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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7일 (수) 22:12 기준 최신판

고전 일상어로 번역, 대중과 소통 넓혀야

기사 원문

(처음 부분 버림)

서양고전학 전문 학술지인 〈서양고전학연구〉 편집위원회(편집위원장 한석환 숭실대 교수)는 오는 19일 서울대 인문대 철학사상연구소 세미나실에서 학술지 제30집 발간을 기념해 용어·표기 표준화, 서양고전 확산 방안 등 학계의 다양한 문제를 두루 논의하는 집담회를 연다. 이 모임은 특히 서양 고전에 정통한 원로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성염 서강대 명예교수, 이성원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허승일 서울대 명예교수,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태수·김남두 서울대 철학과 교수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참석자들의 학문적 권위를 생각할 때 이날 논의 사항은 용어 표준화 등 학계의 향후 움직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본다.

지난 12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남두 교수는 고전 번역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좀더 넓은 소통의 가능성이 고전 번역의 일반적인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일상어의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가 보기에 대표적으로 잘못 번역된 사례는 영어 ‘understanding’을 옮긴 ‘오성’이다. “깨달을 오라는 한자를 모를 경우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지성이나 이해능력, 계산능력으로 옮기면 될 것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핵심적 개념인 ‘transcendental’은 어떤가. 선험적, 초월론적, 초월적 등 세 가지 번역 판본이 있다. 경험에 앞선다는 선험적과, 존재론적으로 도달하기 힘든 무엇이라는 초월적의 의미는 쉽게 합쳐지지 않는다.

김 교수는 개념어를 한문으로 옮기는 동아시아적 전통을 문제삼았다. 한자로 옮기다 보니 정확하게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양의 개념어는 모두 일상어에서 나왔다. 변증을 뜻하는 ‘dialect’는 서로 이야기하다라는 의미다. 변증 대신 ‘서로 이야기함’이라고 번역해도 된다. “조선 시대에 학술어(한문)와 일상어는 체계적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일상어가 학술어 대접을 받지 못하다 보니 일본어 조어가 일상어를 대신해 학술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상어와 학술어의 간극을 메워나가야 한다고 했으나 표기 원칙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


  • 우선 어디까지 한글로 규정할 것인지 기준이 정해져야 한다.
  • 또 표음(한글) 표의(한자) 문자로 함께 가르쳤을 때 지적인 능력 발달이나 소통에 도움을 준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한 검증도 필요하다고 본다.
  • 서양고전 용어 표준화에 대해선 그리스어 로마어 원단어를 음사(소리나는 대로 옮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소피스트(영어식 표기, 옛그리스어 음사는 소피스테스)처럼 우리말로 굳어진 경우는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서양고전 연구 체계의 부재도 이날 주요하게 다뤄질 전망이다. 우리 대학 어느 곳에도 그리스어나 라틴어 문헌을 전공으로 다루는 과는 개설되어 있지 않다. 서울대도 과가 아니라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이 개설되어 있을 뿐이다. 철학이나 역사는 관련 학과에서 다룬다고 하더라도 문학 등 그 이외의 고전을 파고들 연구 기반이 없는 것이다. 도쿄대 등 대부분의 주요대가 서양고전학과를 개설하고 있으며 라틴어 전문가만 400여명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 서양고전학회 간사이자 서울대 서양고전학 협동과정 강사인 안재원 박사는 서양고전 연구를 ‘3디’ 직업으로 표현했다. “과로 독립되어 있지 않는 등 실체가 없기 때문에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도 받기 힘듭니다. 과로의 독립이 어렵다면 고전연구소라도 만들어 자료확보나 공동연구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서양고전이 우리 고전이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을 보라고 했다.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서양의 것이 이미 우리의 것으로 내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전’ 앞의 ‘서양’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서양은 타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근대국가를 체계적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느냐 그 원리를 알기 위해서는 서양고전 연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글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비단꽃 굿판’ 삶과 죽음 함께 ‘덩더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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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인천시 강화도. 강화읍에서 북서쪽으로 10여㎞를 달리니 산기슭에 금화당이 나온다. 금화당(錦花堂)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무당, 즉 나라 만신으로 불리는 김금화 선생(76)의 이름을 딴 당집이다. 최근 나온 그의 자서전 <비단꽃 넘세>(생각의나무 펴냄)도 그의 두 이름을 합해놓은 것이다. 비단꽃은 금화의 순우리말이고, 넘세는 딸만 낳은 부모들이 다음엔 아들을 낳게 ‘남동생이 어깨 너머에서 넘어다보고 있다’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당집 무대에서 닷새간의 일정으로 만수대탁굿이 펼쳐지고 있다. 만수대탁(萬壽大宅)굿은 황해도 지역에서 노인들의 만수무강과 돌아가신 뒤 극락 천도를 기원하는 굿이다. 큰 무당들도 평생 세 번을 하기 어려운 큰 굿판이다. <비단꽃 넘세>의 서문을 쓴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가 1987년 서울 우이동에서 금화가 베푸는 굿판에서 너무도 강렬한 느낌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는 바로 그 굿이다.


굿판에선 금화를 신어머니로 삼아 신내림을 받은 신딸들이 신어머니 금화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넘세’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천덕꾸러기로 태어나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열두 살 때부터 무병을 앓고, 열네살부터 구박과 구타로 이어진 시집살이를 2년 만에 탈출한 어린 새색시의 아픔이 쏟아진다. 어디 그뿐이랴. 열일곱 살에 외할머니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었지만, 일제와 6·25,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굿은 미신으로 치부돼 때론 경찰서에 끌려가고, 때론 총구의 협박을 받으면서 살아온 그 모진 삶 속에서도 고통 받는 이들의 상처를 끌어안아 원한과 상처를 훨훨 털게 한 그의 삶이 바로 한 판 굿이었다.

“복은 나누고 한은 풀자”

그것이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신의 소리였다. 세상의 많은 곳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복수와 테러와 살인이 자행되지만 굿에서 복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굿판에서 신은 늘 용서하고 위로하게 했다. 자신이 입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굿판에서 오부지게 한판 놀면서 그 깊은 한을 녹여냈다.

마침내 금화가 무대에 등장했다. 그 앞에는 굿판에 쓰려고 잡은 소 한 마리와 돼지 두 마리를 앞에 두고 곰실곰실 굼뜨게 시작한 그의 몸짓이 어깨춤으로 이어지고, 온몸으로 펼쳐나간다. 잠시 뒤 치우천황옷을 포개 입은 그는 “마니산의 복이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 백의민족 모두에게 내려주십시오”라고 기원한다. 마침내 이날 굿의 백미가 시작된다. 삼지창에 소고기 한 마리를 모두 꽂은 일자 막대기를 평지에 세우는 것이다. 소 한 마리의 무게가 무게이니만큼 장정 대여섯 명이 달려들어도 삼지창이 무게 중심을 유지하지 못한다. 굿판을 후원하던 한 할머니는 흥미진진하게 이를 지켜보는 1천여 명의 관객들에게 손으로 빌며 함께 치성을 드리라고 독려한다. 금화의 신아들과 신딸들이 달려들어 기우는 쪽의 막대 밑에 소금을 밀어 넣으면서 무게중심을 잡으려하지만 삼지창은 소 한 마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어코 쓰러지고 만다. 그러자 그 할머니가 거품을 물고 무대에서 쓰러져버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오고 사람들이 달려들어 할머니의 온몸을 주무른다. 그 사이 다시 삼지창이 세워지고 막바지에 금화를 뺀 모든 사람들이 삼지창에서 손을 뗀다. 이제 모든 것은 그 한 사람의 신기에 달렸다. 그가 치성을 드리고 마침내 손을 놓는다. 장정 대여섯 명이 사방에서 붙들어도 쓰러질 듯 흔들거리던 그 무거운 삼지창이 막대 하나에 의존해 서게 됐다. 이번엔 그가 삼지창에 꾀어있는 고기를 향해 칼을 던져 꽂아도 막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그가 다른 막대기를 주워들고 삼지창에 꽂힌 고기를 내려쳐도 막대는 요지부동이다. 굿판에선 강림한 신이 삼지창을 붙들고 있다고 믿는다. 이 광경에 1천여 명의 관객들이 탄성과 함께 손뼉을 친다.

신과 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디던가 조금 전 쓰러졌던 할머니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추며 산 자의 환희를 만끽한다. 마침내 금화의 신기가 발동했다. 노구의 몸이라곤 믿을 수 없이 유연하게 뛰어오르면서 관객의 신기를 끌어낸다. 그와 마주치는 관객들도 그와 함께 덩더꿍 덩더꿍 춤을 춘다. 신들과 죽은 자를 동원해 결국 산 자를 행복하게 하려는 산 자들의 춤판엔 너와 내가 따로 없고, 한국인과 외국인도 다름이 없었다. 삶의 회한도 미움도 무아지경의 춤 속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강화도/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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