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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불은 껐지만...보육 시스템 구멍 숭숭

보육료 현실화와 정부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며 어린이집을 하루 문닫겠다던 민간 어린이집들이 28일 정부와의 협상 끝에 휴원 계획을 철회했다. 손건익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박천영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민간어린이집분과위원회(이하 민간분위) 위원장 등을 만나 민간분위위원회를 포함한 협의체를 통해 올해 상반기 내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민간분위쪽은 어린이집 운영을 정상화하며 협의체를 통해 정부와 대화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보육 전문가들은 그러나 민간 어린이집에 대한 규제 완화에는 매우 신중해야 하며, 보육의 질을 올리기 위해선 보육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어린이집 관리감독 허술, 운영 투명화, 보육교사 처우 개선,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등 급한 문제가 많은데, 민간 어린이집의 요구 사항에만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급한 불씨는 껐지만 언제든 반복될 수 있어

  민간 어린이집의 집단 휴원이라는 급한 불은 껐다. 박천영 민간어린이집분과위원회 위원장은 “휴원 사태로 국민들께 우려와 심려를 끼친 데 대한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며 “상반기 중 민간어린이집분과위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정부의) 어린이집 운영지침을 수정·보완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민간어린이집 대표들이 이날 마련한 합의안에서는 어린이집 대표들과 지방자치단체, 정부 관계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올해 상반기 안에 행정지침의 세부조정 항목을 논의하기로 했다.   협의체에서는 △보육사업 지침 중 불요불급한 사항 정비 △국고지원 방법 변경 등을 포함한 어린이집 재무회계 규칙 검토 △원장과 교사의 사기앙양 방안 등을 다룰 계획이다. 이재용 복지부 보육정책국 과장은 “어린이집 비용이 늘어나는 등 부모에게 부담이 되지 않은 선에서, 또 국가 재정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운영상 지나치게 불필요한 행정적인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어린이집분과위 관계자는 “어린이집 원장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현행 처벌 지침의 효력을 정지하고, 특별활동비 등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지침도 철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민간분과위쪽의 합의안에 대한 온도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협의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사항들에 대해서 양쪽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만약 협의체에서 민간 어린이집쪽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민간 어린이집들은 언제든 집단 휴원이라는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있다.


표준보육비용 현실화해야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이 이번에 집단 행동을 나선 명분은 애초 보육료의 현실화와 과도한 규제 완화였다. 이영세 한국보육시설연합회 민간분과 정책자문위원은 “정부가 제시하는 표준보육비용단가는 보육비 중에서도 최저선인데 그것마저도 2008년 기준으로 책정했다”며 “표준보육비용도 현실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기타 필요경비까지 세세하게 규제를 하게 되면서 어린이집 원장들은 운영 자체가 힘들어져 참다 못해 집단행동까지 나섰다”고 설명했다. 막대한 시설투자를 한 민간 어린이집 입장에서는 정부가 표준보육비용 단가는 현실화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기타 필요경비까지 규제하게 되니 이익을 내는 데 있어 불리한 구조로 가게 된 것이다.


정부의 표준보육비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보육 관련 전문가들 상당수가 동의한다. 2008년 기준 만5세 표준보육비용 단가는 최저 28만4천원 최고 40만원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에 만5살 누리과정을 발표하면서 부모들에게 바우처 형식으로 20만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2008년 이후 현재까지 물가상승률도 감안하지 않고 올해 보육 단가를 책정한 정부가 갈등의 씨앗을 제공한 셈이다. 참여정부 시설 대통령 비서실에서 보육 정책을 수립했던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은 “보육의 질을 개선하려면 보육교사 수준을 유치원 교사 수준 정도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현재로선 교사 임금 등을 포함한 표준보육비용 단가가 낮아 보육교사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표준보육비용 단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규제 강화하고 평가인증 제도 꼼꼼히...관리감독 강화해야

  그러나 민간 어린이집 요구하는 규제 완화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복지부는 현재 보육사업지침을 통해 각종 기타 필요경비 등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고 운영을 투명화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12년도에 신설된 어린이집의 수입·지출 원칙을 보면, 보호자로부터 필요경비(특별활동비 등) 집행 뒤 발생한 잔여 금액은 분기별로 정산해 보호자에게 반환하되, 필요경비 총 수납액의 일정비율(5% 이내)를 일반관리비로 인정해 관리운영비로 집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지침은 어린이집의 투명한 운영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기획실장은 “그동안 보육 정책을 수립할 때 정부는 민간 어린이집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해왔다”며 “막대한 세금을 들어 보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는데 지원하는 만큼 민간 어린이집 운영에 대한 좀 더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어린이집을 평가하는 평가인증제도 역시 구멍이 많다. 현재 정부가 민간 어린이집에 대한 평가는 평가인증제를 통해 하고 있지만, 이것은 강제 사항이 아니라 신고제다. 평가인증을 스스로 받지 않는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정부가 제재 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있다. 결국 정부가 보육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이 돈이 어떻게 보육 서비스의 질을 올리는 데 투입되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상구 연구위원은 “현재 평가인증 업무는 보육정책진흥원 평가인증사무국에서 하고 있는데 인력이 충분치 않아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인증을 민간 어린이집의 80%가 받았지만 그 결과로 퇴출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 평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평가를 제대로 하고, 그 결과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공립 시설 확충과 함께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해야

개인의 사적재산을 투자해 시설을 설립한 민간 어린이집으로서는 어느정도 이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보육은 공공의 영역이고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제대로 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무상 보육을 구현하기 위해선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어린이집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어린이집 운영 투명화 등이 동시에 이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심선혜 공공노조 보육협의회 의장은 “현재 전체 어린이집 가운데 5,3%밖에 되지 않는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늘려야 보육의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는다”며 “어린이집에서는 편법적으로 교사를 채용하고, 특기교육비 횡령, 급간식 문제 등 각종 꼼수로 이익을 남기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번 집단 휴원 사태 등 집단 행동을 통해 민간 어린이집들은 계속 자신의 이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며 “정부가 보육 정책 주도권을 잡고 보육료를 현실화하되 제대로 돈이 쓰이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의장은 “정부가 현재도 어린이집이 남아돈다고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보육의 공공성을 포기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상구 연구위원 역시 “무상보육을 제대로 하려면 민간 어린이집에 지원을 하는 만큼 행정관리체계도 강화해야 한다”며 “한 구에 300~500개의 어린이집이 있는데 관리감독하는 구청 인원은 팀장 1명과 2~3명의 직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평가인증을 어린이집에 강제화하고 평가인증 결과를 퇴출과 연계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또 민간 어린이집 운영시스템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사 원문 양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