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231-1

DoMath
211.249.225.76 (토론)님의 2006년 12월 31일 (일) 21:18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어울려' 게시판에 오늘 낮 이렇게 썼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마음만 소요하고 왔다. 몸은 조금있다 나가야지. 마음만 먼저 보내놓았다.

해가 산 너머로 질 때 즈음, 어제처럼 오후에 나가 보련다. 올 한 해 많이 다녔던 길을 다시 걸어보는 거지. 어제는 바다 옆으로난 산길에서 달아올랐던 태양이 뻘겋게 되면서 산과 산 너머로 넘어가는 광경을 내내 보고 서있었다. 바다로 튀어난 바위 위에서. 오늘도 거기 그 때 즈음 서 있다가 걸어 내려가 해운대로 수영만으로 돌아다니려고.

틈틈이 집안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있다. 쌓인 먼지를 닦고 때절은 데 북북 문지르다보면 거기 겹겹이 쌓인 내 마음 속의 때를 본다. 그것들은 이름을 받지 못한 채 거기 그대로 쌓여 있다. 올 한 해는 여느 해보다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12월 마지막 날들에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천장을 스크린 삼아 기억의 영사기를 돌려보았다.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음을 깨달아 슬퍼졌다. 만났는데도 만나지 못했음은 서글픈 사연이었지만, 그 사연의 주인공이 '나' 였기 때문에 울지도 못했다. 한 해 더 살아보자.

슬프거나 기쁘거나 그건 그게 그거 아닌지 싶다. 서글퍼지지 않았다면 기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울지 못해서 울음이 나왔다. 그런 것을 아름답다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간 세월이 있어 아름다울 수 있다니.

계곡에 물이 쿨쿨쿨 흐르는데 맑은 물 속에 작은 물짐승들이 한가롭다. 산은 잎을 부풀려 꽃처럼 피어났고 가지를 다 떨어뜨리고 앙상해지고 나니 눈이 소복하게 쌓이기도 했다. 서울 강남의 밤의 불빛들과 이름을 잊어버린 숙소들.

사마르깐드, 부하라, 니사, 히바.

백두산에서 돌아와 한 해가 시작했고, 지나간 사진과 편지를 불살으면서 한 해가 시작했고, 동서로 여행을 다니면서 길에서 한 해를 시작했고, 이별하고 만나면서 한해가 시작했다.

봄 꽃이 필 때 사람들을 만나고 미산 계곡을 다니기 시작했다. 산 속이건 도시건 밤엔 촛불이나 모닥불을 켜 술을 마셨다. 올 봄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름은 더웠다. 그래서 차가운 물가에서 보냈다.

가을이 오자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글을 썼다. 집에 진득허니 앉아 있었고 덕분에 몸 구석구석이 삐그덕 거렸다.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 않았다.

몇 권의 책과 몇 개의 음반, 수백 편의 영화, 잡다한 글자들이 올 한 해 나의 벗이었다. 낮과 밤의 짧은 만남들과 대화들이 올 한 해 나의 벗이었다. 거기 '나'가 없었거나 제대로 있었다면 천장 위로 물방울들이 느릿느릿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올 한해가 갔으니 벗들도 다 떠났다.

태양이 지면 올 한 해를 툴툴 털어 보내려고 한다. 하늘은 봄이나 겨울이나, 낮이나 밤이나, 어제와 내일이 다르지 않을테지만, 나의 어제와 나의 내일은 같으면서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털어낸 자리에 다시 새들이 날고 먼지들이 따라와 날아들테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새 해의 일은 새 해에 생각하기로 하고, 그만 낙서하려했는데, 기어이 마지막 날 몇 자 적게 되는구나. 오늘 내일 쉬고... 완전히 새로 format 하고 다시 install 한 것 처럼 말끔한 마음으로 일하러 나왔을지 모르는데, 지나간 이야기를 했으니, 좀 케케하다. :)

내일 새벽 해가 떠 오르는 걸 집 가까이서 보고 바로 가족에게 날듯 가야겠다. 다녀와서 새 해에 보자.



나오는 대로 식은 국수 빨듯 후루룩 써버리는 데라 써놓고 고치지 않는다. 그래도 일 년을 되돌아보는 글인데, 일기가 아니더라도 저렇게 써 둔 걸 보니 조금 고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렇게 고친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마음만 소요한다. 마음만 먼저 내보냈다. 몸은 기다려 할 일이 있다. 해가 산 너머로 질 때 즈음, 어제처럼, 나가 보련다. 올 한 해 다녔던 길을 다시 걸어보는 거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길을 걸었다. 나무 사이사이 길 바로 옆으로 기차 길이 있고 철책이 있고 그 너머 바다가 일렁인다. 가까이엔 조그만 배들이 통통통 소리를 낸다. 까마득히 멀리엔 장난감 같은 배들이 수평선을 따라 서 있는 듯 다닌다. 눈도 너무 추우면 파랗게 되듯 태양은 달구어져 하얗게 된다. 어제 그 즈음, 태양은 뻘겋게 핏줄을 보이면서 산과 산 너머로 넘어갔다. 어미 뱃속으로 되돌아가는 광경을 내내 보고 서있었다. 바다로 튀어난 그 바위 위에 서서. 오늘도 거기 그 때 즈음 서 있다가 내쳐 걸어 내려가련다. 해운대로 수영만 방파제 둑길로 쏘다니련다.

틈틈이 집안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있다. 쌓인 먼지를 닦고 절은 때를 북북 문지른다. 거기 겹겹이 쌓인 마음 속의 때를 보지만 닦이지 않는다. 나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어 왔고 내 살아오면서 굳을대로 굳었다. 이름을 받지 못하여 거기 그대로 쌓여 있다. 여느 해보다 올 해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이미 만난 사람들로 내 깐에는 새롭게 만났다. 12월 마지막 날들에 그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내어 보았다. 천장을 스크린 삼아 기억의 영사기를 돌려보았다. 고맙게도 나와준 이들을 보며 흐뭇했다. 하지만, 자막이 오를 때 즈음, 결국 아무도 만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이른 아침 이불에 누워서도 슬펐다. 만났는데도 만나지 못했으니 서글픈 사연이었지만, 그 사연의 주역이 '나' 였기 때문에 부끄러워 울지도 못했다. 한 해 더 살아보자.

만남이 없었으니 이별도 없었다. 슬프고 이내 부끄러웠어도 울음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그게 그거 아닌지 싶다. 서글퍼지지 않았다면 기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울지 못해서 울음이 나왔다.

지나간 세월이 있어 아름다울 수 있다니.

계곡에 물이 쿨쿨쿨 흐르는데 맑은 물 속에 작은 물짐승들이 한가롭다. 산은 잎을 부풀려 꽃처럼 피어났다. 그 길을 걸으며 취해 비틀거리기도 했지. 그 나무들, 여름에는 후끈한 땀이 내고는, 잎을 다 떨어뜨리고 가지는 앙상해지더니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봄에 부는 바람에 파란 점들이 되어 마당으로 솨-아 솨-아 떨어져 내릴 때 눈을 감고 하늘을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강화도에서 맞던 눈보라, 안면도의 아침, 야밤 도시 불빛들과 미끈한 숙소들. 기억이 가물거린다.

사마르깐드, 부하라, 니사, 히바의 흙냄새.

백두산에서 돌아와 한 해가 시작했고, 지나간 사진과 편지를 불살랐고, 길을 떠다녔고, 이별없는 만남들, 만남없는 이별들로 한 해가 시작했다.

봄 꽃이 필 때 사람들을 만나고 미산 계곡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당을 쓸었고, 다음 번엔 나무를 날랐고, 풀을 베었다. 모닥불을 지폈고 나무토막을 도끼로 팼다. 산 속이건 바다가건 밤엔 촛불이나 모닥불을 켜 술을 마셨다. 올 봄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올 여름엔 많이 웃었다. 여름은 더웠다. 차가운 물에 들어가 벌벌 떨었다. 밤엔 술을 마셨다.

갑자기 가을이 왔다.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기왕 하는거 글을 썼다. 덕분에 집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했다. 몸 마디마디가 삐그덕 거렸다.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 않았다.

몇 권의 책과 몇 개의 음반, 수백 편의 영화, 잡다한 글자들이 올 한 해 나의 벗이었다. 낮과 밤의 짧은 대화들이 올 한 해 나의 벗이었다. 자전거가 나의 벗이었다.

'나'가 없었거나 제대로 있었다면 천장 위로 물방울들이 느릿느릿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올 한해가 갔으니 벗들도 다 떠났다.

태양이 지면 올 한 해를 흘려 보내려 한다. 하늘은 봄이나 겨울이나, 낮이나 밤이나, 어제와 내일이 다르지 않을테지만, 나의 어제와 나의 내일은 같지 않다.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흘려보내고 난 자리에 다시 새들이 모여 날고 먼지들이 따라와 날아들 것이다. 물짐승들이 즐거워 한가로이 헤엄질테고 봄에는 파란 잎이 가을엔 빨간 잎이 그리 떨어져 흐를 것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그 이들 이름을 하나둘 다시 불러본다.


ParhaDiary      오늘 쓰다      오늘 그리다       오늘 우리말       오늘 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