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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3일 (금) 09:13 기준 최신판
초록의 공명 지율 스님이 보내는 편지에서..
< 70년대 중반, 오대산 상원사 선원에서 머물었던 어느 스님의 일지 한편을 구정의 인사로 올려봅니다.>
신년 정초다.
버렸거나 버림을 받았거나 혈연과 향관(鄕關)이 망막 깊숙이서 점철되어지는 것은 선객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고 비정하기에 누구보다도 다정다감 할 수도 있다.
오 늘은 쉬는 날이다. 뒷방이 만원이다. 여러 고장 출신의 스님들이라 각기 제 고장 특유의 설 차례와 설빔 등에 관해 얘기들을 나눈다. 평소에도 선객들의 먹는 얘기는 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끼리끼리 앉아 있게 마련이다. 남방출신은 그들대로. 북방출신은 그들대로.
호마의북풍(胡馬依北風)이요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때문이겠다.
오후에는 윷놀이가 벌어졌다. <감자 구워내기>를 걸고서. 떡국을 잘 먹어 평양감사가 부럽지 않는 위의 사정인데도 구운 감자가 또 다시 식성을 돋우니 상원사 감자 맛은 역시 미식가도 대식가도 거부할 수 없는 특이한 맛이 있나 보다. 경상도 사투리가 판을 치는 윷놀이가 끝이 나고 구운 감자도 먹었다.
어둠이 깃드니 무척이나 허전하다. 어제는 세모여서 허전하다 하겠지만 오늘은 정초인데 웬 일일까. 고독감이 뼈에 사무치도록 절절하다. 세속적인 기분이 아직도 소멸되지않고 잠재되어 있다면서 불쑥 고개를 치민다. 이럴 때마다 유일한 방법은 화두에 충실할 수 밖에. 그래서 선객은 모름지기 고독해야 한다.
열반경은 가르치고 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고독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것 그 차체만도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고독할 수록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백(李白)은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고독을 노래했다.
꽃이 만발한 숲속에 한동이 술이로다
그러나 친구가 없어 홀로 마실 수밖에
잔을 들어 돋아오르는 달을 맞이하고
그림자를 대하니 세 사람이 되었구나
달은 본디 술을 못하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나를 따라 움직일 뿐이로구나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月개不� 곕�
影從隨我身
니체는 탄식했다.
"언제나 나는 나의 입이 노래하면 나의 귀가 들을 뿐이로다."
이 얼마나 잔혹할이만큼 절절하게 표현한 고독의 극치인가. 고독 속에서 고독을 먹고 고독을 노래하면서도 끝내 고독만은 낳지 않으려는 의지가 바로 선객의 의지이다.
화두는 거북이 걸음인데 세월은 토끼뜀질이다. 어찌 잠시라도 화두를 놓을 수가 있을까. 선객은 옹고집과 이기와 독선으로 뭉쳐진 아집(我執)의 응고체라고 흔히들 비방삼아 말한다. 그러나 비방이 아니라 사실이며 또 한 실상이어야 한다.
불교의 경구는 가르치고 있다. <아집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그렇다면 나(如來)만이 그(衆生)을 제도할 수 있다는 아집까지 버려야 할까. 그래서 수보리(須菩提)는 물었다.
"여래는 여래이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원한다면 아상(我相)에 떨어지고 원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중생을 건지나이까?"라고.
아집없는 선객은 화두없는 선객과 같다. 견성하지 못하고 선객으로 머무는 한 아집은 공고히하고 또 충실해야 한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옆에 누운 지객스님이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연륜을 더했군요."
"그렇게 되었네요."
"지난해엔 제 자리 걸음도 못한 것 같아요.금년엔 제 자리 걸음이나 해야 할 텐데 별로 자신이 없군요."
"어려운 일이지요. 평범한 인간들은 시간을 많이 먹을수록 그것으로 인해 점점 빈곤해지고 분발없는 스님들은 절밥을 많이 먹을수록 그것으로 인해 점점 나태와 위선을 쌓아가게 마련이지요. 나아가지 못할 바에야 제 자리 걸음이라도 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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