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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131.195.95 (토론)님의 2009년 4월 21일 (화) 22:3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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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page는 앞으로 많이 보태질 계획입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정성을 모아주십시오. ( 수학식 쓰기)
아래는 학부모인 친구에게 보낸 글입니다. 지금 보면 몹시 거칠지만, 몇가지 이유로, 내용 수정 없이 그대로 옮겨 둡니다.


우선 바른 수학이 뭔지, 수학이란 거대한 자연을 바르게 가르친다, 아니다 그런 식으로 잘라낼 수는 없는 것 같아. 그렇지만 바르지 않게 가르치는 수학은 분명히 있지. 많지. 단, 성적 올리기와 바른 수학 공부를 별개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해. 우리가 진실한 무엇을 하면 현실이 안받아줄 것이라는 패배적인 생각인지도 몰라. 세상이 거꾸로 서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농촌문제, 과학기술 문제, 교육문제... 쌓여있는 여러 문제들의 해결이 본질을 제대로 안했을 때 끝없이 답이 없는 것을 쫓아 답을 찾으려는 모험과 같아. IMF도 그랬잖아. 70년대 뒤틀린 채 억지로 성장을 한 결과라고들 보고 있고 그걸 고치자고 본질적인데서 부터 고치자고 얼마나 많이들 이야기 했냐고.

물론 현재 학교나 학원에서 하는 수학교육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그건 더 잘된 것이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여러 개 있을 수 있다고 봐. 중요한 정리일수록 증명은 여러 개인 경우가 많거든  :)

우선 내 말이 붕 뜬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보이기 위해 사례를 들어볼께.

사례들

2004년도 상반기 대학 영재교육원 수학 특별반

위의 이름으로 중학생 2,3학년들이 모였어. 처음엔 아마 10명이었어. 3개월 정도 했고 매주 세시간 정도 가서 오로지 강의만 했지, 문제풀이는 없이 역사와 이론, 증명과 혼자 중얼거리기와 질문들로 시간을 보냈어. 마산까지 매주 갔으니까 바빴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거의 안 나왔어.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이런 것이 교과서에 나오는지 알지, 애들아? 이거 방금 했던 이야기랑 다를 거 하나도 없잖아. 자, 봐 조금만 바꿔보자. 그리고 이게 제대로 자리를 잡히기 까지는 여러분의 고조 할아버지의 고조 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의..’


수학이란 무엇인가 맛보기 할 수 있는 나의 작은 노력이었어. 내가 많이 알아서가 아니고 내가 알고 (힘든 기억이 더 많았지만 그래서 더) 기뻤던 기억들, 어떤 정리와 증명을 만났을 때 그 쾌감 (아름다움 체험!)을 이 아이들에게도 알리고 싶었어. 내가 아는 만큼만이라도. 점점 아이들이 늘더니 3개월 후 20명 정도 되었어. 끝날 때 반응들이 꼭 같진 않았어.

  •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 어렵다, 저런 것을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도 뭔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런 거 잘할 수 있어요 ?
  • 선생님의 수업을 받고 수학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요. 예전엔 수학이 너무 재미없었는데. 이젠 재미있어요.
  • 특히 여자아이들 몇이 열심이었는데, 물론 모두에게 어려웠지만, 그 아이들 중 하나는 수학이 너무 좋아서 밤에도 늦게까지 할 때가 많아졌다고 했어. (그 아이가 보내온 편지도 어디 있는데)
  • 한 아이는 화학영재반에 다니는 아이였는데 그동안 학원에서 맨날 수학은 꼴찌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하나틀리고 다 맞는다고 하면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했어.


2004년도 상반기 과학영재학교 수업

과학영재학교에서 수업을 맞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펑크 난 것을 때우게 된 것 같아. 개학 직전 주 토요일 저녁에 전화가 와서 한 과목 맡아 달라 그랬으니까. 기분이 좋을리 없지만, 아이들과 자리를 할 수 있는게 기뻐서 그러마고 했어. 개학 후 미적분학2를 맡아달라고 하더니 며칠 뒤 다시 기하학으로 바뀌더군. 부탁하는 이유도 미적분학2는 앞뒤 연계가 있는데 기하학은 독립적이니까 그렇다는 거야. 뭐든 상관 없어요 했지. 허탈하기도 하고 웃기는 이유기도 하고.

뭐 그런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내 식대로 하는 것이 좋으니까 오히려 잘 됐지. 기하학 수업에 교과서를 지정해달라고 하더라. 학교에서 전화오고 학부모들이 전화하고 아이들이 물어보고. 난 교과서 없다고 했어. 수업만 따라오면 되고 숙제 잘 하면 된다고. 그런데 기어이 정해야 한다고 해서 미국원서로 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그 전에 무엇으로 했는지, 무엇으려 하려고 했는지 물어봐서 그냥 그걸로 정해주고 아이들에게 분명히 이야기했어. 책을 보니 별로더군. 미국 college 용 같았어. 책 안사도 된다. 몇 번 이야기했는데 어떤 어머님이 전화하시더니 단체로 주문한 모양이었어. 내게도 한 권 보내왔더군.

19명이나 수업을 들었는데, 꽤 많았어. 이건 영재학교에서 드문 경우야. 물론 나를 찾아 온 아이들이 아니라 시간표 짜다보니, 기하학이 뭔가 궁금해서, 그냥 수학이 좋아서.. 이유가 다양하더군. 그 중에 나중에 아니 딱 한명 안사고 모두 책을 샀더군. 끝날 때 나보고 그러더군. 이거 책 보지도 않을 거면서... 그래서 그랬지.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책 없어도 된다고.

우선 한학기 밖에 안되는 수업에, 아이들이 수학에 재능이 높고, 그렇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그런 것을 골고루 생각해봤어. 그것으로부터 유추해나갔어. 그러니 전체 프로그램이 대강 잡히더군. 아이들과 '수학의 맛과 멋'을 나누고 싶었어. 프로그램에 따라 주제 마다 이 책 저 책 이 자료 저 자료 뒤져 아이들이 재미있고 긴장해서 들을 수 있게, 그리고 무엇보다 기하학 자체에, 더 나아가 수학에 대한 느낌을 가지도록 노트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수업을 했어.

아이들이랑 많이 친해졌어. 학교에서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는데 - 그리고 그것이 참 이상한 일인데 - 아이들과 식당에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먹기도 했고 따로 저녁에 만나 수학 이야기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나눠 먹었어. 그것을 좋게 본 어떤 분은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 보는 것 같다고 했고, 어떤 분은 교육부에서 만드는 공익광고 같다고 했어.

한 학기가 끝나고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수업이 너무 좋았다고 했어. 수학을 조금은 달리 보게 되었다고. 가장 재미있는 수업이었다고. 영재학교 들어와서는 이런 수업 받고 싶었던 거라고. 인기를 조작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 이 글을 쓰는 것도 '내가 잘났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 ? 내가 그렇게 말하더라도 니가 콧방귀 뀔 건 뻔하잖아.

본질을 건드리고 그것을 잘 전달해주면 그것을 이해하고 들을 귀는 있는 거라고 봐. 앞으로 내가 더 깊어질수록 내 수업도 깊어지고 아이들과도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세 번째 사례 : 저녁에 수업을 배우러 온 두 아이

내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부산에 있는 어떤 어머님이 전화해서 아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이 왔어. 거절했지. 난 과외 안한다고. 그러나 자식을 위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고 그 아이는 두 번의 캠프를 통해 이미 내 눈에 들어온 아이라 그냥 일주일에 한번 아이를 보내시라고 했지. 그냥 아이가 좋아서 아이가 수학을 좋아하는데 다른 엉뚱한 것을 하면서 수학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겠구나 싶어. 일주일에 한 번씩 왔어.

그로부터 한 달 쯤 뒤 이번엔 어떤 남자아이의 어머니가 찾아왔어. 우리 아이를 꼭 좀 가르쳐 달라고. 아이큐가 비정상적으로 높고 이미 초등학교 때 대학 교수님으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았다는 그 아이는 백 쪽 정도의 ‘연구결과물’까지 들고 와서 보여주었어. 몇 마디 질문하고 이야기를 해보니 연구 결과물은 어째 좀 아닌 것 같더라고. 그래도 어머님이 하도 졸라서 이미 하고 있는 아이도 있고 그 남자아이가 똑똑하니 아이를 보내시라고 했지. 레슨비... 하시길래 그런 것 생각하시려면 다른 분 찾으시라고 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남자아이가 아주 똑똑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것은 내가 수업을 한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내게 수업을 하도록 했어.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질문하면서 몰아쳤지. 물론 잔인할 정도는 아니고. 그 아이들이 워낙 똑똑해서 난 그 아이들이 떨어지면 선발과정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그런 생각안해도 됐어. 둘 다 합격했으니까. 나야 뭐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고 몇 개월 안되었고 그나마 종종 빠지곤 했으니까 나 때문에 합격한 건 절대 아냐. 대신 수학 시험 보는데 내 수업 방식이 재미있었고 시험에도 도움이 컸다고 메시지를 보내왔어. 물론, 인사치레 일수도 있지.

네 번째 사례 : 러시아 영재학교 "League of schools"

러시아 영재학교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학교도 그래. 그 학교에서는 교과과정과 내용을 완전히 뒤집고 수업은 교사와 다른 대학에서 일하면서 아이들 가리치는 일을 좋아하는 교수들이 오지. 어쨌든 사범대 출신 교사는 안뽑는데. 왜냐하면 사범대 출신 교사들은 정해진 것만 따라하려고 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고. 그건 좀 심한 말이지만, 이 작은 학교를 만든 사람의 철학을 담기 위해 특단의 조치였다고 이해해주면 되겠지.

교사는 가르치고 싶은대로 하도록 하고 일 년 뒤 아이들에게 물어봐서 아이들이 좋아하면 그 분 계속 수업하는 것이고 아니면 그만두게 한대. 월급이라고 많지도 않은데 대학에서나 학교에서 강의하는 분들이 계속 줄을 잇고 있대. 그렇게 하고 ‘어쩔 수 없이’ 마지막 1년은 대학 입학시험 준비를 시킨다는군.

우리로 치면 중학생 나이에 들어와 6년을 있다 가는데, 학생 수는 한 학년에 20명. 입학해서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두 세 명이 학교를 옮기고, 졸업은 약 17-8명 정도. 지금까지 13년 했는데 졸업생 모두, 모두 모스크바에 유명한 대학들에 들어갔단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 반 정도, 영화대학, 문학대학, 과학기술대학 ... 비단 이 학교뿐만 아냐. 물론 러시아의 입시제도와 우리랑 다른 점이 커. 하지만 그래도 원칙적인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아.

덧붙임

입시 위주로 안가르친다고 성적이 떨어지느냐, 결코 그렇지 않아. 이것을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경험적으로 봐도 충분히 근거가 있어. 문제는 선발과 운영이지. 막무가내 문제 풀이식으로 가르치지 않고 '더 수학적으로 수학을' 접근해간다는 것 자체가 성적 올리기와 따로 라고 생각하는 건, 소위 ‘정석’류가 바라는 이데올로기적 세뇌라고 할 수 있쥐.  :)

아이들에게 수학이 아니면서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이야. 수학교육은 아이들을 위해 있는 거야. 수학교육에다가 아이들을 끼워 넣으려는 불안한 생체실험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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