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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맛과 재미가 먼저죠”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을 빼놓고는 초·중등 교육을 말할 수 없다. 정부까지 나서서 과외방송을 할 정도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전적으로 사교육에서 찾는 것은 분명 정상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현직 교장이 쓴 〈아이의 공부를 방해 마라〉는 책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은이 정근화(60) 교장은 평생을 교단에서 보낸 교육자로, 두 자녀를 과외도 안 시키고 학원에 안 보내고도 모두 미국 명문대 박사로 키워 냈다. 원래 자녀가 똑똑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정 교장이 쏟아부은 끊임없는 노력과 방법이 독특하고 남다르다.

그는 우선 지금의 공부 풍토를 자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너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부 양은 절대적으로 많지만,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부는 대체로 능률도 오르지 않고 원하는 성과도 내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공부는 스스로 목이 말라야 잘해요.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없이 그저 학원에서 수동적으로 배우고 과외만 받아 온 사람은 자기 성취를 하기 힘듭니다. 평생학습시대를 헤쳐 나가긴 더욱 힘들지요.”

그는 공부에 대한 맛을 알게 해 주면 자기주도적 학습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신의 자녀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만화를 활용해서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지리·풍물 등을 다룬 〈선달이 여행기〉라는 만화책을 사 줬더니 자녀가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더라는 것이다. 뒤이어 〈사랑의 학교〉, 〈과학만화학습〉, 〈두뇌회전〉 등의 다양한 만화책을 집으로 사 날랐고 자녀들은 책장이 떨어지도록 읽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만화책을 많이 읽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가 되면 만화책을 떼고 문학작품으로 그리고 학교 공부로 옮겨 가죠. 이때가 되면 정말이지 공부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류학원’이다 ‘족집게 과외’라는 것들에 대해 부정적이다. 예체능 계통 이외의 교과목에서 과외를 해서 성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공부의 맛을 모르고 수동적으로 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아이의 공부 습관을 망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것보다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지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조언이다.



가령 아이는 무한한 학습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므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닥친 물리적 장애를 제거하고 학습 기회만 증가시켜 주면 똑똑하게 자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게 말하기, 걷기, 쓰기, 듣기, 손으로 사물 구별하기, 읽기 등 기초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라고 말한다. “기초능력은 8살까지 거의 완성되며, 이후에는 거기에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기보다는 기존 능력이 확대되고 향상될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교장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일상생활 모두를 교재로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방울토마토를 나눠 먹으면서 숫자 공부를 하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한다고 핀잔을 주거나 무시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이라도 진심으로 답해 주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빵”, “물” 대신 “우리 빵 먹을까”, “물 좀 가져올래” 하는 식으로 항상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게 함으로써 아이를 말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부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평범한 아이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 조언이다.

흔히 부모들은 자녀에게 “제발 공부 좀 해라”라는 식으로 다그치곤 한다. 그는 이러한 부모의 태도는 자녀의 공부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고 꼬집었다. 예컨대 자녀의 실력을 확인한다는 핑계로 ‘이런 문제는 못 풀겠지’라고 마치 명탐정 서커스하듯 문제를 내서 자녀가 60~70점 받으면 ‘너 딱 걸렸다’라는 식으로 야단쳐 봐야 부모나 자녀 모두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자극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자신감을 잃고 공부에서 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대신 자녀의 심리적인 면을 충분히 고려해 학습지도를 할 것을 제안한다. 못하는 부분은 감싸 주고 잘하는 부분은 격려해서 공부에 대한 동기를 유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그는 자녀들에게 영어를 직접 가르치면서 아는 것만 내는 방식으로 계속 100점을 맞게 해서 자녀가 영어 공부에 자신감과 열의를 갖도록 했다고 회고했다.

정 교장은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 주는 방법으로 칭찬이 최고라고 했다. “평균성적이 1~2점 떨어졌더라도 그중에 점수가 올라간 과목이 있다면 ‘이번에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점수가 올랐구나. 수고했다’ 이런 식으로 칭찬하면 다음에 성적이 더 떨어지지는 않죠. 칭찬의 수준을 조금만 낮추면 도처에 칭찬할 것이 널려 있습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아이를 공부 잘하게 하는 방법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그는 “똑똑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공부를 잘하는 기술은 분명히 있다”며 “공부 기술은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가 공부 기술을 알아야 자녀와 대화가 되고 지도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자녀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몰라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에 나오는 교재들 중에는 학부모용 지침서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많아요. 지침서가 없더라도 자녀를 보는 눈, 듣는 귀, 느끼는 마음을 예민하고 풍부하게 닦아 놓는다면 자녀는 분명히 공부를 잘하게 될 것입니다.”

글·사진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정근화 교장은 서울대 물리교육학과와 성균관대 교육대학원을 마친 뒤 서울대 부설여중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과학교육원 장학사, 구정고 교감 등을 거쳐 현재는 서울 성산중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교육방송에서 과학교육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했고 여러 종의 과학 참고서도 냈다. 두 자녀 중 큰아들은 엠아이티(MIT)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작은아들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과정을 다니며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정근화 교장이 두 자녀를 키우면서 실행한 교육법과 공부 기술이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충분히 참고할 만한 사례는 될 수 있어 몇 가지를 소개한다. ■ 공부는 복습-주요과목-책 읽기-예습-숙제 순으로=망각이 가장 덜 된 시간에 완전히 이해해 뇌의 장기기억장치에 입력하기 위해서는 복습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숙제를 먼저 하는데 그렇게 하면 그날의 공부를 다 끝낸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공부를 안 하게 된다. 그리고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 공부는 날마다 빠짐없이 해야 한다. 책 읽기도 하루 10분이든 20분이든 습관처럼 해야 한다.

■ 얇고 쉬운 책으로 기초를 튼튼히=어려운 책을 힘들여 다 뗀다고 실력이 금방 올라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부하는 재미만 반감되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얇고 쉬운 책으로 공부를 하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기분도 좋고 자신감도 생긴다. 기초책은 최소한 네다섯 번은 봐야 한다. 기초가 튼튼하고 체계가 서면 그 기초를 바탕으로 해서 전혀 접해 보지 않았던 응용문제도 쉽게 풀 수 있다.

■ 예습은 조각 그림 맞추기의 힌트와 같다=예습하라고 하면 다음날 배울 내용을 전부 알아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또 30분~1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수업에 자신감이 생기고 수업 내용도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등 생각보다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서론 부분을 잘 읽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 놓거나, 질문할 것과 보충할 것을 표시해 두는 것도 좋은 예습 방법이다.

■ 책 읽는 방법에도 왕도가 있다=책은 무조건 처음부터 읽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어떤 정보를 담고 있으며, 기억해야 할 중심개념은 무엇인지 먼저 훑어본 뒤 본격적인 읽기에 들어가야 한다. 훑어보기를 할 때는 큰 제목, 작은 제목, 도입문단, 소문단, 마감문단, 각 문단의 첫 문장, 삽화, 돌출제목 등을 보면 된다. 다음으로 단원의 내용을 자세히 읽기 전에 각 장의 소제목이나 요약 부문을 질문의 형태로 만들어 본다. 질문을 하면서 공부하면 호기심이 생기고 집중도 더 잘 되며 기억도 오래간다. 다음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정독을 한다. 정독을 하면서 간간이 되돌아보고 핵심 내용을 외우면 책 속의 정보는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전체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한다.

박창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