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28-1
- 수영장을 갔더니 수영대회라고 못들어갔네. 그냥 돌아오려니 맘먹고 나간게 있어서 그리 않고 해운대 쪽으로 빙 둘렀지. 아름다운 가게를 들러 보았는데 헌옷 중심으로 바뀌었더군. 책과 LP는 다 빠지다시피 했고 옷은 밖으로 까지 옷걸이 끌고 나갔네. 서면 아름다운 가게는 사라졌더니, 아름다운 가게도 아름답고 말 것인가? 기부 문화도 시장 제도 안에서는 어떤 흐름 속, 한 기어로 돌고 돌아야 할 터이지.
- 해운대 바다에 나온 사람들 장난질이 보기 좋았네. Westin Chosun비치 호텔 앞 난간에 앉았네. 두 발을 바다쪽 바위 무더기 아래로 흘려놓고. 흔들 흔들 물결 따라 흔들어 보았지. 아이건 어른 이건 바위 속 물에 발을 담그고 무언가 열심히 줍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언지 나는 모르겠네. 재미삼아 진리를 찾고 있었던 거겠지.
- 만약 사랑이라는 게 있고 증오라는 것이 있고, 그와 비슷하게 + 적인 감정들과 - 적인 감정들이 있다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그런게 있다면, 또는 어떤 감정에 대하여 그런 이름의 옷을 입힐 수 있다하자. 한 개인 삶을 총체적으로 보았을 때, + 적인 감정들과 -적인 감정들의 합은 0일까? 한 사람에게는 0이 아니더라도 한 사회에서는 그 모든 합이 0이 될까? 최소한 어느 주어진 시기 주어진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공간과 시간을 넓혀가다보면 결국 0이 되는 것은 아닐까?
- 문제를 바꾸어 보자. 앞에서 '단순합' 이라는 감정의 연산 대신, 어떤 연산일 때, 한 개인의, 한 사회의, 한 시대의, 모든 역사의 감정 상태가 0이 될까? 그 함수
이 되는 함수구조는 무얼까? 존재하기는 할까?
-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하느님이라 부른다.
- 위의 함수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이나 노자의 도덕경에 쓰인 문구나, 주역의 '궤'를 통한 세계 이치 해석도 거부해야 마땅하다. 또한 읽을 시가 없고 볼 그림도 없고 들을 음악도 별로 없다. 예술은 상상과 해석에 따라 수용되기 때문이다. 수학적 기호도 예술이나 언어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이해할 언어로서 정의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수고스런'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2진법, 64궤로 세계의 이치를 풀어낸 것에 비하면 수학은 그보다 더 정밀해지고 있다.
- 물론 이것이 수학의 우위성을 말한다거나 수학이 진리를 대변한다는 것은 아니다. 직관과 해석을 통해 진리를 미루어 짐작한다면 그 대상으로 수학적 기호의 움직임도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수학은 박제화된 무엇이 아니다. 대신 수학에는 '경'이라고 할만한 책이 아직 나오지 않은건가? 너무 기술적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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