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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ha (토론 | 기여)님의 2006년 11월 3일 (금) 13: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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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여 학생독립기념일고... 오늘은 윤이상 선생님이 지난 95년 78년 지상의 삶을 마치고 돌아가신 날이다. 그 분은 음악을 통해 지고지순한 마음 속의 이야기를 하였지만, 현대음악을 풀어 말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 분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는 [나의 남편 윤이상 상,하]가 있다. 부인 이수자 님께서 썼다. 여기에는 사랑편지, 생활 이야기 들이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면 만감이 소용돌이 친다. 윤이상 선생님은 아내와 가족, 벗과 제자들, 고향, 조국을 사랑하였던 분이었고, 음악을 사랑하여 음악 언어로 아름다움과 세계관을 표현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중 '책을 내면서' 라는 서문 격에 해당하는 글 중 조금 옮긴다. 이수자 님과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윤이상 선생님도 계시지 않을 것이라 여겨져 그 분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편협하다. 그래도 여기서는 그 분에 관한 글만 주로 싣는다.



윤이상은 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택한 길을 걸었습니다. 집을 나가 방랑하고, 일제에 쫓기어 투옥되고,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전쟁고아들을 양육하면서20년이란 긴 세월을 민족의 수난과 더불어 보냈습니다.

그러다 나이 사십이 되어 비로서 자신의 초지(初志)의 길을 걷기 위하여 유학의 길에 올랐습니다. 가족을 두고 간 가장으로서, 그는 망향과 고독과 싸우며 학비 마련에 고생하면서도, 그러나 어떠한 고난에도 확고한 신념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세계 음악계에 진출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만학(晩學)의 어려움에 대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꽃의 종자는 한번 땅에 떨어지면 아무리 가물거나 비바람이 쳐도 또는 발에 짓밟혀도 늦가을에나마 끝내 한번은 피고야 마는 법이오. 그 꽃은 제철에 피는 꽃처럼 찬란하지는 않지만 송이송이 무질서하게나마 그래도 아름다움이 있소. 나는 이것을 항상 생각하오. 나의 꽃은 언젠가 한번은 피리라, 그 꽃을 보고 그리고 그 꽃의 종자를 여기에(유럽땅 위에) 뿌리고 돌아갈 것이고."

...

4월 혁명의 소식을 듣는 순간 그는 라디오 앞에서 통곡하였습니다. 조국의 명줄기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청년들의 가슴속에 아직도 정열이 남아있음을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또 그들이 흘린 피가 아까워 오래도록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조국의 민주화와 민족의 화합을 위하여 분신자살한 학생들의 고귀한 죽음이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에 "그 청춘들을 위하여 진혼곡이라도 쓰지 않으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고 하며 그는 마지막 힘을 모아 교향시'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를 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썼습니다. "역사의 긴 안목에서 볼 때 민족은 창공과 같이 영원한 것이고, 정권 이념 사상은 활엽수와 같다."

병의 고비가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그는 말하였습니다. " 당신을 두고 내가 어찌 간단 말이오.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을 데리고 가고 싶소."

그는 나의 모든 것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후대들에게 많은 것을 남겨놓고 간 이상, 나는 평생을 살아온 아내로서 그의 발자취를 역사에 남겨야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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