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 Math:What Happens

DoMath
Parha (토론 | 기여)님의 2010년 3월 9일 (화) 18:4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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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루어졌던가

p.17

여기에 인용하는 이야기는 «유아와 수학, 수학을 닮지 않은 수학» 이라는 제목의 내 논문에서 발췌한 자료들이다. 그 논문은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잡지, 1985년 발간한 8호에 발표되었다.

우리 동아리의 구성원들은 네 명이다. 내 아들 지마와 그의 세 친구들인 줴냐, 빼쨔 그리고 안드류샤이다. 지마가 3년 10개월로 가장 어렸고 안드류샤가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 만 5살이 채 안 된 아이였다.

우리는 작은 탁자에 빙둘러 앉았다. 나는 물론 흥분해 있었다. 어떻게 이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시작하는 말로 아이들에게 우리는 수학 공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권위를 세우기 위해 수학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학문이라고 덧붙였다. 바로 그때 질문을 받았다.

- 그렇담 학문이란 뭔데요 ?

설명해야 했다.

- 학문이란 말이지 많이 생각하는거지.
- 근데, 난 마술하는 줄 알았는데

약간 실망해서 안드류샤가 말했다. 안드류샤의 집에서는 안드류샤에게 사샤 아저씨네서 오늘 공부하는데 마술을 보여 주실 거라고 이야기했던가보다.

- 마술도 있을거야.

- 라고 말하면서 나는 서론을 접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것이 첫번째 과제였다. 나는 책상에 8 개의 단추를 놓았다. 내가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아이들은 함께 단추들을 세기 시작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수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개념은 아이들에게도 있는 게 분명했다. 수학이란 세면서 생기는 것이니까. 소란이 잠잠해지고서야 본격적으로 과제를 낼 수 있었다.

- 자 그렇담 이제 책상에 같은 양의 동전을 놓아 보아라.

이제 책상 위에는 8개의 동전이 더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동전들과 단추들을 나란히 두 줄로 세워서 그것들이 서로 마주 보게 놓았다. 나는 물었다.

- 뭐가 더 많니, 동전이니 단추니?

아이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곧장 뭐라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더 많은 건 없어요.
- 즉 똑 같다는 말이구나. 말하고서 – 그러면 이제 한번 보렴. 내가 뭘 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동전의 줄을 움직여서 그것들이 더 길게 늘어 서 있도록 간격을 넓혀 보았다.

- 자 이제는 뭐가 더 많니?
- 동전, 동전이 더 많아요!

아이들이 합창하듯 일제히 소리쳤다. 나는 뻬쨔에게 단추들을 세어 보도록 했다. 우리는 이미 네 번이나 단추를 세어보았지만 뻬쨔는 내가 낸 과제에 조금도 놀라는 기색없이 다섯 번째로 단추들이 몇 개인가 세어보는 것이었다.

- 여덟 개요.

지마에게 동전이 몇 개인지 세어보게했다.

- 역시 여덟개요.
- 역시 여덟개라고? – 나는 목소리로 강조해서 말했다. – 그렇다면 그것들은 똑같네?
- 아니에요, 동전이 더 많아요!- 아이들은 확고하게 드러내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대답이 나오리라고 나는 미리 알았다. 이 과제는 스위스의 위대한 심리학자인 장 피아제(«피아제 현상»에 대해서는 다음 단원에서 조금 이야기 된다)가 자신의 실험에서 실험대상자인 아이들에게 했던 수많은 과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실험을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 어린 아이들은 당신이나 나 같은 어른들에게는 명쾌해 보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만약 어떤 물건들을 어떻게든 다르게 놓아보고 움직여도 그 수량은 안 변한다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도 무슨 일인지 그에 따른 그럴듯한 반응을 준비하지 않았다. 독자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반응을 했겠는가? 여러분들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p.18

안타깝게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대다수 어른들이 주로 하는 방식은 있는 힘껏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이해시키려고 한다. «저런, 어떻게 그렇니 ! – 놀란체 하면서 어른들은 말한다. – 어떻게 동전들이 더 많을 수가 있어? 우리는 다른 동전을 더 놓지 않았잖니! 동전을 더 늘려 놓았을 뿐이잖아. 그게 다란다. 봐, 조금 전에는 동전하고 단추하고 똑같았잖아. 너희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니! 절대 더 많아 질 수 없다는 말 아니겠어. 당-연-히 (또박또박 끊어서 말하면서), 동전과 단추들은 똑같은 채로 그대로지!»

노력해봤자 얻는 건 없다. 그런 교육방법은 어디로도 이끌지 못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 뿐이다. 무엇보다, 당신의 논리가 무언가 아이를 믿게하리라고 바라지 말아라. 아이는 수량이 보존된다는 법칙보다도 더 나중에서야 논리적인 구조들을 깨닫는다. 수량 보존에 대한 것들을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해봐야 아이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다. 납득되는 것이라고는 당신의 목소리 억양 뿐이다. 그것을 통해서 아이 자신이 또 틀렸고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느낌만을 아이에게 줄 뿐이다. 아이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당연시 여기는 것을 꺽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 자신의 이성과 관찰력으로 판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강요한다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추측하려고 애쓴다. 대체로 어른들은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요구들을 잔뜩 해댄다. 왜 벽에 그림을 그리면 안되지, 놀이가 한창 재밌어지는데 왜 자러 가야 하는거야, 왜 «저 아저씨 언제 집에가요?» 하고 물으면 안 되는 거지. 바로 지금도 그와 유사한 무언가가 벌어지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동전이 단추보다 더 많은 것이 확실한데 왜 그것들은 똑 같다고 대답해야 하는거지. 정해진 순서대로 특정한 주문(呪文)을 외어대어야 하는 무슨 의례처럼 수학을 대하는 태도는 학교에서 생겨서 대학까지 거뜬히 계속 살아간다. 이러한 현상은 심지어 수학과 학생들에게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만약 아이들의 대답에 무언가 말해 줄 수 없다면 아예 질문조차 해선 안된다는 말인가 ?

그 반대다. 물어보는 건 마침 필요한 거다. 아이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그렇담, 줴냐, 넌 어떻게 생각하니? 그럼 너는, 빼쨔? 왜 그렇지? 동전이 얼마나 더 많아졌니?» 심지어 아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관점도 드러 낼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말이지», «아마도 말이야»와 같은 표현들을 잘 섞어 가면서 아주 조심스럽고 유연하게 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유일한 정답을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데 어른 자신의 권위를 쓸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해낸 탐색과 노력이 얼마나 중요하고 값진 것인가를 아이 스스로 믿게 하는데 써야 한다. 하지만 훨씬 흥미로운 건 아이 자신의 생각 속에 모순이 있다는 걸 일으키는 거다.

- 그렇담 다시 똑같게 하려면 몇 개의 동전을 집어와야 하지?
- 동전 두 개를 집어내야 해요.

두 개의 동전을 집어낸다. 세어본다. 단추는 여덟 개, 동전은 여섯 개이다.

- 자, 이제는 뭐가 더 많니?
- 이젠 똑같아요.

아주 훌륭하다. 나는 다시 동전들을 더 넓은 간격으로 줄 세우고 똑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제는 이미 여섯 개의 동전이 여덟 개의 단추보다 더 많아 보인다.

- 왜 동전이 더 많아졌지?
- 왜냐하면 동전들을 넓게 정렬시켰으니까요.

우리는 다시 두 개의 동전을 집어낸다. 그리고 또 다시 그렇게 한다. 마침내 그림은 그림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되었다.

그림 2


이 때 갑자기 불꽃 튀는 토론이 시작된다. 한 쪽의 아이들은 여전히 동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반면 다른 아이들은 갑자기 단추가 더 많은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멈추고 다른 과제로 넘어갈 바로 그 시간인 것 같다. 그 다음은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주자.

p.19 . L

여전히 동전이 더 많다고 말한 얘들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 모두에 그저 동의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생각도 않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 앞의 경우들에서도 그렇게 옳았으니까(다시말해, 아빠가 옳다고 해왔으니까.), 마지막 번에도 역시 내 의견을 바꿔야할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 지마.

이 모든 의견과 착상들이 단박에 들진 않았으니 이야기하면서 내가 앞질러 갔던 셈이다. 그 후에 고민하고 이어진 수업을 통해 깨달은 바이다. 이 과제는 다른 모습들로 여러번 우리에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 있었다. 서로 이길 수 없는 두 개의 군대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군인들 수가 같았기 때문이다. 그 때에 이들 중 한 군대의 군인들을 더 넓게 정렬시키자 그 군대의 군인들은 수가 더 많아졌고 다른 편의 군대를 이기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후 다른 편의 군대 역시 그보다 더 넓게 군인을 정렬시켰고 이런 식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의 상상에 맡길 수 있다.) 또 부라티노[1]가 있었다. 여우 알리사와 고양이 바질리오가 다섯 개의 금화를 늘려 세워 금화가 더 많아졌다고 주장하면서 부라티노를 속이려고 했다. 손쉽게 승리하리라고 기대 않는 것을 나는 배웠다. 어쨌든 2-3년이 지나기 전까지 여러분들이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아이들은 수량보존의 법칙을 익힐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게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확신컨대 이렇게 서둘러 배운 지식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이란 조산으로 얻는 유익함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일어날 것을 추월할 필요없다. 지성을 키우는 분야에서도 그렇다. (여기서 어느 정도 선동적인 형식으로 내 관점을 말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할 논거들은-이것은 작지 않다- 이어지는 이야기에 풍성하게 널려있다.)그러나, 반복하건대, 이 모든 생각들은 이후에야 떠 오른 것들이다. 첫 번째 수업이 있던 날은 «설명»하기에 바빠서 어떤 직관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고 그저 다음 과제로 넘어갈 뿐이었다.

p.19. R

책상 위에는 여섯 개의 성냥개비가 있다. 그것들을 가지고 나는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보고 아이들에게 차례로 성냥개비가 몇 개인지 세어보게 했다. 매번 성냥개비는 여섯 개였다... 아니, 나는 너무 스콜라적인 사고에 매혹 되어서 공식적인 어투로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자, 생생한 아이들과의 수업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실제로는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매번 성냥개비를 센 새로운 결과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함성과 기쁜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안드류샤와 줴냐는 항상 여섯 개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미 지마는 어느 정도 невежливо 내 손에서 성냥개비를 빼 내어 자신이 직접 어떤 재미있는 모양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반대로 빼쨔는 아주 공손하게 나에게 물어본다. 성냥개비를 더 줄 수 없느냐고. 조금 더 있다가는 이들의 즐거움은 제어할 수 없는 어린이들의 장난으로 변하고 만다. 아이들을 어떻게든 진정시켜야만 한다. 안드류샤와 줴냐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다 («왜 항상 여섯 개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이 때 주의할 것은 그들이 다른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마침 지마는 성냥개비로 입체 모형을 만든다 (그림 3의 우물을 보라). 나는 지마가 만든 우물 모형에 모든 아이들이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다. 이번에는 심지어 안드류샤와 줴냐마저 또 여섯 개라고 굳게 확신하지 못한다. 성냥개비를 세기란 아주 어렵다. 우물은 계속 망가지고 만다. 우리는 우물을 다시 쌓고 다시 세어본다. 그러면 우물은 다시 망가지기를 반복한다... 마침내 지마는 성냥개비가 일곱개라고 말한다! 모두들 약간 미심쩍어하지만 어느 누구도 특별히 강한 놀라움을 표시하지 않는다. 일곱 개라면 일곱 개인거지. 조금 이상하긴 해도 말이다. 이미 앞에서 말한 바이지만, 다시 반복해서 말한다.

p.20. L

나의 교육학적 과제는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확정된 진리를 알려 주는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훌륭한 결과는,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바이기도 한데, 아이들 중 누군가가 며칠(또는 몇 달)이 지나서 갑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성냥개비로 우물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성냥개비가 모두 몇 개인지 세어보는 것이다. 그냥 궁금해서. 그냥 정말로 몇 개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작지만 독창적인 연구가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다음 번에, 다른 과제와 함께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 된다. (나중에 나는 정말 그런 일들이 여러 번 일어났던 증거를 적지 않게 가질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단지 «정말 흥미롭구나!», «훌륭해!»와 같은 유형의 이야기만 해 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더 굳게 박힐 수 있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p.20. L

아이들의 기억력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여기에서 더 이후에 일어났던 한가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아와 수학 : 서론 | 제1장 | 제2장 | 제3장 | 제4장 | 제5장 | 제6장 | 제7장 | 제8장 | 제9장 | 제10장 | 맺음말


Note

  1. 이탈리아의 이야기에서 착상하여 소련의 작가 알렉세이 똘스또이(1883 - 1945)가 지은 동화 "황금 열쇠 또는 부라티노의 모험"의 주인공. 영화와 연극들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