿌리면 땅이 숨을 쉰다”고 말했다.

홍씨는 2007년께부터 무농약 농사에 확신을 가졌다. 벼논 9㏊(3만평)에서 생산한 쌀을 소비자 300여명에게 직거래로 팔기 시작했는데 밥맛에 반한 사람들이 입소문을 낸 덕분에 주문이 늘어났다. 요즘엔 홈페이지 ‘순영농장’(ecosoon.com) 으로도 주문을 받는다.

지난 5월 한국식품연구원에서 지난해 수확한 쌀 100g의 시료에서 오메가-3가 1.3㎎이 들어 있다는 결과를 받고 누구보다 그 자신이 깜짝 놀랐다. 그래서 올해 주변 4개 농가와 공동으로 벼논 7곳 20㏊(6만500평)에서 순환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구례군 농업기술센터는 지난 7일 홍씨 등 7곳의 논에서 생산한 쌀 시료 100g씩을 각각 한국식품연구원에 의뢰해 성분을 분석한 결과, 오메가-3(리놀렌산) 성분이 5.4~9.1㎎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메가-3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 지방산이다.

홍씨는 “그동안 땅에 투여했던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은 것 같아 기쁘다”라고 말했다. 9남매 가운데 여덟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7살부터 고향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다가 서른살 무렵부터 줄곧 땅에서 살아왔다. 구례농협은 홍씨 등 5명이 수확한 쌀을 수매가보다 2~3배 높게 사겠다고 제안한 상태다. 그는 “내년엔 공동 단지를 50㏊로 늘려 유기농 쌀 농사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5녀1남 자녀 가운데 외동아들 기표(23)씨는 올 2월 한국농업대 과수학과를 졸업한 뒤 아버지의 땅에서 함께 일하는 농부가 됐다. 홍씨는 “아들 놈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며 대견한 듯 씩 웃었다.



바리스타 챔피언 엘살바도르 출신 알레한드로 멘데스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만큼 달콤하다.’ 아프리카의 커피가 유럽으로 건너가던 나들목, 터키 이스탄불에는 이런 속담이 전해져온다. 그러나 지금의 커피는 생산지인 남미·아프리카와 소비국인 미국·유럽 사이의 빈부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산업의 아이콘이다. 100여년 전 아시아의 차(茶)가 그랬듯이, 좋은 커피를 일구는 사람들은 정작 커피를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이런 커피 문화의 공식은 서서히 깨지고 있다. 그 한 증거가 지난 6월 열린 ‘2011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이었다. 전세계 바리스타(커피 제조 전문가)들의 올림픽으로 꼽히는 이 대회에서 올해 사상 처음 주요 커피 생산국인 남미 엘살바도르 출신자가 1위에 올랐다. 그동안 미국·유럽 출신들이 1위를 휩쓸어온 전통을 깬 것이다. 그 주인공은 알레한드로 멘데스(24·사진). 지난 21일 그는 한국 강연을 위해 3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왔다. 곧장 대구의 커피명가를 찾은 그를 <한겨레>가 만나봤다.

“대학에서는 영어·프랑스어를 배웠죠. 나중에 사업을 하려 했거든요. 그러다 집안이 어려워져 공부도 그만두고 레스토랑에 취직했죠.” 멘데스는 4년 전까지만 해도 이 나라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그저 축구에 열광하며, 일거리를 찾던 대학 자퇴생이었다. 뭔가 특별한 일을 찾던 그가 바리스타의 세계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엘살바도르는 ‘해먹의 계곡’이라 부를 정도로 화산 활동에 따라 생긴 해먹 모양의 고산 지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 커피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지녔다. 엘살바도르에는 5개의 큰 커피 재배 지역이 있는데, 그는 이 가운데 한곳인 산살바도르 출신이다.

“시내 쇼핑센터에서 친구가 일하는 커피숍에 갔다가,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얘기를 듣고 이력서를 낸 게 시작이었죠.”


그곳은 바리스타 교육도 함께 하는 커피업체 ‘비바 에스프레소’(Viva Espresso). 그곳에서 만난 바리스타 스승인 페데리코 볼라노스의 첫마디는 이랬다. “챔피언이 될 수 있어!”


4년 동안 매일 커피콩 고르기와 커피 내리기 등 빡빡한 훈련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에스프레소 맛이 다 같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배우다 보니, 만드는 방법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어려움이 시작됐죠.”

더블유비시 대회에서도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단다. “모든 커피의 기본이 에스프레소잖아요. 맛에 대한 평가 점수가 높아 커피콩부터 기계 다루기, 물의 양까지 따져야 할 게 너무나 많았죠.”


올해 대회에서도 어김없이 유럽·미국 출신이 우승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당시 심판관들은 그가 만든 커피의 새로운 맛에 높은 점수를 줬다. 기존 유럽·미국 바리스타들이 만드는 스타일의 전형적인 커피맛과 달랐던 그의 커피는 2위보다 무려 50점을 더 받았다. 특히 인접한 니카라과의 커피콩을 매일 연구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맛을 뽑아낸 에스프레소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회는 운동 경기처럼 긴장되기보다는 축제 같은 분위기예요. 그들이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할지는 커피를 내리기 전에는 모르죠.”

지난해 처음 출전해 본선 11위에 그쳤지만, 심기일전해 올해는 우승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커피를 만들고, 커피콩과 가깝게 살기 때문에 커피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세계 최고의 바리스타에 오른 덕에 엘살바도르에서 그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의 사진이 내걸린 시내의 카페에서 낮에는 커피콩을 볶는 로스팅을 하고, 저녁에는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려 준다. 니카라과만 오갔던 그가 이제는 브라질·러시아·스페인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커피 강연을 펼치고 있다.

세계적인 바리스타를 배출했다는 자부심 덕분에 엘살바도르 커피 시장도 변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 런던에만 내다 팔던 상위 1% 품질의 엘살바도르산 ‘스페셜티 커피’를 본국에서도 구할 수 있게 됐다. 제대로 훈련받은 바리스타가 적은 엘살바도르에서 양질의 커피를 보급하는 바리스타가 늘면 커피 시장의 불균형도 바로잡힐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에게 커피는 어떤 의미일까? 미소를 지으며 멘데스가 답한다.

“커피요? 저한테는 보물 같은 존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