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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9일 (일) 23:04 기준 최신판
- 고독이 뼈 속까지 사무치는 계절이다. 십 오 년 만이다. 그때는 고독을 붙들었다. 지금은 고독을 바라본다. 외로움이 아니다, 고독이다. 고독이 아니다, 외로움이다.
- 고독은 부재로부터 오지 않는다. 고독은 밑바닦 없는 심연 속의 생명이다. 생명은 하나라, 내리막을 자전거가 튀어오를 듯 내려가는 얼굴 위로 가을 나뭇잎 하나 휙 볼을 부딪힌다. 그런 심연이다.
- 달이 맑다. 반달이 되어간다. 부풀어오르면서 바보같아지기도 했다. 도시의 불빛 닿지 않는 밤바다에 달빛이 아른하다. 반도 차지 않았으니 빛도 느리게 온다. 느리게... 느리게... 조금씩 뿌리다 만다. 그러니 가슴까지 남고 말지.
- 달이 차면서 광안대교 야경 위에서 살짝 비껴섰다. 해운대에서는 한 여자가 호텔 위로 뜬 달을 보며 고개를 쳐들고 멎은 듯 서 있었다. 사람들은 기쁜 얼굴로 땅을 보거나 서로의 얼굴을 보는데... 고골의 '외투' 아까끼 아까끼비치 처럼 생긴 사내가 행복한 사람들이 물결처럼 넘치는 해운대, 거기도 어둠이 내리는 곳이 있다. 그 후미진 벤치에 앉아 싸구려 라디오를 주머니 안에 쑤셔 넣으려 한다. 주머니보다 큰 그걸 넣을 수 있을까? 삐리릭삐리기 반복음을 내며 빛이 휘리리 도는 물건들을 파는 아주머니들와 그 물건을, 난간에 앉은 한 여자의 세련된 구두가 흔들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수영만에서 나는 어둠 속에서 버려도 될 듯 두발을 바다로 늘어뜨리고 달과 바다와 다리의 불빛을 본다. 물살이 고와서 어쩌면 저 위로 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르막을 오르는게 힘든 날이다. 수퍼 앞에 차가 서 있다. 피해갈 수도 서기도 애매하다. 수퍼에서 나온 여자는 주인 아주머니와 친구인 것이 분명하다. 딸아~들 보고 싶다고 다음엔 데려오라 수퍼 아주머니 두번 세번 이야기하고 수퍼를 나온 여자는 차 안으로 들어간다. 마침 차가 간다. 그들이 더 오래 이야기 하지 않아서, 자전거서 내리지도 않아도 되었고 길을 비끼지도 않았다. 유붕이이 자원방래하니... 라 하였는데, 공자도 고독한 사내였을 것이다. 그러니 그리 깊이 생각하게 되고 말지.
- Nine Lives는 참 좋은 영화다. 다시 봐야겠다. 우리나라에는 DVD가 나오지 않았다. 마르께스가 살았으면 아들을 자랑스러워 했겠지.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영화감독이 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 같다.
- 내일 모임에는 안나가야겠다. 내일 일어나봐야 알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안나가는 쪽으로 기운다. 나가서 뻔한 질문과 뻔한 답을 할 것 같고 그건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술맛떨어지는 이야기라도 나오면 술을 마구 마셔버릴 수도 있으니. 나는 지금 고독과 친구하고 있다. 이 친구를 외롭게 둘 수 없는 것이다.
- 비록 수학을 잘하지 못하지만 수학의 세계도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의 뜻이 거기에도 담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잘 모르고 덤볐는데 그 세계가 내게도 문을 빼꼼히 열어 주는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감수성을 살리지 못하는 바에야 똥 같은 것이긴 하지만, 뭐 어때. 똥을 존중해야 한다. 나도 먼지가 되고, 나도 하나의 똥이다. 우주도 하나의 똥이다. 그 작은 씨앗이 이리 큰 똥을 싸다니 !
- 피곤하다.. 오늘은.. 일찍 자는게 좋겠다. 내일 아침 떡을 굽고 진한 커피를 우려낼 즈음 생동하는 기운이 나를 용서하고 안아줄 것이다. 그때부터 다시 말을 타자. 평원을 달리자.
- 사랑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자전거를 타고 수영만에서 해운대로 해운대서 청사포 쪽으로 달리는데 자꾸 옷길을 댕기거나 머리카락을 만지러 한다. 달이 따라온다. 어서 차거라, 내가 너를 따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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