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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괴담 사회

최근 온라인에 화제의 글이 떠돌았다. 일곱살짜리 김민석의 글씨로 민석이 물었다. “내가 엄마 말 잘 들어야 엄마 오래 살아?” 엄마가 “그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민석은 “그러면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라고 답했고, 놀란 엄마가 “왜?”라고 물으니, 민석은 “엄마 말 잘 들으려면 엄마 하라는 대로 해야 되는데 밥 먹으라면 밥 먹어야 되고 공부하라면 공부해야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해야 되는데 그러면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얼핏 보면 귀여운 글이지만 무서운 이야기이다. 회식 자리에서 회자되는 ‘강남 괴담’은 꽤 무서운 버전이다. 고등학생 아들이 엄마를 부르기에 나가보니까 아들이 본드를 발라놓은 벽으로 엄마를 밀어서 엄마가 벽에 붙어버렸다고 한다. 아들은 벽에 붙은 엄마를 보고 비식 웃었고, 엄마는 얼굴이 망가진 채 병원에 가서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받아야 했다는 끔찍한 이야기이다.

괴담은 현실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입에 담기에도 거북한 괴담이 나도는 사회는 문제적 사회이며, 그 경고를 무시한 채 현실을 방치하면 괴담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지난주에 고3 수험생이 공부를 강요하는 모친을 살해한 사건이 알려져서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그는 시신을 어머니 방에 그대로 둔 채 8개월을 아무 일 없었던 듯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고 수능시험까지 치렀다고 한다. 언론은 어머니의 완벽주의와 성적에 대한 집착, 충동 조절 못하는 요즘 아이들의 성향, 순탄하지 않은 부부관계, 자녀의 가능성을 보지 않고 오직 성적에만 집착하는 현상을 이야기했고, 공부에서 밀려나면 끝장이라는 일반적 인식, 부모 자식 간의 소통 부재, 그리고 패자부활전이 없는 무한경쟁 사회를 탓했다. 그런데 이 정도 이야기로 이 사건이 납득이 되는가?

범행을 한 지군은 자기가 잘되라고 그랬던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며, 아빠까지 자기를 버릴까 봐 두려워 말을 못했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수차례 했지만 뻔뻔하게 살아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지군의 고모는 지군이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는데” 순간적으로 “엄마가 없어야 내가 산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정말 엄마를 죽였고 엄마가 죽었다는 것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엄마가 죽은 것이 아니라 옆방에 간섭하지 않고 조용히 계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모자 외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소년은 삶도 죽음도 초월한 어떤 시공간에서 살고 있었던 것 아닐까?

열여덟살이 된 소년이 쉽게 가출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곳은 정상사회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부모 외에도 도움을 받을 친척과 이웃과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핵가족이 육아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맡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학교 무상급식 제도를 열렬하게 지지한 것도 실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푸짐하게 한끼 밥을 먹을 수 있고 부모와 반목하더라도 자신이 살아갈 환대의 장소가 있음을 일러주기 위함이었다. 이 사건은 원초적 가족관계를 성숙시켜낼 여타의 관계와 제도가 철저하게 붕괴한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모자관계는 자폐적이거나 도구적 관계로 변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유일한 아군인 엄마와 단둘이 참담한 전쟁을 치르다가 일어난 이 사건은 합리로 풀어낼 선을 넘어버린 광기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인 것이다.

이런 극단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 선조들은 굿을 하고 살풀이를 하고 위령제를 지냈다. 정성을 모아 기도를 하고 신탁을 기다렸다. 공동체 전체가 참회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인간다운 질서를 찾아가는 성찰과 결단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대통령과 교육감과 교장과 교사, 대학 총장과 교수와 사교육계 종사자들, 세상의 모든 부모된 사람들이 모여 이 사건을 두고 모성 회복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야 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감각을 회복하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때 괴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기사 원문(조한혜정 교수)


‘땅콩집’ 만들어 단독주택의 고정관념 깬 건축가 이현욱

와, 땅콩집이네요. 우선 땅콩집 자랑 좀 먼저 해주세요.

처음 구상할 때는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어요. 어느날 친구가 제게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데 돈도 없고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서는 아이에게 창의력을 길러줄 수 없다, 그런데 단독주택으로 가자니 비싼데다가 관리도 어렵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는 거죠. 이 문제만 풀면 이사갈 텐데, 하길래 내가 건축가니 한번 풀어보겠다고 했어요. 이 문제를 풀면 단독주택 시장이 바뀌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뒤 사람들을 만나면서 물어보니 다들 아파트가 좋아서 사는 것이 아니고 대안이 없었던 거더라고요. 그러니까 캠핑 가고 펜션 놀러 가고 그러면서 풀었던 거예요. 아파트 살면서 단독주택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다리를 놓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어떻게 문제를 푸셨나요?

이현욱 전셋돈 끌어모아 단독주택을 짓자니 한 가구당 3억원이 넘으면 부담스럽겠더라고요. 게다가 전셋돈 빼서 자금을 써야 하니 집 짓는 데 오래 걸려도 안 돼요. 한 달 안에 지을 수 있는 목조 건물을 선택했죠. 땅값 부담을 줄이려고 두 가구가 공동으로 땅을 사서 두 개의 건물을 맞붙인 형태로 집을 지었어요. 친구네 집 하나, 우리 집 하나였죠. 창문 크기를 줄이고 단열효과를 높였죠. 마당이 있으면서도 공간 활용이 효율적인 단독주택이 탄생했고 이후 친구의 조언에 따라 노하우를 공개하기 위해 <두 남자의 집 짓기>라는 책도 출간했어요.

땅콩집을 만들기 전에 실패하신 경험도 있나요? 실패할 경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땅콩집이 제가 만든 세번째 집입니다. 그 앞에 만든 두 개의 집은 전부 다 실패였어요. 2007년에 ‘모바일 홈’이란 걸 만들었죠. 집이라는 게 땅에 붙어 고정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발상에서 만든 집이었어요. 단독주택을 처음 지어본 것이었는데 ‘분해해서 옮길 수 있는 집’이었죠. 집도 자동차처럼 중고로 팔면 그 사람이 들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컨테이너에 들어가는 크기의 네모난 집을 만들었는데 난방 문제를 생각하지 못한 거예요. 난방 비용만 한 달에 백만원이 넘게 나왔죠. 그런데도 집이 예쁘게 생겼다며 투자 제안도 오고 했죠. 방송 3사에도 모두 출연했어요. 하지만 하자가 있는 제품을 팔 수는 없잖아요? 이후 난방 문제를 고민하다가 2008년에는 콘크리트 벽 두께만 50㎝가 넘는, 단열이 최고인 집 ‘아이올라’를 만들었죠. 근데 팔리지가 않더라고요. 당연하죠. 집 짓는 비용만 6억~7억원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두 번 실패하면서 전재산을 날렸어요. 살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집을 만들면서 나만 잘났던 거죠. 시장을 몰랐던 거예요.

가정도 있는데 전재산을 날리는 실패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이현욱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당장 그만뒀을 거예요. 돈 벌고자 뛰어든 일이고, 내가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했으면 그만뒀겠죠. 근데 내가 좋아서 이겨나갔어요. 어차피 결혼할 때 전세자금 7천만원으로 시작해 5억까지 불린 뒤에 그 돈을 날린 거라 돈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몇억 들여 공부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내는 갑자기 월세집에 살게 되니 너무 속상해했어요. 차라리 도전을 하지 말란 이야기도 했죠. 그래서 제가 잠깐 서울 대학로에서 우동집도 하고 했어요. 그것도 망했죠.(웃음)


가고 싶은 길을 가는 도중, 문득 계속 가도 되는지 의심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대학교 3학년 때 인생의 멘토인 건축가 김원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면서도 앞으로 건축을 해야하나 어쩌나 고민이 많았죠. 다들 그렇듯 저도 1·2학년 때 그냥 놀고 3학년 때부터 눈치 보며 공모전 좀 나가고 그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한번 받게 되면서 내가 건축 분야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 실전을 경험해볼 요량으로 교수님께 부탁해 ‘광장’이란 이름의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실습을 하게 됐죠. 거기서 김원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대뜸 제게 “학교 졸업하면 뭐하냐, 거기서 배울 것 없으니 그만둬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17년 동안 광장에서 일했죠. 그러다 보니까 광장의 대표까지 됐고요. 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 겨우 학점만 채워서 졸업을 했어요.

20대에 어떻게 그렇게 확고할 수 있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자, 일단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보고 그 다음에 고민하자, 생각하게 됐죠. 공사 현장에서 잘못 박힌 못을 빼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우선 열심히 못을 뺐어요. 빼다 보니까 왜 앞 사람이 못을 잘못 박았는지 알게 되고 조언하게 되더라고요. 건축일도 그래요. 일단 뛰어들어 하다 보니 고민이 생기고 생각이 커졌죠. 공모전에서 상도 받고 주변의 인정도 받게 됐고요.

건축 분야가 유학파도 많고 학벌도 많이 따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이현욱 중학교 3학년 때 1년 동안 베네수엘라에 가서 나름 유학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외국인 학교를 다니면서 보니 남미 유학생들은 미국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는 루트가 다 있더라고요. 다들 가는 그 길이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다만 남미의 문화, 여고생이 아이를 출산해도 축하해주고 교사도 아이 아빠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언제든지 학업에 복귀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관찰하는 것이 흥미로웠죠. 1년 동안 학교를 다닌 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해보는 일은 유학이 아닌 여행으로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에 유학에 대한 환상은 어느 정도 벗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학연수 1년은 기본, 인턴도 어디 어디 해야지, 이런 시선에 압박을 많이 받습니다.

다들 아파트에서 나고 자라서 그래요. 생각의 다양성이 부족한 거죠. 보세요, 사회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을 필요로 해요. 100명이 저쪽으로 간다면 나는 거꾸로 가야 되는 거죠. 어학연수, 인턴을 한 100명을 원하는 시장이 크긴 하겠지만 거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죠. 남들 다 가는 길에서 살아남자니 서로 몰려들어 피해만 주는 거예요. 술 마실 때 아니면 같이 몰려다니지 말아야 해요. 독특한 경력이나 사고방식의 ‘1명’을 원하는 시장은 10개만 있어도 내가 골라 갈 수 있잖아요. 뭐라도 되겠지, 하는 자신감을 갖고 자기 길을 가는 자세가 필요해요.

내가 잘하는 분야가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할까봐 불안해요.

다른 사람도 잘하면 어때요? 땅콩집을 만세대 짓는다고 생각해봐요. 나 혼자 못 지어요. 어떤 일을 그 사람 혼자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에요. 잘하는 사람 100명이 필요해요. 꼭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머리 아프죠. 세상에는 천명의 건축가가 필요하다, 만일 내가 어떤 시장을 열어도 나 혼자는 다 못 먹는다, 나 같은 사람 100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 더 발전한다고 생각해야죠. 우동가게도 원조가 많아야 장사가 잘되는 법이에요. 나 혼자라면 외롭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는 건데 함께 가니 얼마나 좋아요.

땅콩집 노하우도 다 공개하신 건가요?

책과 인터넷 카페를 통해 노하우를 다 공개했어요. 땅콩집이라는 이름만 상표등록을 했고 공법은 오픈했죠. 건설사에도 다 가르쳐줬는데 이후에 피드백이 안 와서 아쉽긴 해요. 땅콩집이 100호가 넘었는데 건축가들과 정보를 오픈하고 공유하니 그대로 베껴서 작업하는 이들도 있어요. 이런 면이 내게도 자극이 됩니다. 나 혼자 갖고 있는 노하우는 거기서 끝이 나요. 나눠야 발전이 되죠. 자기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가는 사람은 5년도 못 가요. 잘못된 방법인 줄도 모르고 계속 그 길로 갈 수 있거든요. 어차피 잃어야 본전인데, 다른 사람 참여시키지 않고 혼자 벌어서 그 돈 어디에 쓰겠어요? 돈 잔뜩 벌어서 자녀한테 주면 애만 망치죠. 사회에 환원하는 게 낫다고 봐요.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허무하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돈은 아니잖아요. 내가 만든 땅콩집에서 어떤 가족이 행복하게 산다면 그게 내 만족이며 동시에 사회에 기여를 하는 방법인 거죠. 나혼자 돈 많이 벌면 뭐합니까.

소장님이 생각하는 건축이란 무엇인가요?

건축은 건축이 주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에요. 아무리 예쁜 집 지으면 뭐해요, 거기 사는 사람이 편해야죠. 건축은 철학,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매주 사람들을 만나 집에 대해 상담을 하고 건축주를 만나요. 그 만남이 실제 건축 작업보다 더 중요해요. 결국 건축은 관계인 거죠.

예전에 건축학과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듣다 보니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건축가마다 특이한 디자인이나 독특한 건물을 만들고자 한다면 도시 전체적으로는 지저분해지지 않을까요?

건축의 수준을 높이는 특별한 디자인의 건축도 필요합니다. 다만 모든 건축이 그래서는 안돼요. 우리나라는 10년 전부터 건축계를 유학파가 휩쓸면서 디자인만 하려는 건축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시스템을 고민하는 건축가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아파트만 계속 지으면서 아파트에 브랜드까지 붙이고 고객 의견 조금 반영해서 인테리어나 변경하고 그러는 겁니다. 또 어떤 건축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하는데 건축주가 “안 예쁜데요” 하고 싫어하니까 못하는 거예요. 제가 ‘광장’을 맡고 나서 디자인보다는 시스템을 생각하는 건축을 하다 보니 100명이던 직원이 10명, 5명까지 줄었어요. 건축은 모험이어야 해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프리츠커상의 경우 일본에서는 5명이나 받았지만 우리나라는 한 명도 받지 못했죠.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아파트와의 전쟁이에요. 모든 사람을 아파트에서 탈출시키는 것이죠. 단기적 목표로는 ‘땅콩 밸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입주해 있던 한 소프트웨어회사 사장님이 “아파트형 사무실에 입주한 이후 직원들이 감기·천식을 달고 산다”며 “여기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달라”고 의뢰를 해오셨어요. 경기도 파주 해이리에 땅을 사서 거기에 땅콩집과 비슷한 단독주택 같은 사무실을 짓는 거죠. 마당도 있고 자연도 느낄 수 있는 회사를 만들 계획이에요. 지하에는 수영장도 있지요. 3월 입주가 목표입니다.

진행·정리 임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