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215

DoMath
Parha (토론 | 기여)님의 2007년 2월 15일 (목) 14: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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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작가 최민식의 책이 새로 나왔다. 용두산 전시장 전시회에 간 김에 사진첩과 함께 사 읽었다. 예전에 쓴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과 겹치는 부분도 꽤 있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과 함께 엮어 나왔다. (도서출판 예문의 우리시대 마이스터 시리즈 중 하나다.) 마음에 남는 부분들을 옮겨 되새김질한다. 강조한 부분은 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했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새 책, '진실을 담는 시선'

예정된 만남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자주 말했다. 빈센시오 신부의 정신을 따르거라. 앞으로 살면서 돈 벌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라. 그림을 그리게 되거든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어라.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을 보살필 수 있는 예술가가 되어라.


그 작은 농토에서 지은 벼를 지주에게 바치고 나면, 우리 여섯 식구는 반년이나 먹을까 말까 한 식량으로 일 년을 먹고살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 평안남도 진남포에 있는 미츠비시 마그네슘 회사의 기능자 양성소(중학과정)에 들어가 2년 후 졸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 후 바로 보내진 곳은 일본 군수공장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에 아연실색했다. 무엇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 일본 군수공장에서 내 삶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었다. 고로운 날들이 하루 이틀 이어졌다. 그렇게 1년 반을 지내고 희망이 꺽일 무렵,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었다는 눈물겹도록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나는 운이 좋은 군인이었다. 가끔 독서도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었다. 부인이 도쿄에서 음대를 나온 부대장은 클래식 음반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음대 재학 중 입대한 전우와 함께 일주일에 두어 차례 부대장 집에 초대받아 음악을 감상하고 곡에 대한 해설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클래식광이 되어 현재 2천 장이 넘는 LP판을 가지고 있다.)

제대 후 부산에 머물고 있던 나는 처남과 부산 진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갈수록 미술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며 지낸다는 게 너무 큰 고통이었다. ...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던 나는 1955년 일본으로의 밀항을 감행했다. 달도 어두운 어느 밤, 부산 영도의 해변에서 16명의 밀항자와 함께 정해진 어선에 올라 탔다.

To walk to the paradise garden by Eugene Smith

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야간부 일본 친구들과 리어카를 하나 장만해 폐품을 모아 팔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돈이 생기면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헌책방이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하나둘씩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사진집 "인간가족"과 만나게 된 것이다.

"인간가족"은 미국현대미술관의 사진 담당 디렉터였던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1955년 전 세계에서 200만 점의 사진을 모아, 그 중 68개국의 유명 무명 사진작가 273명의 사진 503점을 최종선정하여 전시한 기획사진전 '인간가족전'에서 선보인 사진들을 편집하여 엮은 책이다.

카메라로 쓰인 성서, 인류라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인간가족"은 지구 어디에도 같은 인간은 없으나, 어디에서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가족전은 교훈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라 신을 향한 인간의 고백이며,.. 그 이후 디자인 공부는 멀리 하고 독학으로 사진에 매달렸다. 폐품 수집을 하여 모은 돈으로 중고 카메라를 구입했고 "인간가족"이 던지는 메시지를 육화시키면서 생활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삶의 진실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60년 어느 날 신문에 난 모집광고가 내 눈길을 끌었다. 한국 자선회(후에 '소년의 집'으로 개칭)에서 사진사 한 명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소 알로시에 라는 미국인 신부가 세운 한국자선회는 전쟁고아나 가난 때문에 가정에서 자라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양육하는 단체였다. 한국 자선회는 한국의 어려운 실상을 미국 국민들에게 알려 원조금을 모금해 운영비를 조달하고 있었다.


소 알로시에 신부를 처음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성당에서 한 수녀에게 소 알로시에 신부를 만나로 왔다고 하자 수녀가 손끝으로 저기를 가보라며 가리켰다. 수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언덕 위에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이 보였다. 이럴 수가, 신부가 이런 곳에서 살다니. 방에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좁아 보였다. 방안에는 작은 침대와 책상, 타자기 한 대만 덜렁 있을 뿐이었다.


나는 가난을 찍은 게 아니라 가난에 처한 사람들을 찍었다. .. 소 알로시에 신부와 함께 한 한국자선회 시절은 내 사진의 방향을 굳건히 해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고발한다

... 권력자들은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봉쇄해버리는 유치한 수법을 썼다.... 하지만 나는 계속 걸었고, 언제나 카메라와 함께 있었다. 그 길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카메라로 사람들을 찍었다. 사람들은 가난했고, 나는 그들을 찍었다. 나는 없는 길을 간 것이 아니었고, 없는 사람들을 찍은 것도 아니었다. 나와 함께한 카메라는 애당초 없는 것을 찍지 못했다. 나는 계속 권력자의 앞으로 불려 나갔고, 자는 중에 소란스레 찾아온 형사들의 구둣발이 내 집을 더렵혔다.


창작이란 근본적으로 침묵 속에서 고독한 작업이지만, 일단 발표된 작품 소란스런 외침이나 선동적인 웅변보다도 훨씬 크고 넓은 감동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남들이 모두 침묵할 때 사진을 통하여 증언하고 목격하는 사람이 바로 사진가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사진을 감상하는 것은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세상을 고발했고 거기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희열을 맛보기 위해 괴롭힘 속에서도 그런 외적 요소에 굴하지 않았다. 사진은 내 안에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끝없이 노력했을 뿐이다.


베토벤은 이미 21세에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했고, ...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원근감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는 충고를 듣게 되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나는 시인했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이 기술적으로 아무리 완전하고 톤과 명암의 구도가 뛰어나다 해도 내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내 사진의 주인공은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모습을 가장 이상적으로 담기 위해서는 배경이 객관화되어 등한시될 수밖에 없다. .... 현실은 아름답지 않다. 리얼리즘. 그것이 홀 안에서 공명하는 내 심포니의 실체다.


왜관에 상징적인 외국기관이 두 곳있다. 하나는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을 위한 정비기지창이고 또 하나는 이 기지창과 벽을 맞대고 있는 독일에서 파견된 성 베네딕토 수도원이다. 로마 카톨릭에 속한 성 베네딕토 수도원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수도원으로 철학과 신학을 비롯한 고전적 학문 연구로도 업적을 쌓았지만,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면에서도 오랜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특이한 수도원이다. 포도 재배와 포도주 만들기, 소시지 제조, 목공, 출판 인쇄 분야에서의 기술 수준은 당시 한국의 여건과 비교했을 때 단연 뛰어난 것이었다. .. 분도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고 "인간" 4,5,6,7,8 집이 분도출판사에서 연이어 출판되는 기쁨을 만끽했다. 아마도 나에게는 이때처럼 행복했던 때가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분도에서 출간된 것 중에는 두 권이 판매금지당했으며 두 권은 부분 삭제 되었지만, 나로서는 큰 수확이었으며 내 사진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내 사진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것인가, 사진이라는 수단을 통해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그리고 사진은 나를 위하여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를 자문하면서 진지하게 셔터를 눌렀다. ... 내 몸 자체가 카메라가 되어 살고 싶었다. ... 나에게는 언제나 민중이 사실이고 현실이었으며 국가였다. ...


시대는 사진 작가들에게 어떤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요구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진작가마다 고유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사진 작가의 철학이다. 찍는다는 것은 바라본다는 것이고, 바라본다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 시선을 결정하고 ..대상을 좇아 ..지구 어디라도 찾아간다. ..

세상에는 언제나 정의가 모자란다. 둘러보면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정의와 올바름을 배고파하고 있다. 사진이 고발할 수 있고 해야만 할 현장은 도처에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을 수는 없기에 리얼리즘 사진은 중요하다. 오늘날 사진이라고 하는 예술에 위기가 닥친것은 바로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형식에만 급급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는 자기주장이 강한 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남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사진은 헛수고이고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것이며 전달할 내용이 없다는 뜻이다. ... 시선을 멎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소재들 중 어떤 것을 강력하게 자기 정신 속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보다 더 미칠 수 없다면 사진을 포기하라는 한마디뿐이다. ...


무엇보다 흑백사진은 깊은 질감을 나타내는 데 탁월하다. .. 화면의 어두운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보는 이의 시선을 작가가 원하는 곳으로 집중하도록 ... 조리개와 셔터의 속도로 빛이 들어오는 양을 조절해 다양한 명함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확실한 주제를 선택해 농담의 미묘한 차이를 살리면서 알맞은 화면을 구성한다면 훌륭한 흑백사진을 만들 수 있다. ... 빛과 그림자의 구도이다. 그래서 ...촬영부터 현상까지 사진가가 모든 과정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흑백의 어둠 속에서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된 low-key (노출을 줄이거나 인화지에 적정치보다 많은 빛을 쪼여 어두운 색조로 만는 사진)은 중후하고 고전적이며 때로는 음울한 느낌을 표현한다. .. 콘트라스트 역시 중량감 있는 표현에 적합하며,... 내 작품들이 흑백인 이유는 사진의 형식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작품에 담긴 그 어려웠던 시대는 애초부터 잿빛이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고발했다. 흑백으로 잿빛의 진실을.

사진은 철학이다

사르트르는 "예술은 대중에의 호소"라고 했다.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진실한 예술에는 음악이나 사진이나 할 것 없이 투철한 사명감이 필요하다. .. 작품은 혼신을 담아, 표현하려는 대상을 심미적으로 관찰하고 최고의 순간을 담기 위해 자기 몸을 태울 때 얻을 수 있다.

사진은 재현의 예술이 아니다. 탐색의 예술이다.... 머릿속에서 상상만 한다면 좋은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진의 소재들이 어디서 꿈틀대고 있는지 동물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격의 순간, 실수 없이 잡아내야 한다. 'One shot, one kill'

대상이 있는 곳에서 대상을 담아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리라.

마음이야 말로 카메라의 진정한 렌즈이기 때문이다.

워너 비숍도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할 일은 세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구석까지 인간 생활을 거짓없는 모습으로 사진에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가가 자신의 내면, 즉 사상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아무 가치가 없는 인형에 불과하다"

한 점의 인물 사진은 그냥 적당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끝없이 사라져가는 우리 인간들 삶의 단편들을 고스란히 담는 성스러운 작어니다. 한 장의 사진에서 인간 삶의 조각들이 엿보일 때 사진을 보는 감동이 살아난다.


나이가 들어도 자꾸 다시 보게 되는 밀레의 '만종'. 그 안의 농부는 자비로운 표정에 불만이 없어 보인다. 그의 남루한 옷차림 어디에서도 인간의 추한 욕망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그저 텅 빈 광야를 안고 있을 뿐이다. 타오르는 석양 속에 조용히 서 있을 뿐이다. 단지 감사와 축복의 기도가 가의 전부였으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건 내가 좀더 성장한 뒤였다.

밀레는 전원에서 농사일을 손수 해보았다. 단순히 바라보고 스케치하는 그림이 아니라 치열하게 몸소 겪으면서 몸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보는 순간 공감을 자아낸다. 그 안에는 숭고함과 엄숙함이 녹아 있다 .가볍기만 한 기쁨의 빛은 한 줄기도 보이지 않는다. .. 19세기 프랑스 화단에서 비관주의자들의 수호성인이었으며... "나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 건 본 적도 없다. 내가 경험한 가장 밝은 인생에는 평정과 침묵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저 본 것을 알기 쉽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얘기하려는 것뿐이다" 라고 밀레는 말했다.


어떤 할버니가 큰 호박을 몇덩어리 이고 오는 모습에 옛날 시골 생각이 난다. 돌담 양편에서 호박 덩굴은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이 주렁주렁 매달리다. 그저 필요하면 호박을 따고 전을 부쳐 담 너머로 나눠주던 따듯한 정은 이제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다할 성전이나 교조도 없이 수천년 동안 한 세계를 지탱해온 힌두교의 힘은 끝없는 포용성에 있다. 시바신과 같이 모순된 성격을 함축적으로내포하는 바로 그 점이 힌두정신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점이라 할 수 있다. .. 화장은 자신의 시신에 대한 진실을 못 보도록 방해하는 幻 을 태워 없애는 성스러운 일이다. ... 힌두교는 결코 '인류'를 포용하려는 의지를 가진 종교가 아니다. ... 그 안에 속한 무한히 많다. 더욱이 시바와 같이 신심을 모으는 신은 천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복잡한 가운데서도 조화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심지어는 다른 종교의 신들도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면 그 신을 숭배한다. ... 비록 절대저긴 빈곤이 생을 짓눌러도 그들은 카르마를 굳게 믿고 운명의 굴레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고도 모자라 농사만 짓던 가난한 노인이 평생 모은 돈으로 성지 바라나시로 가 갠지즈 강에 자신의 몸을 태운 뼛가루를 부리고자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외부인인 내가 절감하는 빈곤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다른 의미였다. ...


인도. 내가 그들을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보았던 나라다. 그 불가사의한 포용성에 압도되어 내 시건조차 그들의 것이 되었을 때 나는 인도를 제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네팔을 다녀와 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그들은 아예 마음을 비우고 사는 사람들 같다. 물질적인 행복은 불행을 가져온다고 믿는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신적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 새까맣고 맑은 눈동자일 것이다. 아마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그들이기에 영혼의 창인 눈이 그렇게 맑은 게 아닐까 싶었다. .. 이들에게 화는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하는 현상일 뿐이다. 오늘이 있으면 내일이 있고 또한 모레도 있다는 식의 사고 방식을 지니고 있다. 거리를 거니는 네팔인들의 느린 걸음을 보면 '느린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그곳의 생선장사 아주머니들과 함께 늙어왔다고 할 수 있다.

카메라에 인물을 담을 때 그 인물의 모습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와 결부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지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그 인물의 정체성은 그 사회성을 통해서 표현된다. ... 그 치열했던 삶의 풍경이 이제 사라진 것 같아 몹시 아쉽다. 내 사진들을 보며 이거라도 있어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못내 떠나보내야 하는 익숙한 정경들이 가슴 한편을 시리게 하여 가만히 읊조린다. "마냥 좋아 찍었는데,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나보네. 아지매들 다 어디갔나 모르겠네. 사진 잘 나왔는데.... "

딸아이는 내가 전과 같지 않게 자주 언론매체에 얼굴을 내밀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에 대해 불안한 시건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내가 또다시 인터뷰체 응하겠다는 약속을 하자 이렇게 퍼부어댔다.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서 자신을 자랑하려는 거예요. 딴 사람은 매스컴 안 타고도 얼마든지 좋은 일 하잖아요! 왜 자꾸 응하세요? 난 아버지가 그러실 줄 몰랐어요! ... 피하시면 되잖아요. 그건 위선이예요! "

나의 피사체는 똑같은 궁핍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또 다른 나와 같았다. 그것은 소외받은 사람이었다. 내 머리, 등이나 손처럼 나라는 존재의 구성 분자였으며 너무나 가슴속 깊이 밀려와 돌이길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 어이없는 말이긴 하지만 그들은 그런 오해를 할 만큼 어리석고 순진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그들의 옷은 남루하고 피부는 거칠고 주름살은 깊이 패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엔 가식이 없고 그들의 근육은 건강하고,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력한 대가 이상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가난한 자의 행복한 모습만큼 진실한 것도 없다.


리얼리즘이 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들의 사회에 대한 응시력이 약하고, 현실을 투시하는 거리가 너무 짧다는 뜻이다.


내 사진의 스승...


삶은 사진이다.

사람은 과실나무의 열매와 같다. 과실은 색이 파릇파릇한 동안에만 익고 성장한다. 하지만 익어간다고 생각되는 순간 곧바로 썩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가장 낮고 더러운 땅에 입맞춤하며 흐르는 물로 남겨지길 원했다.


세상 사람들은 변화 없는 발전이란 없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발상 자체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일관되게 고집해온 이 기록의 작업은 한 가지 방식으로 고수해온 '보존'이라는 작업이었다. 시대가 변했다고 시대의 기록까지 변화를 주며 가공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살가도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중요하다. 대상이 하고 있는 것의 가치를 판단하거나 심판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사진은 사회의 소유물이고 사회의 표현이다. 이것들은 남는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우리들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

가난이 주는 상처 때문에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핍박이 주는 가장 큰 고통은 사람의 영혼을 묶어버리고 모든 희망을 수포로 만들어버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러한 삶의 상처는 사진 예술을 통해 하나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애보트 " 나는 리얼리듬을 믿는다. 나는 객관적인 접근 방식들을 믿는다. 나는 회화적이거나 예쁜 사진들을 혐오한다. 이미지를 형성하는 렌즈는 하나의 리얼한 물건이다. 렌즈는 리얼한 것이다. 그것은 예리하며 또 그것은 명확하다. 오늘날 용기 있는 사진가들은 너무나 드물다. 그들은 일시적 유행만 좇고 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정직하고 표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표현하는 한, 여러분은 그 어떤 일이든 할 수가 있다. 시각이 넓은 만큼 사진도 넓다. 우리들의 매체에 한계란 없다"

결정적 순간을 담아본 사람이라면 그 가치를 알기에 더 부지런히 움직이며 그런 순간을 찾고자 한다.


리얼리즘은 사람들끼리 사실을 공유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주제가 무엇이든 사진이 담고 있는 주제를 향해 실천적 의지를 다실 수 있는 소중한 동기가 되기에 리얼리즘 사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의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쟁은 " 모든 예술은 인간의 존재를 기초로 한다. 유독 사진만이 인간의 부재로부터 이익을 얻어낸다" 라고 말했다.


사진은 카메라가 만들지만 사진의 마음은 사람이 만든다.

나는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사람의 이미지를 새로이 보여주기위해 허구로 포착하였다. 이러한 허구로 인해 대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넘어서 고양된 인간애의 세계를 소통하며 환기한다. 내가 주목하는 일관된 소재인 가난한 사람과 의미파괴의 효과는 단절된 세계에서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내게 열려 있는 세계와 소통하며 체험해온 요소들이 작품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고, 독특한 의미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내 자신을 구원한 사진을 통해, 전 인류의 휴머니즘을 향해 작품 세계를 확장해왔다.


나는 가난에 대한 이미지를 해체하고 고양된 인간성이라는 화해 지대에서 새로운 소통을 재구성 하고 있다.

나 역시 가난을 절실히 체험했기에 가난이 인간의 희망을 가두어버리는 데서 생기는 고통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해방하고자 하였다.

진정한 사랑의 소통이야 말로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의 변용과 동시에 사회의 변용으로 이끈다.


나는 정치적이고 당파적인 관점에서 가난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의식과 사회문화적으로 고양된 변용으로 초대하는 휴머니즘 본연의 가치에서 제 3의 길을 터주고자 한다. 상이한 의식 세계의 갈등과 분열로부터 휴머니즘의 인간래로 소통시키기 위해서다.

가난한 사람들의 독특한 생명력을 미혹되지 않고 확실한 신념으로 관철하려 했다.


실존적 드라마적 자기 해명, 즉 휴머니즘의 지평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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