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30-1: 두 판 사이의 차이

DoM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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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0일 (수) 12:09 기준 최신판

  • 가을 한 길을 따라 걸었다. 쌀쌀한 기운이 돌까봐 겉옷을 걸쳤더니 금새 더워져서 들고 다녔다. 소나무 사이로 빛이 새어든다.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나는 걸으면서도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 내가 걷는 길은 나를 위한 길도 아니고 더군다나 내가 운동하기 위해 걷는 길은 아니다. 사람들이 다닐 만한 곳에 사람들이 다녔고, 길이 모습을 드러냈고, 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한 사람들에게 길로 있어주었다. 어디든 길 아닌 곳이 없고, 길이 꼭 길일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길이 길이기 위해서는 밟혀야 하고, 길이 길이기 위해서는 사람들 발보다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 길이 길이기 위해서는 가려는 사람을 보내주어야 한다.
  • 철길 옆 바다로 쑥 튀어나온 곳에 앉았다. 두 다리를 뻗어 내리고 파도가 바위를 쳐때리는 걸 내려보았다. 다리도 따라 흔들거렸다. 낚시꾼 셋이 파도에 쓸릴랑 말랑 하면서 낚시질 삼매경이다. 저 아래 작은 배들이 오거니 가거니 하고 멀리 수평선에는 아마도 거대한 철갑선들이 손톱만 하게 왔다갔다 한다.
  • 청사포서 송정 바다로 갈매기 한마리가 날았다. 혼자서... 바다와 평행선을 만들면서. 그러더니 잠시 후 이번엔 송정에서 청사포로 또 한마리가 날았다. 아까 길에서 본 새끼밴 고양이가 떠오른다. 그늘 사이 두 손을 모아 뜰 수 있을 만큼 햇살이 내리는 편평한 돌위에 눈을 반쯤 감고 그르륵 그르륵 거리고 있었다.
  • 저녁, 두시간을 걸었다. 장딴지가 뻑뻑하다. 저녁 간단히 먹고 저녁 산책길로 간다는 것이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달맞이 고개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달맞이 고개만 돌고 온다는 것이 멀리 해운대가 보이니 거기까지 걷게 되었다. 중간쯤 가다 돌아와야지 했는데 걷다 보니 달이 도톰해져서 반달을 넘어선 걸 본 것이다. 바다에 희뿌려놓았을 달빛을 보려는데 해운대 길은 환하고 시끄러워서 볼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조선비치 호텔을 넘어 돌게 된 것이다.
  • 동백섬 입구에 자리를 잡은 조선비치 호텔 앞에는 바위들이 제법 있다. 그리로는 제법 파도가 친다. 조선 비치 유리관 안에서는 런닝 머신을 하고 땀을 뻘뻘 내고 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다를 보며 갓처녀 허리처럼 휘어져 들어간 해운대의 곡선을 보면서 뛴다. 해운대 길을 따라 뛰는 사람들은 더 많다. 천천히 뛰는 것 같은데 내가 빨리 걷는 것 보다 더 빨리 그들은 사라져갔다.
  • 조선비치 호텔 앞에는 바위들이 제법 있다. 그리로는 파도가 제법 친다. 동백섬으로 들어가는 입구 쯤 '무속행위 금지'인가 하는 글자판이 써 있다. 오늘도 파도가 닿지 않은 바위틈에는 촛불들이 숨어 빛나고 촛불 옆에는 과일이나 음식이 놓였다. 멀리 모텔들이나 노래방, 스타벅스, 베니건스, 아웃백, 호텔의 불빛이 있긴 하지만 거기는 캄캄하다. 그 안에 별처럼 촛불들이 여기저기 불타고 있다. 동백섬으로 조금 더 접어들었다. 月波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깜깜한 그 아래 바위 위에 두 아주머니가 있다. 여긴 더 비범하다. 오색 깃발을 쥐었다 폈다, 순서를 이리바꾸었다 저리 바꾸었다 하면서 바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앉아서 손이 닿도록 빌었다. 두 사람은 바위 두셋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비슷하게 움직였다. 한 사람이 앉아 파리처럼 손을 비비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면 한 사람은 고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한사람은 조용히 앉았다가 갑자기 '으아아~' 아어~어' 같은 탄성을 냈다. 큰 초를 셋 모아 놓고 음식을 제법 많이 쌓았고 거기 술병도 하나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빌고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일까? 예전엔 사람들이 자연을 향해 자연의 품 속에서 소원을 빌었다면 현대인들은 인간의 지성과 '나' 안으로 더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자연을 극복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프랭클린 처럼 자연을 도전에 응전하는 결국엔 길들일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널리 퍼져있다. 게다가 고독한 모래알처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나' 안으로 들어온다. 그 정도로 거창하게 이야기 않더라도 지금은 '나'밖으로 나가 자연과 대화할 언어를 배우지 못했다. 해운대를 돌아 다시 오는 동안 메리어트 호텔 잔디밭에서는 요란한 음악과 제법 곱상한 목소리로 여성이 사회를 보고 있었다. 처음 지나갈 때 '뷔페를 마련하였다'더니, 돌아놀 때는 '맛있게 드셨느냐, 천천히 와인도 한잔씩들 하시고' 한다. 무슨 쥬얼리 익시비션이라는 것 같은데, 많이들 구경들 하시고, 파는 곳도 있으니 ... 많이들.. 어쩌고 저쩌고.. 거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빤짝이'들을 파는 뚱뚱한 아주머니가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잠에 푹 빠졌다. 그 앞에서 빤짝빤짝 빛나는 것들은 요란했고 쥬얼리 익시비션의 음악소리도 낭랑했는데, 그 사람은 뚱뚱해서 그런지 제 몸속으로 잠겨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보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또 다른 빤짝이들 파는 아주머니 옆에서 두 남자가 길바닥에 돼지 수육을 플라스틱 위에 올려놓고 일회용 컵에 쏘주를 마시고 있었다. 곰같은 몸을 하고 곰처럼 걷다가 곰처럼 손을 앞으로 휘젓던 스포츠 머리를 한 젊은 남자는 '으어! 으어!' 하고 곰처럼 소리를 질러 길을 지나는 여인들이 함께 온 남자 품으로 '아이 무서워!' 하며 안기게 하였다.
  • 달맞이 고개에서 해운대로 해운대서 마침내 동백섬쪽으로 달은 나를 불렀다. 내가 가면 달은 달아났으니까. 미소만 보이고 몸은 멀어지는 전술을 펴는 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속아주는 것도 때로는 괜찮다. 따라가고 따라 갔는데, 오면서 보니 또 내 앞에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아무리 해운대가 휘어져 굽었다고 해도 올 때 앞에 있던 것이 갈때도 앞에 있을 수는 없는데... 하다가 '아!' 박수를 쳤다. 그렇지! 달은 지구를 원으로 돌고 돌지...
  • 달은, 오늘, 많이 외로웠나 보다. 어제보다 더 부풀렸다. 어제보다 더 옷깃을 잡아 당겨, 갈 때도 붙들어 당기더니 돌아 올때도 붙들어 당겼다.
  • 역시 길은 낮은 곳에 있다. 억지로 길을 내었지만, 그 길도 결국 낮아야 했던 것이다. 길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이어지지 않은 길은 없다. 길은 하나다.
  • 길도 달처럼 고독한 것이다.
  • 길과 달은 고독의 가장 친한 벗이다.
  • 길과 달은 고독을 벗삼고 고독은 길과 달을 벗삼는다.
  • 그 총체적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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